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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에게 여태까지 문제집 한 권을 사주지 않았다. 사달라고도 하지 않았고 성적도 그다지 뒤처지지 않았기에 공부하라고 다그치지도 않았고 오히려 문제집을 사달라고 할까봐서 내심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지지리도 가난한 부모는 아들이 학교 공부만으로도 거의 반에서 10등 안에 들었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그만하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내팽개쳐 뒀었다.

며칠 전에 아들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엄마, 문제집 한 권만 사 주시면 안 돼요? 곧 모의고사 보고 기말고사도 봐야 하는데 공부가 조금 어려워요."

여태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내심 어려웠나보다. 마침 방송국에서 경품으로 받은 5만 원짜리 문화상품권이 있어서 아이를 데리고 서점에 들렀다. 무심한 엄마는 8천원이란 가격에 놀랐지만 아이에게 공부 잘하라며 생색을 내면서 문제집 한 권을 사줬다.

모의고사를 보던 날, 떡볶이를 팔고 있던 내게 아들이 흥분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 채 전화를 했다.

"엄마, 오늘 시험 봤는데요! 국어 점수만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는데 제가 반에서 1등이에요! 100점 맞았어요! 저는 이제 저 자신을 알았어요!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요!"

나도 기뻤지만 오버를 하는 아들을 보니 웃음부터 나왔다. 한 과목 점수만 알아서는 아직 몇 등인지도 모르는데 아들은 벌써 반에서 1등이라도 한 것처럼 기뻐서 날뛰었다. 문제집을 사서 며칠을 풀어보고 시험을 보더니 효과가 있었나보다.

3일 후 모든 과목 점수가 발표됐는데 반에서 5등을 했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가장 잘한 등수였다. 문제집을 사줘서 정말로 5등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미안하고 괜히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이의 공부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고 핑계를 대며 아이에게 문제집 한 권도 사주지 않고 공부도 제대로 봐 주지 않은 무심한 부모가 아이의 오른 성적에 웃을 수만은 없었다.

모레면 기말고사를 본다. 오늘 아침, 아이는 오늘부터 열심히 문제집을 풀어서 좋은 성적을 낼 거라며 활짝 웃어주고 등교를 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아이에게 그동안 너무나 소홀했던 나 자신을 채찍질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지만 살아보니 행복은 성적순이 되기도 하는 걸 보면서 기왕이면 잘해달라고, 무식한 부모는 아이에게 너는 좀 유식하라고 무언의 압력을 넣는다.

태그:#시험 성적, #문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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