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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과 뜻있는 인사로부터 기증받은 1,500여 권의 책들.
ⓒ 임현철

“오늘날 나를 존재하게 한 것은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이었다.”

세계 제일의 갑부인 빌게이츠는 그 성공의 바탕을 ‘작은 도서관’이라고 밝혀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만큼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 지원 없이 주민 스스로 만든 작은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15일 궁금증도 해소할 겸 이곳을 방문했다. 바로 전남 여수시 국동 주민자치센터. 이곳도 다른 주민자치센터와 마찬가지로 헬스, 요가, 풍물, 탁구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특화사업으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해 완공된 건물이라 외관은 깨끗하다. 평일 오후여서인지 조금 한산하다. 지난 2월부터 2층 28평 규모에 자리 잡은 작은 도서관 내부는 입구의 책상 위에 도서관 이용대장과 도서관 이용 신청서, 도서대출 기입장이 놓여 있다.

40개의 칸막이 책상, 2개의 트인 책상, 도서 진열장이 자리하고, 도서 진열장에는 아직 빈자리가 남아 있다. 기부가 더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한 마디로 조용하고 쾌적한 분위기다. 빌게이츠 같은 인물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을 성 싶다.

▲ 여수시 국동 주민자치센터 내의 '작은 도서관' 내부.
ⓒ 임현철

도서기증 1500여권, 자원봉사자 8명의 '작은 도서관'

3층에 자리한 국동 주민자치위원회를 찾는다. 정부지원 없이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종모(70) 위원장은 “공공 도서관과 멀리 떨어져 불편하던 차에 지역민의 요구로 2월부터 자생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면서 “독서를 통한 학습풍토 조성과 학습 기회제공 등으로 인재발굴이 기대된다”고 밝힌다.

아울러 이 위원장은 효과에 대해 “작은 도서관이 생긴 이후 자치위원들도 책을 보게 되고, 전체적으로 동네 분위기가 학구적으로 변한 느낌이다”면서 “이용자가 늘다보다 행사 참여도 늘어나 동사무소도 행정적 지시에서 자유로운 분위기로 전환된 것 같다”고 전한다.

둘러보니 주민자치센터에서 일을 보던 아주머니의 아이가 소파에 엎드려 잠들어 있다. 소파에 앉아서 잔다지만 아무리 아이라고 납작 엎드려 자기는 힘든 일. 실제로 자유로운 분위기임을 확인한다.

장정옥(51)씨는 “국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주위로부터 도서를 기증받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면서 “도서는 범우사 윤형두 회장으로부터 536권, 방영민 215권, 오문수 193권, 이종모 163권, 최창남 94권, 아침독서추진운동본부 50권 등 총 1541권을 기증받았으며, 자원봉사자를 구하기 위해 교회 등을 다니며 뛰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자원봉사자는 8명. 김태관, 최영환, 박공예, 오문수, 왕광호, 김문일, 김종휘, 오영숙 씨가 활동하고 있다. 보통 자치센터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개방되지만 작은 도서관 운영 이후 10시로 늘어나 자원봉사도 쉽지 않다. 이 덕분에 헬스 등 시설 이용 시간도 늘어 주민들이 편의를 보고 있다.

▲ 주민자치센터에 엄마와 함께 와 소파에서 자고 있는 아이.
ⓒ 임현철

반대와 우려 끝에 지난 2월 개관

여수해양경찰서에 근무하며 자원봉사를 하는 김태관(33)씨는 참여 동기에 대해 “동네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생겨 자투리 시간 활용에 좋다”면서 “일주일에 2~3일 이용하는데 자원봉사 요청을 받고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한다”고 말한다.

또 오영숙씨는 “이곳을 찾는 사람은 직장인에서 대학생, 공무원시험 준비생, 부동산 중계사 준비생, 교사 순위고사 준비생, 주부, 학생 등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계층이 매일 20여명이 찾고 있어 주민자치센터가 전체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작은 도서관 운영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주민들은 폐교된 학교를 작은 도서관으로 활용하길 주문했다. 그러나 작은 도서관 만들기에 동의했던 임정원 동장이 “어차피 부숴야 할 폐교에 전기, 전화 등의 시설을 할 경우 이중으로 예산이 낭비될 염려가 있다는 것”과 “관리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나선 것.

▲ 임정원 동장.
ⓒ 임현철
임정원 동장은 “신축된 자치센터에 작은 도서관을 입주시켜 샤워실과 헬스장 등을 이용하며 쾌적한 환경에서 독서와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제안”하여 “폐교가 아닌 주민자치센터에 작은 도서관을 설치하자”며 장소를 주민자치센터 내로 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자 주민자치위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우범화 우려가 있다”는 것. 이로 인해 작은 도서관 운영은 무위에 그칠 뻔 했다. 임정원 동장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을 수는 없다. 해보고 안되면 그때 말자”며 주민자치위원을 설득했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 2월 작은 도서관이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치위원들이 순번으로 외곽 순찰을 돌며 야간 우범지대화를 막았고, 자원봉사자들도 나름대로 내부 운영에 힘썼다.

그러나 호락호락 하진 않았다. 이종모 위원장은 “작은 도서관이 들어선지 며칠 되지 않아 새 건물 벽에 낙서가 등장했다”면서 “도서관을 반대한 이들의 우려가 현실로 돌아오는 것 같아 긴장하고 순찰 강화 등의 방법이 동원됐다”고 술회한다.

운영비, 운영시간, 자원봉사 한계 극복 '관건'

주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작은 도서관이 운영된 지 3개월여가 지난 지금, 이들은 또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자원봉사의 한계, 도서 구입 등 운영비 문제, 시간 연장 요구 등이 그것.

이와 관련, 정부도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작은도서관 70개관 조성 ▲지식정보 격차해소 및 지자체 민간의 자발적 참여 등을 사업목표로 설정하고, 총 59억8천7백만원의 예산을 수립, 6월 5일까지 사업신청을 받아 도서관 협력망 구축, 작은 도서관 조성 및 활성화 사업에 지원할 계획이다.

서완석 시의원도 “동과 주민이 함께 스스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면서 “도서구입비와 자원봉사의 한계가 있는 만큼 순천시, 부천시, 창원시의 예를 들어 지자체에서 재정지원이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문수씨는 “정직하고 바른 사람을 키우는 방법은 교육 밖에 없다. 이런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희망을 찾는 일’이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처럼 빌게이츠 같은 이가 이 ‘작은 도서관’을 통해 나타나길 기대한다. 그러면 우린 또 하나의 희망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 이종모 주민자치위원장과 임 동장, 그리고 자치위원들이 '작은 도서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임현철

▲ 자원봉사자들.
ⓒ 임현철

▲ 주민자치센터에서 편의 시설들을 이용하는 시민들.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와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작은 도서관, #주민자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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