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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11일 "경선 룰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며 '대표·국회의원직 동시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다.

자신의 경선규칙 관련 중재안이 15일 예정된 상임전국위원회에 상정되지 않거나, 대선주자 사이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표직은 물론 국회의원직도 내놓겠다는 것이다.

중재안을 거부한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마지막 압박 카드를 날린 셈이다. "희생 없이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고 부연했지만, 그가 이처럼 '벼랑끝 전술'을 편 배경은 뭘까? 강재섭 대표의 정치 역정과 박근혜 전 대표와의 '애증 스토리'가 새삼 주목되는 대목이다.

'호랑이 새끼'를 키운 강재섭

현재의 '국회의원 박근혜'를 있게 한 주역이 강재섭 대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98년 4·2 재보선 당시 강재섭 대표가 '박근혜를 한나라당으로 영입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강 대표는 박 전 대표에게 "아버지의 못다 이룬 뜻을 펴라"며 대구 달성 보궐선거 출마를 설득했고, 실제 선거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유세를 통해 박 전 대표의 정계 입문에 기여했다. 이후 강 대표는 사석에서 "박근혜는 내가 모셔왔다", "내가 오라버니"라며 '박근혜의 조력자'임을 내세웠다.

2004년 탄핵 역풍 때는 '박근혜 유일 대안론'을 내놓으면서 다시 한 번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최병렬 대표' 체제가 무너지고, 당이 와해 직전에 처했을 때 강 대표는 다시 박 전 대표를 찾았다. "당을 구하기 위해서 (당 대표 경선에) 나서달라"고 요청한 것.

당시 대구·경북지역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2002년 대선 때부터 유력한 대선후보 물망에 오른 박 전 대표에 대해 "여성이 어떻게…"라며 탐탁해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강 대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시당위원회를 소집해 여론을 결집시키고, 당내 소장파까지 설득했다.

'대통령 후보 박근혜'의 가장 큰 밑거름 중 하나가 "탄핵 역풍을 깨고 당을 살렸다"라는 것이라는 점에서 박 전 대표로서는 강 대표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2005년 3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 전 대표가 강재섭 대표를 밀어 '대구·경북(TK) 투톱' 체제를 출범시킨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영남당 이미지를 지우려고 노력했던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TK당'이라는 정치적 부담까지 감수한 '보은성' 지원이었다.

박 전 대표는 2006년 7·11 전당대회에서 다시 강재섭 대표를 물밑 지원해 당선시켰다. 그러나 당초 박 전 대표는 강재섭 대표가 아닌 김덕룡 의원이나 충청권 출신의 강창희 전 최고위원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미 공천헌금 논란에 휩싸여 출마조차 할 수 없었고, 강 전 최고위원은 원외인사라는 약점 때문에 힘을 받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이명박 전 시장이 밀고 있는 이재오 최고위원의 대표 당선이 유력해지자, '어쩔 수 없이' 강재섭 대표를 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당시 박 전 대표의 선택은 강 대표에 대한 '보은성'으로 보기 힘들다.

강 대표 스스로도 박 전 대표의 물밑 지원을 부정하지 않았다. 경선 막판 다급해진 강 대표 역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지원이었다.

당시 강 대표는 유세에서 "2년 전 탄핵 역풍 당시 50석도 못 건진다고 할 때, 나는 박근혜 의원이 당 대표를 해야만 당이 살 수 있다고 총대를 멨다"면서 "박근혜 (전) 대표를 위해 나를 버렸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던 박 전 대표를 '팔아' 표를 호소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강 대표는 본인의 자존심에 심대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대통령의 꿈'까지 접고 출마한 대표 경선이었다.

자신이 정계에 입문시켰던 '정치초년생 박근혜'가 정확히 8년만에 자신의 머리 위에 선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적 위상과 영향력 면에서 박 전 대표에게 밀리는 양상을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가 '대선의 꿈'을 접고 당 대표로 눌러앉은 반면 박 전 대표는 앞서서 대선 가도를 달리고 있는 현 상황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호랑이 새끼'를 키운 셈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강 대표가 박 전 대표의 정치력과 대중성을 너무 얕본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강 대표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박 전 대표를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대구에서 내리 5선 강재섭 vs 아버지의 DNA를 가진 박근혜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강재섭 대표와 박 전 대표를 잘 아는 당내 한 중진 의원은 "강 대표가 원래 머리가 상당히 좋은데, 이번에는 너무 상황을 쉽게 보는 것 같다"며 "치열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강 대표가 박 전 대표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봤다"며 "배포로 치자면 강 대표는 박 전 대표를 못 따라온다. 박 전 대표는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DNA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강 대표의 정치 행로가 '주류의 길'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강 대표는 한나라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서)에서만 내리 다섯번(13대부터 17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특히 정치적 고비 때마다 대세를 따랐다. 강 대표는 80년대 후반 박철언 전 의원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고, 그의 오른팔로 불렸다. 그러나 14대 대선을 앞두고 박 전 의원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민자당을 탈당했지만, 그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2000년 16대 총선 직전에도 TK맹주로 불려온 고(故) 김윤환 전 의원이 공천 탈락에 반발, 탈당하면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역시 그는 김 전 의원을 외면했다. 이번에도 강재섭 대표가 박 전 대표와 등을 진채 '이명박 대세론'에 따라 나섰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강재섭 대표가 박 전 대표와 배포싸움을 하려고 했든, 이명박 대세론을 따르려고 했든, 아니면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였든, 일단 대표직과 의원직을 걸고 올인을 한 상태다.

강 대표는 상임전국위원회가 열리는 15일까지 지방 등지에서 칩거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대표직과 의원직'을 언급한 것도 지방으로 이동하는 길 위에서였다. 그 길이 옳은 것이었는지, 그른 것이었는지는 곧 판가름 날 것이다. 그의 정치 인생도 그와 함께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태그:#강재섭, #박근혜, #이명박, #중재안,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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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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