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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푸르트 역에서 노숙하는 붉은 악마들
ⓒ 박동구

상상할 수 있겠지만, 월드컵 기간 독일의 물가는 상상을 초월했다. 무엇보다도 숙박비 문제는 배낭여행객에게 사형 선고와 같은 수준이었다. 월드컵 개막일을 시작으로 미리 성수기 요금을 받는 호텔들은 양호한 편이었고, 2배~3배씩 숙박비가 오르는 곳들도 있었다.

정규적인 숙박 시설이 이럴 진데, 불법적으로 한국인 위주로 이루어지는 한인 민박들은 4배~5배까지도 올랐다(몇 해 전부터 서유럽에 많이 늘어난 한인민박들은 거의 대부분 불법시설들이다. 공식적으로 숙박업을 하려면 상당히 비싼 세금과 당국의 통제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영세한 규모의 민박집들은 거의 불법이라고 보면 된다).

호텔은 둘째 치고 민박집들이 1박에 60~80유로 정도의 가격으로 올랐고, 경우에 따라서는 100유로가 넘는 가격을 부르기도 했다. 이런 사정이니 무작정 배낭여행을 떠나온 나 같은 이들이나, 한 푼 한 푼 아껴 월드컵 경기만이라도 보러온 사람들에겐 정상적인 숙박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기차역 노숙이었다.

보통 기차역은 다니는 사람도 많고, 늦은 시간까지 활동하는 곳이라 유럽에서도 우범지대에 속하지만, 그만큼 넓은 까닭에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신세를 지는 것도 가능한 곳이었다. 더구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공공시설 관리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독일에서도 비싼 숙박비를 예상하고, 월드컵 기간에 한해서 기차역 주변에 캠핑을 허가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이런 이야기들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유명한 배낭여행클럽에서 아예 '숙자클럽'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져, 월드컵 기간 동안 기차역 노숙을 무리지어 하겠다는 계획까지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사실이었고 월드컵 탐방 첫날부터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나도 넉넉지 않은 배낭여행자 신세라 동참하게 되었다.

▲ 과음 뒤 해장으로 먹은 맥도날드 햄버거
ⓒ 박동구

아침 5시가 넘은 시간 파한 응원의 술자리를 뒤로 하고, 프랑크푸르트 역에 들어서자 바닥에 정신없이 쓰러져 자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빨간 티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2시간 정도 그냥 버티고 자지 않으려고 했지만, 술자리에선 그렇게 쌩쌩하던 몸이 역에 들어온 지 10분도 되지 않아 앉아있기도 힘든 상태였다. 동구 형, 현기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기차역 바닥에서 그렇게 자다 깬 것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나서였다. 눈을 떠보니 표 판매기에 몸을 기대어 누워있는 나를 어찌하지 못하고, 출근하는 독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손만 쭉 뻗어 불편하게 기차표를 사려는 것이 아닌가.

민망하고 미안해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보니, 아침 7시 30분이다. 일터로 나가는 분주한 독일 사람들과 다시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빨간 티셔츠의 응원단이 기차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주변에는 아직도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민망함과 번잡스러움에 다시 바닥에 몸을 뉘일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찌뿌둥한 몸을 겨우 추스르고 우리 셋은 아침밥을 먹으로 갔다.

최악의 컨디션으로 경기장에 들어서다

▲ 경기 당일 오후 1시, 30도를 가리키는 역 앞 온도계
ⓒ 박동구
넉넉지 않은 우리는, 지난밤의 과음에도 불구하고 맥도날드로 향해야했다. 해장으로 햄버거와 커피를 먹는데 어찌나 속이 불편하던지. 겨우 아침을 먹고 역 밖으로 나가자 이번엔 쨍쨍 내려쫴는 햇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 여름답지 않게 쌀쌀하기까지 한 독일의 날씨로 걱정을 하고 있다는 뉴스는 거짓말이었다. 우리의 여름처럼 푹푹 찌는 것은 아니지만, 태울 듯한 햇살만큼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도 남았다. 오후 3시에 있는 경기까지 버티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역 근처 터키계 전화방에서 인터넷을 좀 하고 대충 점심때쯤이 되자 역 앞은 더 이상 독일이 아니었다. 빨간 티셔츠에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 프랑크푸르트를 점령했다고 할 만큼 많았다. 군데군데 보이는 머리가 노랗거나 코가 오똑한 서양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었다. 트램의 안내방송도 한국어로 나오고 있었다.

▲ 역 앞 건널목의 많은 한국응원단들
ⓒ 강병구

이제 이곳은 더 이상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아니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프랑크푸르트동이나, 서초구 방배동 프랑크푸르트거리였다. 역 앞에서부터 응원을 해대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고, 벌써부터 응원을 하며 경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도 표의 이름도 바꿀 겸해서 미리 경기장으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실수였다. 사무실에서 현기 부모님 되어 있는 표 이름을 바꾸는 데는 2시간이 걸렸고, 돈도 20유로나 들었다. 하지만 출입구에선 까다롭게 하겠다는 그 어떤 검사도 없었다.

가방과 물병 등은 검사의 대상이었지만, 표의 이름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두 시간을 땡볕에서 줄을 서서 하루 숙박비에 준하는 돈을 주고 한 일이 사실은 전혀 필요 없었다는 점이 정말 힘을 빠지게 만들었다.

응원도 소용없는 듯한 전반전 경기

▲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인파
ⓒ 박동구

토고와의 경기 1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은 우리의 붉은 악마 응원단들은, 벌써부터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있었다. 표 검사대에서부터 한참 걸어들어 가야하는,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뚜렷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경기장 앞에서는 여러 이벤트도 있었지만, 그런 응원소리에 다시 피가 끓어오르며 우리 셋은 정신없이 경기장으로 뛰어갔다. 이미 경기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아직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이었지만 앉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일어서서 북소리의 선창에 맞춰 큰소리로 응원을 했다.

개중에는 한국사람 뿐 아니라, 빨간 티를 입거나, 태극기를 몸에 두른 외국인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들도 어디서 배웠는지, 어설프지만 비슷하게 우리의 응원을 따라했다. 사진이 목적인 동구 형과 현기는 카메라를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두 사람의 짐을 지키면서 응원에 열중하였다.

토고국가에 우리 애국가가 나오는 해프닝 뒤 언제나처럼 대형 태극기가 올라가며 애국가를 불렀다. 외국에서 인지 더 뜻 깊게 다가오는 노랫말을 생각하며 드디어 경기는 시작되었다.

▲ 드디어 경기 시작이다!
ⓒ 김현기

목이 터져라 불러대는 "대~~한민국!"의 응원 소리에 토고의 응원소리는 파묻혔다. 돔 형식으로 천장이 막혀있는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은 그 덕에 덥기도 했지만, 우리 응원소리를 두 배쯤 시끄럽게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우리의 응원은 소용이 없다는 듯이, 태극전사들은 유달리 무거운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공격은 상대를 전혀 위협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반 30분쯤 토고가 한 골을 넣었다. 응원석에서 "어~, 어~" 하는 사이 빠르게 돌파한 토고 선수가 우리의 골문을 가르자, 시끄러웠던 응원이 한순간에 멈췄다. 다시 힘을 내야했지만, 갑자기 간밤의 피곤함이 두 배쯤으로 밀려왔다. 그리고 이건 나뿐만이 아닌 듯 관중석의 응원소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잠시 뒤 전반전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비난의 소리들이 쏟아졌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참가 역사상 원정 첫 승에 대한 기대가 여전했지만, 나 역시 '이거, 이러다 지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에 몸은 천근만근으로 느껴졌다.

▲ 여전히 응원을 보내는 우리의 응원단들
ⓒ 박동구

덧붙이는 글 | 중동부 유럽 정보는 지역의 특성상 다른 자료를 통해서도 많이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여행기는 독일월드컵 이야기와 함께, 유럽 중에서 제가 경험한 특별한 이야기와 흔히 잘 소개되지 않는 여행지를 중심으로 소개 하겠습니다. 

지난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7월 13일(금요일)에 이어집니다. 

사진을 제공해주신 김현기, 박동구님께 감사드립니다.


태그:#독일 월드컵, #유럽, #독일, #프랑크푸르트, #토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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