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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약간의 꽃과 채소를 키우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베란다로 간다. 간밤에 이 녀석들이 어떤 조화를 부려놓았나 궁금해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아침상은 늘 뒷전이다 보니 등교시키는 일이 늘 부산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제(13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베란다로 나갔다. 제일 먼저 오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수정되길 기다리는 어린 오이는 없는지, 네 그루 오이의 밑동부터 넝쿨 손이 나풀거리는 꼭대기까지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 다음은 방울토마토. 그 옆의 붉은 장미의 꽃망울을 살피고, 난간에 걸쳐놓은 디즈니랜드 로즈의 어린 꽃망울에 진드기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살핀 후 그 외의 몇몇 꽃 화분의 시든 꽃잎을 따주었다.

▲ 카라 꽃잎 끝에 물방울이 맺혔습니다
ⓒ 장영미
그 다음 순간 눈길이 머문 곳은 분홍빛 카라. 제법 꽃망울이 예쁘게 터진 게 고마워서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분홍 꽃잎 끝에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밤새 비가 내린 것 같지는 않은데 웬 물방울인가 싶어 다른 곳도 살폈다. 그런데 유독 카라의 이파리 끝에만 물방울이 맺혀 있거나 이파리를 타고 물기가 흘러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파리에 맺힌 건 딱 '무당벌레' 같았다.

▲ 투명 무당벌레 1
ⓒ 장영미
▲ 투명 무당벌레 2
ⓒ 장영미
▲ 투명 무당벌레 3
ⓒ 장영미
▲ 투명 무당벌레 4
ⓒ 장영미
'투명한 무당벌레, 이거 아침이슬?'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의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아주 오랜만에 이 노래를 떠올렸다. 왜 가슴이 뭉클해 오는 걸까. 이 글을 쓰면서 시를 확인하려고 인터넷을 뒤졌다. 누군가 노래를 올려놓았다. 따라서 큰 소리로 불러보았다. 내친김에 '광야에서'도 부르고, '솔아 솔아 푸른 솔아'도 불러봤다.

두 살짜리 아들 녀석이 옆에서 같이 흥얼거린다. 처음 듣는 선율인데 제 맘에도 뭔가 느껴지나 보다, 자꾸 다시 불러보라는 걸 보면. 그런데 야후 백과사전을 보니 이슬에 대한 설명이 카라의 물방울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지면이나 물체의 표면에 대기의 수증기가 응결하여 결로(結露)한 물방울. 단, 풀이나 나뭇잎에 생긴 물방울은 다른 원인에 의한 경우가 있으므로 기상관측의 경우에는 제외한다…"

▲ 이파리 끝에 맺힌 물방울
ⓒ 장영미
추측건대(자연에 좀 무지한 걸 용서해주시길…), 카라가 밤새 빨아들인 물기를 이파리 끝으로 방출한 게 아닌가 싶다. 대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한 게 아니라, 뿌리로 빨아들인 물기가 카라의 조직 속을 돌고 도는 긴 여정이었거나, 아님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세상으로 내던져진 것이거나….

이 카라는 작년 봄에 화분 째 사온 것이다. 분홍색과 흰색. 꽃이 많이 잘 피면 꽃병에도 꽂아보겠다는 야무진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꽃병에 꽂을 새도 없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둘 꽃대가 늘어지는 게 아닌가. 내심 참 실망이 컸다. 그렇게 흐지부지 꽃이 지고, 잎이 시들고, 가을과 겨울 동안 화분 째 처박혀 있었는데….

무지하고 무심한 주인네는 카라가 구근식물이란 걸 모르고 있었다. 그걸로 영영 이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다시 새봄이 오고, 봄기운에 들뜬 주인네가 다시 헌화분들을 뒤집어엎어 새 꽃들을 심기 시작했다. 바짝 마른 화분 속에 박혀있는 작은 구근들을 발견하고 기절할 뻔했다. 작은 구근들 끝에 작고 뾰족한 새싹이 돋아나 있었던 것이다.

죽은 자식이 이렇게도 살아 돌아오는구나. 말할 수 없이 기쁘기도 하고, 구근들에게 미안해 죽을 뻔했다. 생명의 위대함에 경배를!

구근식물은 처음 접하는 것이라 지식을 찾아 인터넷 서핑. 분홍 카라는 습한 걸 좋아하고, 흰 카라는 건조한 걸 좋아하는 성질이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이미 기다란 플랜터에 나란히 심어놓은 뒤였다. 그 탓일까? 분홍 카라는 꽃이 피는데 흰 카라는 이파리만 무성한 게.

여튼 카라가 만든 투명 무당벌레는 순결해 보였다. 어떠한 이물질도 끼어있지 않은 순수한 결정. 표면의 맑고 깨끗한 물 분자들이 대기의 압력에 눌려 살랑살랑 흔들렸다. 대치의 팽팽한 긴장은 그러나 일순. 언제나 대기압과 중력의 승리다.

▲ 대기압과 중력에 투명 무당벌레는 완패!
ⓒ 장영미
흩어진 물 분자는 다시 대기 중으로, 투명 무당벌레는 그렇게 사라졌다.

태그:#카라, #무당벌레, #이파리,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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