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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라는 인연 중에서 아주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가 있다. 그가 준 많은 생각들이나 신념 그리고 의지 이런 것들이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마음속에 말없이 도사려 앉아 있다가도 시련이 주는 고비 고비에서 늘 자신을 이겨내는 그런 힘을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한테는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 있다. 살아오는 동안 그분만큼이나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거짓과 속임수가 판치는 세상에서 나는 말과 행동이 일치 하였던 그 분을 기억한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거창은 경남의 한 시골이다. '거창'이라는 말만 나와도 반갑고 그리운 곳이다. 그곳은 졸업생 모두에게 항상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고 있는 자랑스러운 교장 선생님의 흔적이 배어 있는 곳이다.

요즈음은 모교가 신문이나 TV를 통해서 꽤나 많이 알려지고 있다. 민주교육의 산실이며 자율적인 참교육을 실시하는 본보기니 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그 학교를 견학하러 오고 또 이런저런 문의를 해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러한 칭찬과 영예가 있게 된 것이 전임 교장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눈물어린 노고와 땀과 정성의 결과이고 보면, 그분 생전의 업적에 뜨거운 존경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누런 골덴 양복을 잘 입으시고 편하고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시사철 검은 고무신을 신고 계시면서 빠른 걸음으로 학교 안을 돌아다니시던 그분을 우리는 "고무신 교장 선생님!"이라 불렀다.

무주구천동 산골짜기가 고향으로서 젊은 시절에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고용원이었지만,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성실하였는데 특히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변소 청소를 아주 잘한 덕분에 어느 미국 군인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분의 도움으로 미국에 있는 웨스턴 신학대학과 콩코드 신학대학원을 다니면서도 자기가 틈틈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한국 고아 17명을 미국으로 데려다 공부도 시키고 뒷바라지를 해주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학교를 마친 다음 부산 복음병원에 계시는 장기려 박사님의 복음 선교사업을 같이 하자는 제의도 마다하고 시골 낯선 구석으로 들어와서 학교를 인수하셨다. 그 때부터 오늘이 있기까지 헌신적이고 열성적인 한평생을 교육사업에다 모두 바쳤던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열리는 채플 시간에 그분이 들려주던 설교 내용은 바로 살아 있는 공부였고 우리들 정신의 좋은 안내자 역할을 했다. 일제시대 때 감옥에 들어가서 겪었던 일, 또 미국 생활을 하면서 일어난 일들, 본인의 강인한 주장과 철학이 담긴 인생관, 그리고 우리들의 앞길에 뚜렷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였던 힘차고 열정적인 설교는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개성이 있었다.

클라크 교장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유명한 말을 인용하여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하고 두 손을 높이 들고 아주 큰 소리로 외쳐대곤 하던 정열적인 교장 선생님. 그분은 그렇게 초인간적인 의지로 어려운 시련을 견뎌내면서 우리들에게 강한 의지력과 이상을 심어 주셨고 많은 용기와 다양한 미래를 꿈꾸도록 도와주었다.

가난한 학생에게는 학비와 대학 등록금을 책임지셨고, 사회봉사에 뜻을 둔 제자들에게는 확고한 신념을, 또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칭찬과 찬사를 보내면서 우리가 늘 '거고인'임을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잠을 자면서 일찍부터 새벽 기도와 명상으로, 학교 일로 동분서주하며 개인의 영달과 이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진짜 말 그대로 진정한 기독교인이자 훌륭한 스승이요 교육자였던 분.

교육위원회의 지시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선택과 교육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하다 보니 지역사회에서는 그분을 일러 '고집불통' '독불장군', 심지어는 '야당학교 교장' 등등의 유명한 별명도 따라다니곤 했다. 그 무서운 유신 시절에도 겁없이 삼선개헌 반대 데모를 국내 고등학교로서는 제일 먼저 하였기 때문에 그 일로 해서 교장 직위해제까지 당하셨다가, 용기있는 한 판사로부터 "이분은 이 지역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시 그 직으로 복직한다"는 판결을 받았던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하도 옷차림이 허름한데다가 고무신을 끌고 다니는 습관 때문에 학교를 방문하러 오신 손님으로부터 학교 소사 아저씨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막상 학교를 다닐 때는 그분이 가진 강한 개성과 고집이 싫기만 하여서 여학생들은 입을 삐쭉거리고 눈을 흘기며 미워도 했었지만, 우리가 어른이 되고 보니까 그분만큼 소신있고 주관있는 교육자가 드물다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확고한 신념과 의지로서 우리들을 무섭게 질책하고 꾸짖어 가며, 강한 민족정신과 애국정신을 심어 주면서 이 나라를 위하여 참되게 봉사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당부하셨던 훌륭한 지도자이며 참교육자였던 분.

그분은 학교 졸업생들의 가슴에 또 그 지역사회 곳곳에서 늘 푸른 소나무로 추앙되고 기억될 것이다. 진짜 내가 가장 참다운 교육자니 아니니 시비가 분분한 채 서로간의 반목과 싸움이 어지러운 교육 풍토에서 그분과 같이 소신있는 고집불통의 교장 선생님이 많이 나오기를 진정으로 기대해 본다.

태그:#거창고, #전영창, #교육자,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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