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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6월 27일 취임한 고든 브라운 신임 총리(오른쪽).
ⓒ AP=연합뉴스

"나는 방금 이 나라를 이끌어달라는 여왕의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10년을 기다린 '준비된 총리' 고든 브라운이 27일 영국을 이끌어갈 새 총리로 탄생했다.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고든 브라운은 힘을 줘서 연설을 시작했다.

브라운은 "내가 유년 시절 다닌 학교의 모토대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이것은 모든 영국 국민에게 하는 나의 약속입니다, 이제 새로운 변화의 작업을 시작합시다"라고 사뭇 비장하게 연설을 마쳤다.

브라운은 연설 직전 부인 사라와 함께 버킹엄궁에 가서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손에 충성을 다짐하는 키스를 했다. 이로써 고든 브라운은 영국 여왕의 승인을 받은 진짜 영국 총리가 됐다. 토니 블레어의 그늘에 가려 만년 2인자로 보낸 설움의 세월을 딛고 드디어 영국 수상으로 거듭난 것이다.

미래를 건 비밀 약속, 그러나 엇갈린 운명

고든 브라운은 이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렸을 것이다. 고든 브라운과 토니 블레어의 애증 관계는 199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씨앗이 뿌려졌다.

1994년 노동당수였던 존 스미스가 갑자기 사망했다. 그러자 후계 당수 문제를 두고 노동당 의원들은 고든 브라운과 토니 블레어 등을 놓고 논의했다. 그 당시만 해도 많은 노동당 의원들은 고든 브라운이 차기 노동당을 이끌어가기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고든 브라운에게 밀리고 있었던 토니 블레어가 당수 자리를 승계했다.

어찌된 일인가. 노동당의 젊은 후계자였던 두 사람은 한 레스토랑에서 만나 노동당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당수직을 논의, 이번에는 토니 블레어가 당수를 맡아서 총리 선거에 나가고 다음번에는 고든 브라운이 나가기로 비밀 약속을 했다.

왜 고든 브라운은 당수 자리를 토니 블레어에게 쉽게 양보했을까? <가디언>은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고 설명한다. <가디언>은 고든 브라운이 존 스미스 당수의 갑작스러운 사망을 너무나도 슬퍼했거나, 아니면 당시 상황에 무척 당황해서 당수직 수락을 주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블레어에게 '뺐긴' 10년

어쨌든 이 비밀 약속은 고든 브라운이 10여 년 동안 만년 2인자로만 머물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총리 자리에 올라 달콤한 권력의 단맛을 느낀 블레어는 총리직을 끝까지 내놓지 않고, 무려 3번이나 총리직을 역임했다.

고든 브라운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못해 2005년 자서전을 통해 비밀 약속을 폭로했지만 블레어는 끝까지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블레어는 고든 브라운을 몰아내기 위해 그를 재무부 장관에서 외무부 장관으로 밀어내고 재무부를 두 개로 나누는 음모까지 꾸몄다.

브라운은 그런 수모를 참고 또 참아야 했다. 공개적으로 블레어를 공격하고 싶었겠지만, 노동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자기 기반도 불안해지는 점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블레어의 하야도 악화되는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이뤄진 성격이 강하다. 내심 블레어는 더 오래 총리를 하고 싶었겠지만, 곤두박질치는 노동당 지지도를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백기를 든 것이다.

그간 블레어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을 고든 브라운은 용하게도 10여년의 세월을 인내하면서 지냈다. 그 와중에도 고든 브라운은 블레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위기의 순간마다 그를 도왔다. 또 재무장관으로서 영국이 지난 10년 동안 연 2.7%의 유례없이 안정적인 경제성장률(GDP)을 기록하게 하는 등 블레어 정부가 업적을 쌓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고든 브라운 진영의 많은 사람들은 블레어가 브라운의 10년을 빼앗아갔다고 지금도 억울해하고 있다.

▲ 고든 브라운 총리 취임을 보도한 BBC 뉴스.
ⓒ BBC

'임기응변의 달인' 블레어, '뚝심맨' 브라운

고든 브라운의 이런 인내심과 우수한 업무 처리 능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과거로 잠깐 돌아가 보자.

1951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장로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브라운은 어린 시절 럭비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럭비 경기 중에 부딪혀 망막을 다쳐 한쪽 눈을 실명했다. 그 후 브라운은 불과 16살의 나이에 명문 에든버러대학 역사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 탁월한 학업 성적을 기록한 고든 브라운은 박사학위를 취득해 대학 강단에 섰다.

그러나 운명은 브라운을 결국 정치로 향하게 했다. 1970년대에 스코틀랜드 노동당에서 활동을 시작한 브라운은 1983년 영국 의회에 입성했다.

그해에 토니 블레어도 같이 입성했다. 그들은 그때부터 친구가 됐고, 동시에 그때부터 영원한 라이벌이 됐다.

라이벌이지만 두 사람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블레어가 화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언론 플레이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반면, 브라운은 언론 노출을 즐기지 않으며 비교적 과묵한 편이다.

영국 언론들은 "블레어가 대중에게 아주 사교적이라면, 브라운은 자기 참모들이나 잘 아는 사람에게는 친근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약간 수줍어하고 덜 사교적인 스타일"이라고 지적한다.

브라운은 일을 매우 열심히 하며 결정을 내릴 때는 너무나도 냉정해서 '무자비한 스탈린주의자', '자폐증 환자'라는 평을 얻기도 했다. 두 사람의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블레어가 아주 영리한 여우같이 전략과 임기응변에 뛰어난 사람이라면, 브라운은 곰같이 뚝심 있고 치밀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관전 포인트는 이라크 정책... '푸들'에서 벗어날까

블레어의 지나친 언론플레이에 싫증난 사람들에게 브라운의 중량감 있는 리더십이 오히려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반면 둔감함은 브라운이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결국 영국 사람들은 정책으로 브라운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화두는 역시 이라크전을 둘러싼 대미관계다. 과연 브라운이 대외정책에서 얼마나 블레어와 차별화를 시도, 성공하느냐에 따라 지지도가 상당 부분 결정될 것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교육과 의료 등 대내 정책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지만, 블레어와 10년 동안 함께 일한 브라운에게 대내 정책에서 커다란 차별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물론 브라운은 좌파를 끌어안기 위해 빈부격차 등 사회정의적인 문제들에 대해 재빠르게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에는 브라운이 얼마나 미국과 선을 긋고 '부시의 푸들'이라는 블레어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가 초점이다. 브라운은 "이라크 침공이 실수는 아니다"라면서도 "책임감을 느낀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단행한 내각 인사 내용을 보면 브라운의 정책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차세대 신예 리더로 꼽히면서 이라크 전쟁을 명확하게 반대해온 데이빗 밀리반드 전 환경부 장관을 외교부 장관에 입각시키는 등 브라운은 미국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주요 외교 라인에 전격 배치했다.

브라운은 국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블레어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실용주의자다. 미국의 힘을 거스르기보다는 이를 철저히 자국의 이익과 연결, 이용하려는 사람이다. 그런 브라운이 미국을 향해 쓴 소리를 하면서 세계 평화와 정의를 위해 올바른 목소리를 낼 것인가? 이것이 자기 지지도의 '핵심 열쇠'라는 사실을 브라운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상승하는 지지율... 거품일까?

브라운이 총리로 내정된 후, 보수당에게 계속 밀리던 노동당이 브라운의 취임 후광을 입고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을 앞서기 시작했다.

채널5는 브라운이 취임한 날, 거리에 있는 사람을 상대로 무작위로 직접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브라운 46%, 보수당의 캐머런 40%로 브라운이 승리한다고 보도했다. 영국 국민들이 데이빗 캐머런 보수당수보다는 브라운의 경험과 중량감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거품은 언제든지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취임 초기 언론과의 허니문 기간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데이빗 캐머런 보수당수는 이미 차기 총리 선거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브라운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간은 최대 2년이다. 그 후엔 캐머런과 진검승부를 벌어야 한다.

취임 일성으로 "변화 욕구는 구시대의 정치로는 충족될 수 없다"고 밝힌 고든 브라운. 10년 동안 애타게 기다리고 준비한 브라운이 과연 어떤 새로운 정치를 펼칠지 궁금하다.

고든 브라운 정부의 주요 예상 정책

▲ 대외 정책

- 이라크 정책 일부 변경
- 대미 정책의 질적 변화 모색
- 친유럽 정책 예상
- 아프리카 국가를 상대로 교육 등 지원 강화

▲ 경제 정책

- 시장주의 기조 유지
- 노조 약화 유도 지속
- 경쟁력 강화 등 세계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 의료 정책

- 우선적인 대내 정책
-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의료보험위원회 출범
- 대기시간 단축 등 NHS의 지속적인 변화 추진

▲ 교육 정책

- 가장 우선적으로 펼칠 대내 정책
- 교육 예산을 GDP의 10%로 증액
- 공교육의 획기적인 개선 추진

▲ 환경정책

-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 친환경도시 건설
- 원자력 에너지 적극 이용

태그:#고든 브라운, #토니 블레어, #이라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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