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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사건이 왜곡되었다'고 대사헌이 폭로했으니 사건을 밀고 가는 진영에서는 아연 긴장했다. '이제는 물러설 수 없다' 배수의 진을 쳤다. 이제는 모 아니면 도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이문화의 폭로가 오히려 세력의 결속력을 배가시켰다.

이무를 순금사에 하옥하라 명한 태종은 연루된 형조판서 유용생도 옥에 가두라 명했다. 연루된 자들도 줄줄이 투옥되었다. 대간에서 형조판서 이용생과 대사헌 이문화를 국문하라고 주청했다. 본격 형문이 시작되었다. 순금사(巡禁司)에서 죄인들을 심문한 옥사(獄辭)를 올렸다.

"'여강군과 여성군은 그 공이 사직에 있는데 하루아침에 조락(凋落)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 국가에서 죄를 논하여 죽는 데에 이르지 않는다면 후일에 등용될 운명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면서 이무 등 여섯 사람은 서로 도모하고 의논하여 사직을 위태롭게 하였으니 수범과 종범을 나눌 것 없이 마땅히 능지처사(凌遲處死)해야 합니다." - <태종실록>

싹쓸이의 핏빛 깃발이다.

"윤목 등 5인은 사죄(死罪)에서 한 등을 감(減)하여 장(杖) 1백 대에 유(流) 3천리에 처하고 그 재산은 몰수하라."

태종의 명이 떨어졌다. 하급범부터 처리하는 수순이다. 윤목은 사천에, 이빈은 장흥에, 강사덕은 영해에, 조희민은 광양에, 유기는 해남에 귀양 보냈다.

수범으로 지목된 이무는 혁명에 공을 세운 공신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다. 졸속처리는 오해를 불러 모든 공신들로부터 '삽혈맹세'를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이무를 대궐 안 진선문(進善門)밖에 대기시켜놓은 태종은 대신과 3공신을 정전으로 불렀다.

혁명동지를 죽여야 하나? 살려야 하나?

"이무가 지금 옥중에 갇혀 있는데 경들이 어찌 다 그 까닭을 알겠는가? 내가 신료들을 다 불러서 이를 알려주고 싶으나 상황이 그러하지 못하니 경들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라. 부왕의 병환이 위독하여 내가 형제들과 더불어 경복궁에서 시병(侍病)하고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이무의 이름만 들었을 뿐 서로 친하지는 아니하였다. 이에 이무가 민무질을 통하여 나에게 교분을 맺었다."

'오늘 저녁에 정도전 무리가 거사하려고 하니 이때를 놓칠 수 없다'고 이무가 말했다. 내가 '그대가 먼저 그들이 모인 곳에 가서 그 계획을 늦추도록 하라' 했다. 정사한 뒤에 사람들이 '이무가 무슨 공이 있느냐?'고 하였으나 내가 그 체력과 풍채가 볼 만하기 때문에 듣지 않았다. 뒤에 나타난 큰 허물이 없기 때문에 드디어 정승에 이르렀다.

내가 종기가 나서 매우 위독할 때 민씨 4형제와 신극례가 민씨의 사가에 모여 약한 자식을 세우자고 의논하였는데 그 꾀가 실상은 이무에게서 나왔다. 이무가 민무질에게 말하기를 '주상께서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대가 아는 바이다. 그대의 곤제(昆弟)와 함께 가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말하기를 '세자는 영기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니 원컨대 주상께서는 교회(敎誨)하소서' 하였으니 이것은 무슨 뜻인가?" - <태종실록>

지신사(知申事) 안등이 진선문밖에 대기하고 있는 이무에게 임금의 말을 전했다.

"무인년의 일은 정말 정신이 황망하여 억지로 일어난 것이지 실로 다른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회의한 일과 주상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말은 실로 없었던 일입니다. 세자가 영기가 있다고 한 말은 세자가 성색에 빠질까 두려웠기 때문에 상달한 것입니다."

"이무의 말과 같다면 도리어 내 말이 망령 된다는 말이란 말인가?"

태종은 불쾌했다. 자신이 공신과 대신들에게 설명한 말이 틀리다면 자신이 허무맹랑한 말을 꾸며댔다는 말인가?

"신 등이 일찍이 무인년의 변에 참여하였지만 이무의 용심(用心)이 이와 같은 것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조영무가 거들었다.

"민무질이 '주상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이무의 말을 그 두 아우에게 말하였더니 민무회와 민무휼이 그 허물을 면하려고 그 말을 써서 나에게 바쳤다. 내가 공개하지 않고 보관하려고 하였으나 죄악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내가 비밀히 할 수 있겠는가?"

태종은 지신사 안등에게 밖에 대기하고 있는 민무질을 들라 일렀다. 삼척에서 귀양살이하고 있던 민무질을 소환하여 대기시켜놓았던 것이다. 치밀한 성격 그대로다.

치밀한 군주 앞에 고개 숙인 신하

'주상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말을 이무와 대질시켰다. 이무가 머리를 수그리고 대답하지 못했다. 이무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대질심문이 종결되었다. 이무를 다시 순금사(巡禁司) 옥에 가두라 명한 태종이 공신들에게 말했다.

"한(漢)나라 고조는 공신을 보전하지 못하고 광무는 보전하였는데 이것이 사책(史冊)에 실려 있다. 지금 내가 날마다 공신들을 보전 하고자 생각하고 있는데 일이 여기에 이르렀다."

역사를 꿰뚫어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이 같은 불충한 신하를 보전하고자 대의로 결단하지 않으면 어떻게 후일을 징계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다시 유사(攸司)로 하여금 그 죄를 밝게 바루소서."

철성군(鐵城君) 이원과 의원군(義原君) 황거정, 참지(參知) 황희는 잠자코 있었고 조영무가 말했다. 하륜이 이무를 베지 말라고 가만히 아뢰니 태종이 대답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하륜이 나더러 이무를 베지 말라고 청하였다. 하륜은 곧기 때문에 그 마음의 소회를 말한 것이니 이무를 불쌍하게 여길 만하다."

민무질이 삼척으로 돌아가고 이무가 순금사 옥에 갇혀있는 동안 밖에서는 연루자들에 대한 매타작이 계속되었다. 형문이다. 이무의 아들 이공유를 곤장 90대를 쳐도 아버지에 대한 죄를 실토하지 않는다는 옥관의 보고를 받은 태종은 옥관을 나무랐다.

"이것은 묻는 자가 잘못이다. 자식은 아비를 위하여 숨기는 법이니 차라리 죽을지언정 어찌 아비의 죄를 증거 해 이루겠는가?"

이공유를 석방하라 명했다. 형문이 끝났다. 유용생은 부여에, 구종수는 울진에 귀양 보내고 이양배를 옹진에 장류(杖流) 시켰다. 구성량을 울주에, 홍언을 기장에 귀양 보내고, 모두 그 관직을 삭탈하였다.

이무의 아들들도 줄줄이 귀양 갔다. 이간을 울주에, 이승조를 장기에, 이공유(李公柔)를 옥구에, 이공효를 풍주에, 이공지를 청주에, 이탁을 평해에 귀양 보내고, 이공유(李公裕)만은 맹인이기 때문에 귀양을 면했다.

죄인의 함거를 정지시키는 보이지 않은 힘

이무가 귀양 떠나는 날, 순금사사직(巡禁司司直) 우도에게 이무를 창원으로 압령(押領)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이무에게 칼(鎖)을 씨운 함거가 청파역(靑坡驛)에 이르렀을 때 대간(臺諫)에서 아전(吏)을 보내어 귀양행렬을 저지했다. 능지처참해도 부족한 죄인을 귀양 보낸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 하다는 뜻이다. 우도가 돌아와 임금에게 보고했다.

"네가 내 명령은 따르지 않고 도리어 대간을 두려워하느냐?"

공무를 집행하지 못한 우도를 하옥하라 명한 태종은 부사직(副司直) 김이공으로 하여금 이무를 압령해 가게 하였다. 죄인을 호송하는 함거를 정지시킬 만한 힘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무가 귀양 떠난 후, 이귀령, 박은, 유정현, 설미수가 대궐에 나아가 이무를 율(律)과 같이 논하기를 청하고 삼공신, 의정부, 대간이 상소하여 청하였다.

"왕법(王法)에 난신적자는 용서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대의로 결단하여 죄인들을 모두 법에 의해 처치하여 만세 화란(禍亂)의 싹을 자르소서."

한강진에서 선군의 거룻배에 오른 이무는 멀어져 가는 삼각산을 바라보았다. 다시 보고 싶었다. 허나, 죄인의 몸으로 귀양 떠나는 몸이 삼각산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그것은 아득하기만 했다.

귀양행렬이 안성 죽산을 지날 무렵 흙먼지 일으키며 뒤쫓아 오는 역마가 있었다.

"'게 섰거라. 죄인은 멈춰라."

호송하는 김이공은 긴장했지만 귀양 가는 이무는 가슴이 뛰었다. '주상의 마음이 변하여 나를 용서해주려는 것인가?' 한 가닥 희망이 섬광처럼 빛났다. 한양을 떠나올 때 삼각산을 바라보며 염원했던 소망에 산신령이 감응한 것일까? 하지만 희망의 빛은 이내 가을 하늘 푸른 창공으로 사라졌다.

태그:#이방원, #민무질, #이무, #하륜, #조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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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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