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5월 15일 케이옥션 경매에서 12억원에 낙찰된 천경자 화백의 <초원 2>. 이번 낙찰로 천경자 화백의 작품도 10억원대에 진입했습니다.
ⓒ 천경자
우리나라 미술시장에 '돈 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올해들어 케이옥션이나 서울경매 같은 큰 경매회사에서 '메이저 경매'를 한번 치루면, 100억원 이상의 거래가 성사됩니다.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코엑스 태평양홀에서 열렸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도 17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경매회사와 아트페어 모두 지난 해 2배에 가까운 액수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국내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돈은 1000억원 이상이라고 추정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미술시장에 몰아친 '돈 바람'

▲ 박수근 화백의 <노상> 가로 30cm 세로 13cm의 소품인데, 경매에서 10억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었습니다.
ⓒ 박수근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았습니다. 거의 모든 은행들에서 아트펀드를 운용하고, '개미투자자'들까지 합세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미술시장에로의 '돈쏠림'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이 내놓는 해석은 "한국 미술의 르네상스 시대가 오고있다" "과열이다" "작전 세력이 있다" "몇년은 지속될 것이다" 등등 다양하지만, 계속 상승세를 탈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그래서 '그림이 돈 된다'는 말이 퍼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미술시장을 기웃거립니다. 친구들과 그림계를 해서, 그림을 걸어 놓고 보다가 팔아서 단기차익을 얻겠다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도 언론의 문화면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림으로 단기차익을 얻기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생존해있는 유명작가, 인기작가의 그림값이 매우 상승한 상황이고, 만약 그들이 80년대의 인기작가들처럼 대량으로 작품을 제작할 경우 그림값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느 인기작가는 KIAF에서 대량주문을 받았습니다.

현재 한국 미술은 '르네상스'임에 틀림없습니다. 인사동에서는 하루에도 100여 건 이상의 전시회가 열리고, 화가들이 전시회장을 빌리려면 길게는 1년 전 짧게는 몇달 전에 예약을 해야합니다.

그렇지만 전시회를 여는 모든 화가들의 그림이 잘 팔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전시회 기간동안 친지의 구입이 아니면 한 점도 못 파는 화가들이 상당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화가 95% 이상에게는 그림열풍으로 인한 아무런 금전적 혜택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화가들이 전시회를 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도전이라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그림열풍으로부터 보통화가들이 받는 비금전적인 헤택입니다. 실제로 젊은 신인작가들 중에서는 우리나라 경매 뿐 아니라 외국의 경매에서도 각광받을 정도로 예술적, 금전적 성취를 이루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림열풍, 화가·애호가 모두에게 긍정적 자극

▲ 세계적 화가 백남준 화백 작품도, 판화의 경우에는 허리띠 조금만 졸라매면 구입할 수 있습니다.
ⓒ 백남준
아트펀드와 '개미투자자'들이 그림열풍의 중심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부 '개미투자자'들은 경매장과 화랑 전시회를 다니며 유명화가의 그림을 거의 '묻지마 투자'식으로 사고있고, 그래서 유명화가의 그림값이 수직상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그림열풍은 '한국미술의 르네상스'와 '묻지마 투자'가 혼합된 양상이지만, 화가는 자극을 받아 창작에 매진하고, 그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미술시장 상황은 '개미투자자'들에게는 불리하지만, 순수애호가들이 그림을 구입하기에는 오히려 좋습니다. 미술시장의 호황으로 유명작가는 아니지만 가능성있는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이 경매와 화랑에 많이 나오고 있고, 그들 작품값은 2~3년전과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그림열풍은 경매회사의 활성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경매장에서 거래되는 그림가격은 화랑에서 구입하는 가격의 절반 수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화랑전시회에서 구입하는 가격과, 전시화랑이 아닌 다른 곳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달랐던 '이중가격'의 거품이 위탁자와 입찰자에 의해 무너진 것입니다.

물론 같은 화가의 작품이라도 전시회 출품작과 일반 화랑에서 거래되는 작품의 수준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걸 이해해주는 애호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랑협회는 지난 몇년동안 경매회사에 거세게 항의를 했습니다.

경매에 의해 '이중가격'이 무너지자, 화랑 문턱을 높게 생각했던 초보애호가들이 경매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갖고있던 그림이 어느정도 정당한 값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던 소장가들도 경매회사에 위탁하기 시작했고, 경매에 나오는 그림들의 수준도 점점 높아지면서 가격상승이 시작된 것입니다.

늘어나는 '개미투자자'... '묻지마' 투자는 금물

▲ 우리나라 화가 작품 중 가장 높은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이우환 화백의 <선에서>, <점에서>, <조응> 시리즈는 경매에서도 화랑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이우환
현재 경매에는 비싼 작품만 출품되는 것이 아니라, 초보애호가들을 위해 가격이 저렴한 유명화가의 소품이나 판화도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경매장에는 젊은 직장인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매는 순수애호가들이 소품을 구입하기는 편해도, 그림을 증권처럼 생각하는 '개미투자자'들에게는 냉혹합니다. 경매에 나오는 크고 좋은 작품은 재력과 정보로 무장한 아트펀트와의 경합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고, 만약 이긴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높은 가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경매에서 '개미투자자'들이 앞으로 돈될 작품을 구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명화가 전시회에서 작품의 수준을 따지지 않고 구입하는 '묻지마 투자' 역시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나라 경매도 같은 화가의 그림이라도 작품성이 떨어지는 작품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미투자자'들의 투기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80년대 초반에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80년대 초반부터 IMF까지에도 그림투자 열풍이 있었고, 전시장 한 면에 걸린 작품을 몽땅 사는 '벽떼기'도 성행했습니다. 그래서 인가화가 중 일부는 비슷한 작품을 하루에도 몇장씩 그렸고, 강남의 일부 아파트에는 인기화가의 그림이 없는 집이 없다는 말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자 그런 화가의 그림값은 폭락했고, 미술경기가 좋다는 요즈음의 경매에서도 푸대접을 받습니다. 따라서 전문적인 안목이 없이 '묻지마 투자'를 할 경우, 그림으로 돈을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미투자자'들은 좋은 그림을 많이 갖고 있고, 좋은 전시회를 많이 하는 메이저 화랑에서도 좋은 작품을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진짜 좋은 작품은 벽에 걸기 전, 단골 애호가나 펀드매니저에게 미리 연락해서 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이저 화랑의 전시회에는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가도, 좋은 작품 아래에는 이미 판매되었음을 알리는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메이저 화랑은 순수애호가의 경우, 단골이 아니더라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사랑해서 그림을 감상하러 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화랑을 찾아간 애호가는 전시장을 한두바퀴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그 앞에서 한동안 서성거립니다. 좋은 화랑에서는 그런 애호가를 돈 많은 사람보다 좋아하기 때문에, 정중히 차도 권하고 그림에 대한 설명도 해줍니다.

이런 자세로 화랑을 들락거리다보면 메이저 화랑에서도 순수애호가로 인정해주면서 좋은 작품을 권해주고, 이런 저런 정보도 알려줍니다. 작품이 마음에 드는데 형편에 버거울 경우 분납도 하게 해줍니다. 완납 후에 작품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고, 먼저 작품을 갖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림을 진짜 사랑하는 애호가에게는 분납으로도 좋은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 화랑입니다.

그림도 사봐야 안목 길러져... 초보는 소품부터

▲ 오윤 화백의 목판화는 생전의 전시회에서 몇십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경매에서는 천만원 이상에 낙찰되고 있습니다.
ⓒ 오윤
그림은 순수애호가의 자세로 수집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능력과 안목에 따라 한점 두점 모으다보면 5년, 10년, 20년 후에 그림값이 오를 화가의 작품도 소장하게 됩니다.

초보애호가의 경우, 처음에는 판화나 드로잉 혹은 소품을 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그림을 구입할 때의 안목과 다섯점 이상 산 후의 안목에는 많은 차이가 있고, 그래서 처음에 산 그림은 '수업료'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림을 사보지 않으면 안목이 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훗날 선물용으로 사용해도 부담 없을 액수의 그림을 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림은 돈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돈으로 보지 않고 순수한 열정으로 한점 두점 모을 경우, 훗날 커다란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물론 그 가치가 돈이 될지, 벽에 걸린 그림으로 인해 얻은 자신과 가족들의 행복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순수애호가들은 형편에 따라 그림 모은 걸 후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태그:#그림시장, #미술시장, #미술경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