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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마을 갱본에서 바지락 파다 잡은 낙지.
ⓒ 김준
배시간이 다 된 모양이다. 포구 모퉁이 작은 여객선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던 10여 명의 승객이 작은 보따리를 들고 삐죽삐죽 밖으로 나온다. 이들 중에는 오전에 만났던 소리도 등대를 지키던 20대의 거문도 출신 젊은 청년도 있다.

여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섬. 소리개가 날다 지쳐서 바다에 앉았을까, 솔개를 닮았다는 '소리도'. 1910년에 점등한 소리도 등대도 유명하다. 이 섬에는 '큰말'(동부, 서부, 남부, 북부), '역포', '덕포'가 있다. 섬의 중심인 큰말엔 170여 호가 거주하며, 소리도 등대가 있는 덕포엔 10여 호, 역포엔 70여 호가 거주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큰마을에 283가구, 역포 94가구, 덕포에 30가구가 살았다.

사나운 바람이 숨을 죽이자 10여 명의 '큰 마을' 주민들이 포구갯벌에 자리를 잡았다. 몇 년 전까지 매일매일 작업을 해도 바지락이 끝없이 나오던 자리였지만 매립공사가 시작된 후 팔이 아프게 호미질을 해야 겨우 작은 바구니에 체면치레를 한다.

바지락을 파던 아주머니가 발목 깊이의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돌을 들어내고 익숙한 솜씨로 낙지를 잡아 올린다. 큼지막하고 실한 놈이다. 바로 옆 바다에선 3명의 잠녀들이 숨비소리를 내며 한참동안 물질을 하고 있다. 큰말의 주 소득원인 전복의 천적 불가사리를 정부지원을 받아 잡아내는 중이다. 특히 '아모르불가사리'는 패류에 치명적인 놈이다.

마을주민의 삶을 지켜준 갱본

▲ 장맛비가 오는 날 전복의 천적 불가사리를 제거하고 나온 소리도 잠녀들.
ⓒ 김준
소리도 어민들은 톳, 미역, 천초, 가사리 등이 자라는 조간대를 '갱본'이라고 부른다. 드는 물에 몸을 맡기고, 나는 물에 어민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갱본. 갱본은 한때 어민들에게 논과 밭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다. 갱본은 소리도 갯사람들의 곳간이었다. 이렇다 할 먹을 것이 없던 어민들은 톳을 넣고 밥을 해먹었고, 톳과 미역을 팔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했다.

지금은 마을에 나이든 노인들만 있어 일손도 부족하고, 바위나 여(밀물과 썰물에 의해 물에 잠겼다, 들어났다는 반복하는 바위)에 매달려 뜯는 일이 위험해 작업 할 엄두를 못 낸다. 무엇보다 가격이 옛날 같지 않아, 주민들 중에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입찰을 해 채취권을 주고 있다.

몇 년 전까지 '영을 트면(작업 일이 결정되면)' 가가호호 한 명씩 나와 공동 작업을 해 건조한 후 여수상인들에게 연락을 해 공개입찰을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어촌계장과 이장 월급은 물론 마을공동기금을 마련했던 것도 이 갱본이었다.

사실 소리도 어민들이 전복이나 해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오래된 것은 아니다. '해녀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제주 잠녀들을 데리고 와 작업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다른 지역처럼 전복양식을 위해 시설을 하고 관리를 할 수도 없다. 바다가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친 바다에 전복씨를 뿌리고 바다에 오롯이 맡길 수밖에 없다. 어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림' 뿐이다.

큰말과 역포의 주 소득원은 전복이다. 최근 전복이 줄어들면서 작은 새끼 전복을 마을어장에 뿌려 3~4년 기다려 잡고 있다. 그렇다고 가두어 기르는 것이 아니며, 먹이를 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씨를 뿌릴 뿐, 자연 상태로 놓아 잠녀들이 물질을 해서 잡기 때문에 '자연산'과 진배없다.

다른 섬 같으면 갯벌을 막아 농지라도 만들려는 노력을 했겠지만 소리도의 바다는 이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다는 주민들에게 '갱본'을 주었던 모양이다. 주민들이 선택한 방법이 개간이었다. 산비탈에 나무를 뽑고 거친 뿌리를 제거하고 밭을 일궜다. 그나마 하늘이 주신 물을 잠시라도 가둘 수 있는 밭은 논으로 만들었다. 밭은 어떤가. 가파른 능선을 숨 가쁘게 올라 한 숨을 돌려야 하는 곳이다. 이런 논과 밭들은 모두 묵히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누렁소 차지가 되었다. 한때 쟁기를 달고 힘겹게 일하던 일소들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씨프린스호에서 고대구리까지

▲ 소리도의 중심지 '큰마을'
ⓒ 김준
▲ 어업이 활발한 역포마을, 2년 전까지 풍어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
ⓒ 김준
▲ 1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고 있는 덕포마을.
ⓒ 김준
소리도 사람들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 10년 전 마을 앞에서 좌초한 씨프린스호가 쏟아낸 기름이 주민들의 삶터 갱본을 시꺼멓게 덮었다. 당시 마을주민들은 물론 해당기업과 정부에서 나서서 기름을 제거하고 어민들을 위한 보상에 나섰지만 갱본과 바다는 한 동안 제 기능을 못했다.

중동에서 26만 5000여 톤의 원유를 적재한 호남해운 소속의 씨프린스호(Sea Prince, 14만4567톤)가 1995년 6월 24일 여수외항에 도착했다. 호남정유 부두에서 원유 양하작업을 하던 중 태풍 '페이'의 소식을 듣고 작업을 중단하고 8만 6000 톤의 원유를 싣고 피항 하던 중 여수 소리도 해역에서 좌초된다. 이 때 기름 5천 톤이 남해안 전역을 덮쳐 양식장과 어장을 황폐화시켰고, 700여억원(어민 청구액)의 피해를 냈다. 피해조사 결과 150여억 원이 지급되고, 선장은 징역 1년, 회사에는 3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기름이 유출된 해역은 소리도해역에서 남해와 거제 남부 해역까지 확산되었다. 오염지역은 리아스식 해역이며, 다도해가 발달한 수심이 30~50m 내외의 해수욕장을 비롯해 관광자원이 많은 국립공원지역이다. 특히 소리도, 안도, 금오도, 돌산도 일부 해안은 대부분 기름으로 덮여 피해가 심각했고, 여천군 돌산읍, 남면, 화정면 해안 46.9km 해안에 유류가 부착되어 어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사고처리 과정에서 장비 및 인력부족, 해양 및 안전사고 관리체계의 분산, 씨프린스호 사고 방제지휘 체제 혼선, 전문가 참여부족, 유처리제의 과다사용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다만 인근 섬과 어촌 주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두드러졌다. 이 사고는 대형해난 사고에 대비한 국가의 신속한 구난체계 구축, 대형예인선 배치, 대형유조선 항로 DB 구축, 해상 화재 및 좌초 긴급구제 계획 구축, 구난방제에 관한 국제협력체제 구축 등 과제를 남겼다.

다시 희망을 바다에

▲ 바지락을 파는 갱본 옆 바다에서 불가사리를 제거하기 위해 잠녀가 물질을 하고 있다.
ⓒ 김준
그 후 전복과 소라도 1/3로 감소했고, 해초들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최근 종패를 넣어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더디기만 하다. 그 사이 소리도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것이 소형기선저인망, 즉 '고대구리'어업이었다. 정부의 부정어업 근절정책으로 사라지기 전까지만 해도 큰말에 50여 척, 역포에 20여 척이 있었다.

고대구리어업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마을 개들이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부촌이었다. 옛날 포구에는 두 척의 고깃배가 정박되어 있고, 1991년 완공된 큰 포구에는 20여 척의 배가 가지런히 떠 있다. 간재미를 잡는 자망 그물을 마주잡고 손질하는 주민, 배 바닥을 닦는 주민들이 눈에 띈다.

40여 년 전 소리도 주변 어장은 어족이 풍부해 안도 서고지에 어업전진기지로 개발 계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자망어업이 역포마을 주민들의 주 어업이며, 일부 통발과 새우조망도 하고 있다. 봄철에는 자망으로 가오리, 돔, 오징어 등을 잡고 여름철에는 통발로 장어잡이에 나서기도 한다. 특히 소리도 일대의 여수 먼 바다에서 잡히는 갯장어 요리(샤브샤브)는 여름철 별미음식으로 꼽힌다.

▲ 소리도에서 어선어업이 가장 활발한 역포마을 선착장.
ⓒ 김준
고대구리어업을 할 수 없게 되자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여수나 부산 등 도회지로 나가기 시작했다. 한때 300여 호가 넘었던 큰말은 자식교육과 생계문제로 170여 호로 줄었다. 초등학생만 500여 명이 넘었던 이곳에 지금은 초·중학생을 합해야 겨우 28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모든 것이 고대구리어업 탓은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이 먹고 살 일이 없어지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시장원리로 본 다면 이렇게 생선이 잡히질 않고 귀하면 가격이 올라야 하는데 어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생선 값은 옛날 같지 않다. 소리도 어민들은 그 이유를 수입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연산 활어는 예전보다 적게 잡히는데 가격은 더 싸다는 말이다.

시장이 개방되면서 중국산, 북한산 등이 무시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리도 어민들이 기댈 곳은 바다와 갱본 뿐이다. 불가사리를 잡아내며 전복을 키워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소리도 포구를 건너 넓은 바다로 건너던 숨비소리가 여객선 소리에 묻혔다. 밤새 뒤척이던 바다가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휴일을 맞아 집을 찾은 학생들이 여객선에 오르자 뱃고동 소리가 여운처럼 소리도를 감싼다.

덧붙이는 글 | 6월 16일과 17일에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태그:#소리도, #여수, #고대구리어업, #씨프린스호, #갱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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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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