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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부분 수정: 5월 11일 오후 6시]

어버이날이었던 지난 8일, 대부분의 언론들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최근의 실업률 하락 및 고용률 정체 요인 분석' 보고서를 인용 보도하며, 실업률 하락에도 불구하고 고용률이 정체되고 있는 것은 청년층에서 취업을 포기하는 순수 비경제활동인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올해 1/4분기 실업률이 3.6%로 전년 동기의 3.9%에 비하여 0.3% 하락했지만 1/4분기 고용률은 전년 동기(58.5%)와 유사한 58.6%를 기록한 이유는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의 확대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언론은 비경제활동인구가 2006년 현재 419만명에 이른다는 통계결과를 전제로, "학생포함 취업포기자 415만명... 고용률 정체 초래"(연합뉴스), "취직해봐야 무슨 소용... 취업 포기자 415만명 달해"(세계일보), "청년 415만명 그냥 놀아요... 취업 포기 1년새 10만명 급증" 등의 기사를 쏟아 냈다.

그리고 9일에는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층(15~24세)이 크게 늘었다"(매일경제 사설), "취업을 못해 놀고 있는 청년 비경제활동 인구가 415만명이나 되는 것이 현실"(국민일보 사설), "거듭된 취업 노력이 수포로 돌아감으로써 아예 취업 의욕을 접었으며 결국 구직활동마저 포기한 순수 비경제활동 인구가 지난해 415만명"(경향신문 사설) 등의 사설을 내보냈다.

외환위기 이후 청년 실업의 심각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KDI의 연구보고서를 인용하는 언론의 보도행태는 현실을 지나치게 과잉해석하고 있으며, KDI의 분석 또한 통계해석의 잘못으로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데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비경제활동인구란 '취업포기자'가 아니다

우선 지적할 것은, 비경제활동인구란 '취업포기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경제활동인구(Not economically active population)란 "만 15세 이상 인구 중 조사대상 주간에 취업도 실업도 아닌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들은 주된 활동상태에 따라 가사, 통학, 연로, 심신장애, 기타로 구분"된다. 여기에는 고등학생을 포함해 대학생, 대학원생 등이 포함된다.

언론은 비경제활동인구 419만명 중 취업의사가 있으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실망실업자와 경계실업자 약 4만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순수비경제활동인구를 '취업포기자'로 규정해 버렸다. 이 규정에 따르면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대학원생도 모두 '취업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한국의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6년 현재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의 진학률은 99.7%에 이르며,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의 진학률은 90년대 중반이후 급격히 높아져 2006년 현재 82.1%에 이르고 있다. 고등학생수 190만명, 대학생수 300만명이 넘는 현실에서 415만명을 모두 취업포기자로 규정하는 것은 통계용어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인 뻥튀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학업 등으로 지금 당장 '취업의사가 없는 것'과 '취업을 포기한 것'은 전혀 다른 의미다.

ⓒ 통계청

KDI에서 실업률의 하락에도 고용률이 증가하지 않는 원인을 취업포기자 때문으로 본 이유는 2003년 이후 꾸준히 하락하던 비경제활동인구가 2006년 갑자기 10만명이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에서 최근 4주간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율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업률의 하락에도 고용률이 늘지 않은 것은 갑자기 늘어난 비경제활동인구 10만명이 취업의사를 포기했기 때문에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은 보고서의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415만명을 전부 취업실패로 인한 포기자로 규정하는 듯한 보도를 내보내, 자극적인 용어 사용으로 청년실업문제를 상업화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고등학생의 취업포기가 대학교육 때문?

그러나 KDI의 보고서에도 함정은 있다. 바로 청년층을 15세에서 24세까지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OECD는 통상 15세에서 24세까지를 청년층으로 구분하고 있고 KDI의 연구도 그 기준을 따르고 있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고등학교·대학교 진학률과 군복무 등으로 인해 사회로의 진출이 늦은 한국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기준은 문제가 있다. 우리의 경우 '청년실업'이라고 할 때 '청년'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인 20~29세로 정의하는 것이 현실에 더욱 부합한다.

KDI의 연구로 돌아가 15~24세 비경제활동인구를 보다 세분화시켜 보자. 대학생 등 고졸 이상의 연령대인 20~24세의 비경제활동인구는 2005년 131만명에서 2006년엔 130만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반면 주로 고등학생 연령대인 15~19세의 비경제활동인구는 2005년 276만명에서 2006년 286만명으로 10만명이 늘었다. 결국, KDI에서 취업을 포기한 것으로 추측한 '취업포기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청년(20세 이상)이 아니라 고등학생 인구였던 것이다.

ⓒ 통계청

세부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15세에서 19세의 비경제활동인구 10만명 증가가 '취업의 포기'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던 고등학생이 학업만 하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20~24세 비경제활동인구의 감소도 높은 등록금 등의 이유로 휴학을 하고 돈을 벌거나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수가 늘었다는, 보고서의 취지와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2005년 186만4000명이던 15~17세의 고등학생인구가 2006년 190만8000으로 4만4000명이 늘었고, 소년·소녀가장 또한 계속 줄고 있는 이유도 15~19세의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의 한 요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KDI의 보고서와 언론보도처럼 단순히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를 아예 취업을 포기한 사람수의 증가로 규정할 수 없을 뿐더러, 사실 청소년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한 것을 두고 청년층의 고용부진이 "노동수요와 고학력화에 따른 청년층의 높은 기대수준간의 큰 괴리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제대로 된 원인분석을 통해 청년실업대책 세워야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OECD 기준으로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실업자로 분류되면 실업수당 등 각종혜택을 누릴 수 있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청년실업은 주로 그 책임이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돌려지고, 취업 실패자라는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통계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실제 실업률은 훨씬 높을 것이다.

취업을 아예 포기한 사람은 물론 취업의사가 분명히 있지만 4주 내에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취업준비생은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런 구직 단념자는 2006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2만2000명에 이른다.

청년실업문제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파악에 근거한 대응이 필요하다. KDI의 보고서를 포함해 대부분 청년실업문제의 대안을 다루는 연구들은 문제의 원인이 일자리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수요와 노동공급(고학력화에 따른 기대수준)의 불일치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기대수준을 낮출 것을 요구하거나 노동수요에 부응하는 교육과정을 편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열악한 노동환경을 감수시키는 것으로 실업대책을 논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진짜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강화된 주주자본주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말고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아무런 투자를 하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고학력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당해도, 사회적 부가 경제성장에 투입되지 못하는 주주자본주의 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실업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기업이 요구하는 교육이 부족하다고 한탄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각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식기반산업에서도 신입사원 채용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전공이나 대학성적이 아니라 팀워크 능력이나 인성이라고 답하고 있고, 전문적인 산업임에도 비전공자를 채용하는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은 사람이 "일정기간의 훈련만 거치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런 응답은 우리 대학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가를 시사해준다. 대학 자체가 신자유주의화하면서 상대평가제 도입으로 경쟁체제가 강화되고, 수익자부담 원칙으로 폭발적인 등록금인상을 가져왔지만, 대학교육은 후퇴하고 질 좋은 일자리는 줄었다.

청년실업문제를 포함해 우리사회의 각종 문제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나올 대안은 힘든 일자리라도, 좀 어려워도 그나마 감사하며 참고 견디는 것 외엔 남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가정책 주도자들이 나라를 어떻게 조직해 왔고, 그 결과가 어떤지는 눈에 빤히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이 앞으로 무얼 하려는지,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얼마나 같고 다른지를 살펴본다면 그 결과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한미FTA로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하지만, 아무도 일하기 싫은 일자리라면 실업문제 해결은커녕 외국인노동자들의 도움만 기다리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스트플랫폼(www.eplatform.or.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청년실업, #비경제활동인구, #취업포기자, #실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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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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