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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은 17일 오전 경의선 문산역과 동해선 금강산역에서 각각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 공식 기념행사를 갖고 오전 11시30분 북측 개성역과 남측 제진역을 향한 열차를 동시에 운행한다. 사진은 열차가 출발하기 전 기관사와 승무원들이 승무신고를 하는 모습.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철마는 달리고 있다."

2007년 5월 17일 낮 12시15분께 민족의 염원을 실은 철마(鐵馬)가 분단 56년만에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했다. 경의선의 경우 1951년 6월12일 서울-개성 운행이 중단된 이후 56년만의 일이며 동해선은 1950년 이후 57년만이다.

이로써 옛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철마는 달리고 싶다'던 민족의 비원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이 역사적 순간을 생중계한 <오마이뉴스>를 지켜본 한 독자(아이디 '아리랑')는 그 소감을 댓글에 이렇게 남겼다.

"이 순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요? 아… 더 이상 말이 안 나오네요. 나오는 건 눈물밖에."

'철의 실크로드'는 '샌드위치 코리아'의 탈출구이자 한민족경제공동체의 초석

더 보태어 무엇하랴만, '철마는 달리고 있다'는 현재진행형으로, 분단과 회한으로 얼룩진 역사의 순간을 돌파한 오늘의 남북 열차 시험운행은 역사적, 정치-군사적, 경제적, 민족적 관점에서 네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앞서 얘기한 대로 이번 시험운행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차가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는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외세의 개입과 한국전쟁으로 단절된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남과 북이 공동으로 복원함으로써 냉전의 사슬을 끊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둘째, 정치·군사적으로는 이번 시험운행을 계기로 남북한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군사적 보장 조치가 마련됨으로써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구축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의 남침 루트에 평화와 번영의 레일이 깔린 것이다.

셋째, 이번 시험운행 이후 2단계로 철도운행이 정례화될 경우, 경제적으로 남북 철도는 개성공단 인력 출퇴근 및 생산품 수송은 물론 물류비의 대폭 절감으로 한반도와 유렵을 잇는 '철의 실크로드'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것은 중·일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코리아'의 탈출구이자 한민족경제공동체 시대를 여는 초석이라는 의미가 있다.

넷째, '철의 실크로드' 시대의 개막은 한반도가 냉전에 포위된 지정학적인 '섬'에서 대륙과 해양을 잇는 명실상부한 '반도국가'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민족적 기상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와 베를린·파리를 거쳐 런던에까지 뻗치는 것을 의미한다.

5·18 27주년, 그리고 경의선 518㎞, 시험운행 27㎞... 뜻깊은 '우연'

공교롭게도 내일은 5·18민주항쟁 27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경의선의 노선(서울-신의주)은 518㎞라고 한다. 또 오늘 시험운행한 문산역에서 개성역까지의 거리는 27㎞라고 한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역사적 순간의 택일(擇日) 치고는 절묘한 선택인 셈이다.

그 때문인지 오늘 제11차 통합추진위원회 회의를 개최한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통합추진위원장)은 "5·18 27주년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우연치고는 너무 즐거운 우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른바 범여권 통합의 지리멸렬함에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간구함에서 나온 의미 부여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5·18 27주년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민족적 경사를 앞두고 철마 앞에 꽃을 뿌리지는 못할망정 재를 뿌리는, '우연치고는 너무 기분 나쁜 우연'이 연출되었다.

미합중국의 전권특명대사인 알렉산더 버시바우씨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잇따라 남북 정상회담 및 남북미중 4국 정상회담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북핵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는 14일(현지시각) 방미중인 신기남 국회 정보위원장을 만나 "남북관계와 6자회담은 같이 가야 한다"면서 "남북 정상회담은 필요하면 할 수 있지만 북한이 6자회담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도 16일 통일부를 전격 예방해 남북관계에서 한국정부가 '과속'을 하고 있다는 미 정부의 우려를 전달하고 한미 양국의 공조를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4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강연에서도 "남북관계 진전은 6자회담 합의사항의 진전과 맞물려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공개적으로 '남북관계 속도조절론'을 거듭 제기하고 있다.

현대사의 역사적·이념적·탈이념적 반미의 연원

▲ 56년만에 남북을 잇는 남북철도연결구간 시험운행열차가 17일 오후 도라산역을 통과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정택용
알다시피 한반도 분단구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후 처리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이 우리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양분시킨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분단의 1차적 책임은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 제국주의와, 강토에 분단의 38선을 그은 미·소(러시아)에 있다.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이자 전남대의 '후광 김대중 학술상' 첫 수상자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미국 시카고대)의 학술적 성과를 빌리지 않더라도, 전후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독단은 '역사적 반미'의 연원이 되었다.

미국은 분단의 책임에서뿐만 아니라, 광주에 대한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은 27년 전 당시 평시 미군의 작전지휘통제권 하에 있던 20사단의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묵인함으로써 사실상 군부의 '광주학살'을 방조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대학 운동권을 휩쓴 '이념적 반미'의 연원이 되었다.

미국은 또한 지난 2002년 훈련중인 미군 장갑차에 깔린 여중생 '효순-미선 사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줌으로써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된 '탈이념적 반미'의 연원을 자초했다. 그리고 그때의 '무대책'이 화근이 되어 그해 연말에 미국 정부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노무현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미국 조야의 시각이다.

그 때문인지 올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 정치권과 여론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 국무부는 올해 들어 분기별로 한국 대선 담당자를 한국에 보내 기존의 주한 미대사관과는 다른 별도의 채널을 통해 대선 관련 여론과 동향의 추이를 이중으로 검증하고 있다.

2002년 대선 예측 실패 반복 않으려는 미국의 안간힘

통상 주한 미대사관 정치과와 CIA(중앙정보국) 서울 사무소를 통해서 정보를 수집해온 전례에 비추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4·25 재보선을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미 국무부의 한 관계자도 솔직하게 토로했듯이, 2002년 12월 대선에서 드러난 '예측과 전망의 실패'를 더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안간힘의 일환이다.

당시 필자는 미 국무부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2007년 대선에서 예상되는 반미변수를 묻는 질문에 "미국이 과거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기에 큰 변수를 없을 것"이라며 "어쩌면 올해는 혹시 '토플(TOEFL) 대란'이 변수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답변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관계자와 지금 이 시점에 면담을 했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버시바우와 힐은 그래도 한국을 잘 이해하는 지한파로 알고 있다. 그런 발언이 나온 것은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역사적 순간의 택일 치고는 참 고약하다. 만에 하나, 미국의 의도적 개입으로 한반도 평화철도가 탈선(脫線)이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경험한 '역사적, 이념적 그리고 탈이념적 반미'가 한꺼번에 쏟아지게 될 것이다. 미국이 그런 네 번째 악수(惡手)를 두지 않기를 바란다."

태그:#경의선 철마, #알렉산더 버시바우, #크리스토퍼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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