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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2일) 저녁 로마인이야기의 마지막 권 본문을 다 읽고, 저자의 '책 끝에'라는 짧은 단상을 미처 읽지 못한 채로 친구와의 약속장소에 나간 나는, 시종 방금까지 읽고 나온 이 책에 관한 나의 느낌을 털어놓고 있었다. 친구는 읽지 않았으므로 다소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나의 감상은 대략 이런 것이다.

6개월에 걸쳐 나름대로 대장정이었던 나의 로마인이야기 독서는 아주 행복했다. 적어도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 그중에서도 로마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자신의 전부를 걸고 이 대단한 흐름에 뛰어 들어 송두리째 기록해보고자 하는 열망을 품음직할 만큼 그들의 역사는 놀라웠다. 어떤 드라마가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 접어놓았던 마지막 저자의 덧붙인 글을 마저 읽은 뒤, 나는 마음으로부터 이 일본인 역사가에게 축배를 건네고 싶어졌다. "독자들도 다 읽고나서 '알겠다'고 생각해준다면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라고 한 그 부분에서 비록 내가 읽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난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지나간 역사 앞에, 아니 우리의 모든 뼈아픈 역사 앞에 더욱 겸허해지기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지금 사십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지난 십여년을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의 삶도 그러기를 원한다. 성경을, 특히 신약을 읽게 되면 어김없이 '로마'와 만난다. 예수님의 실제 행적을 따라가거나 그분의 열두 제자들 그리고 모든 크리스천의 '로망'(!) 성 바울의 삶 속에서 무수히 부딪히게 되는 로마 앞에서 나는 이 책을 기억해낸 것이다.

특히 바울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자주 "로마인인 나를.."이라고 발언하는 것을 읽으며 당시의 유대와 로마와의 상관관계, 그 시대배경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더 나아가 중동의 작은 나라 유대에서 비롯된 기독교가 어떤 과정을 통하여 로마와 통하였고 로마는 거기에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독서였기에 나의 시각은 자주 시오노 선생의 '비기독교적 관점'에 상처(^.^)를 받으며 이어졌음을 고백한다.

결론적으로 선생은 로마제국의 화려한 역사가 기독교와 엇물리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과정을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부제를 달아 상세히 기록한다.

로마인의 관용과 다양성, 그 발랄함이 유일신만을 섬기는 기독교의 배타성 앞에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 그리고 이 기독교가 어떻게 통치자의 유용한 지배수단이 되며, 기독교 측은 어떤 발빠른 유연성으로 이 모든 것에 대응해나가는지를 규명하는 선생의 시각은 읽는 나에게 전달될 정도로 뼈아픈 것이었다.(아, 이를 어쩌나, ..)

물론 로마제국이 스러지기까지는 기독교 이외의 많은 변수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들도 가세한다. 또한 인간사의 흥망성쇠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법칙과도 같다.

다만 한 크리스천으로서, 예수님의 평강과 긍휼 앞에 기꺼이 나 자신을 내려놓고자 한 사람으로서 '로마는 망하고 기독교는 흥하는' 일에 선생이 시종일관 피력하는,(물론 잘 가려진) 고뇌와 울분까지도(!)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오래전 황석영 선생의 <손님>을 읽으며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과도 아주 흡사한 그런 무언가가.

나는 역사책을, 그리고 거기 기록된 흥망과 비탄의 파노라마를 쫓기를 좋아한다. 강진의 다산초당이나 고산 윤선도의 고택 '녹우당'의 뒤꼍을 밟으며 대숲에 부는 바람소리를 들었을 때의 그 '욱!'하는 감동을 어느 외국여행지에선 잘 느끼지 못했음을 또한 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나날의 삶도 시대도 언젠간 역사가 된다. 나는 '역사적 존재'가 아닌, 단지 역사책을 즐겨 읽는 사람으로, 오래도록 역사를 기억하는 인간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또 다른 시대의 누군가가 내가 로마를 읽고, 감동하고, 기억하였듯이 그렇게 역사를 통해 이 시대를, 흐름을 기억해낼 것이다.

태그:#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크리스천, #기독교,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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