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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름이 솟아나는 담양 관방제림
ⓒ 서종규
5월이 시작되면서부터 초등학교 옆을 지날 때 울려 퍼지는 노래가 발걸음을 가볍게 만듭니다. 그중에서도 '어린이날 노래'가 울려 퍼지면 이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며 다시 한 번 초등학교 때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 봅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푸른 하늘을 나는 상상, 푸른 벌판을 내닫는 기분,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 그랬지요. 오월은 푸릅니다. 그래서 5월엔 희망을 봅니다.

▲ 관방제림은 무성한 나뭇잎으로 인하여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건강 걷기 코스가 되기도 합니다.
ⓒ 서종규
지난 3일 오후, 푸름이 솟아나는 전남 담양 관방제림에 갔습니다.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이 관방제림은 조선 인조 26년(1648년) 부사 성이성이 영산강 상류인 담양천의 범람을 막기 위하여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답니다.

담양읍 남산리 동정자 마을에서 수북면 황금리를 지나 대전면 강의리까지 이어지는 약 6㎞에 수령 200년이 넘는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음나무 등 총 177수의 고목이 거대한 풍치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관방제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 푸른 5월엔 희망을 본다

이 관방제림은 2004년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의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는데, 어른 2∼3명이 같이 껴안아야 할 정도로 큰 고목 아래에는 평상이 놓여 있기도 하고, 의자가 놓여 있기도 하며, 몇 곳엔 정자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무성한 나뭇잎으로 인하여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건강 걷기 코스가 되기도 합니다.

▲ 거대한 고목에서 솟아나는 그 연하디 연한 새 잎들이 내미는 얼굴들
ⓒ 서종규
관방제림 둑길에 올라서자 거대한 나무들에서 솟아나는 새잎들의 환호성이 시원한 강바람을 타고 퍼져 옵니다. 거대한 고목에서 솟아나는 그 연하디 연한 새 잎들이 내미는 얼굴들, 아이의 손같이 연한 새잎들의 앙증스러운 모습, 푸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 나무의 새잎이며, 시냇물의 흐름이며, 냇가에 피어있는 한 송이의 풀꽃에게라도 인사를 하면서
ⓒ 서종규
학창시절에 눈이 부시게 푸른 날을 꿈꾸며 읽었던 이양하의 수필 <신록예찬>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결이 내 피부에 닿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 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볕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 이양하의 수필 <신록예찬> 중에서

▲ 관방제림엔 수령 200년이 넘는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음나무 총177수의 고목이 거대한 풍치림을 이루고 있습니다.
ⓒ 서종규
관방제림 옆에 있는 추성경기장에서는 '제9회 담양 대나무축제'가 한창입니다. 각 면마다 제 각각의 특산물을 형상화하여 꾸민 사람들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고, 담양천에서는 대나무 뗏목을 타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환호가 들립니다. 각종 부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체험행사며 공연, 연 끝을 휘저으며 날아다니는 패어글라이딩까지 모두 흥겨운 잔치입니다.

이 관방제림의 거목들이 피워내는 새 잎들의 향연을 바라보며 계속 걸어 올라갔습니다. 둑 옆에 펼쳐진 자운영꽃밭의 붉음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애기똥풀의 노란 꽃이며, 푸르게 솟구치는 창포 잎이 늘어선 담양천의 모습이 마음의 여유로 차오릅니다. 저기 물가에 앉아서 낚시질에 여념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 오월은 푸릅니다. 그래서 5월엔 희망을 봅니다.
ⓒ 서종규
메타세콰이어길 접어들자, 숨 멎을 것 같아... 신록의 푸름이 기어오른다

나무의 새잎이며, 시냇물의 흐름이며, 냇가에 피어 있는 한 송이의 풀꽃에게라도 인사를 하면서 관방제림 둑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둑길이 끝이 나는 지점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끝나는 지점은 메타세콰이어길과 만납니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드라이브의 배경으로 삼고 있기도 하는 이 메타세과이어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2006년에 건설교통부는 우리나라 도로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을 선정하여 발표했는데, 이 메타세콰이어길이 최우수상을 받아서 더 유명해진 길이 되었습니다.

▲ 둑 옆에 펼쳐진 자운영꽃밭의 붉음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 서종규
메타세콰이어길에 접어들자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 아! 거대하게 솟아오르는 나무줄기를 신록의 푸름이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미술책에서 보았던 완벽한 원근구도의 대칭 모습 속에서 하늘을 향하여 뻗어가는 푸름의 함성이 내 몸을 두둥실 띄워놓은 것 같습니다.

이 푸름을 보고 권태를 느꼈던 이상 시인의 수필 <권태>가 생각이 납니다. 이상은 분명 재미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물론 시인의 개성 있는 눈으로 바라본 초록의 세계에 대한 비판이겠지만, 아마 그분이 살아서 이 길을 한 번 걸어 보았다면 새로운 수필을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 표면적의 100분의 99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 그렇다면 지구야말로 너무나 단조 무미한 채색이다. 도회에는 초록이 드물다. 나는 처음 여기 표착(漂着)하였을 때 이 신성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닷새가 못되어서 일망무제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沒趣味)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이상의 수필 <권태> 중에서

▲ 담양 메타세콰이어길에 접어들지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
ⓒ 서종규
'담양 대나무축제'를 총괄 진행하고 있는 고재종 시인은 메타세콰이어길 나무를 중학교 시절에 심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40여 년 전에 심었다는 것이지요. 그 나무들이 저렇게 자라서 하늘 높이 그 푸름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푸름이 너무 좋아요. 돋아나는 새잎의 푸름이 너무 좋습니다. 관방제림의 아름드리 고목에서 솟아나는 새잎의 색상을 보세요. 저 연한 초록의 색상이 차차 나무 전체를 감싸고, 그 푸름이 세상을 감싸지 않는가요? 관방제림 둑길을 따라 메타세콰이어길까지 가 보셨는가요? 그 새잎들의 푸름이 하늘까지 푸르게 만들지 않던가요?"

▲ 아! 거대하게 솟아오르는 나무줄기를 신록의 푸름이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 서종규
메타세콰이어길을 가만히 걸어갔습니다. 가끔은 자동차들이 지나가서 분위기를 흩어 놓기도 하지만, 하늘 가득하게 채워진 푸름이 내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내 마음 녹색으로 변하는 순간, 내 몸은 날아가는 새들처럼 푸른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 내 마음 녹색으로 변하는 순간, 내 몸은 날아가는 새들처럼 푸른 하늘을 날 것 같습니다.
ⓒ 서종규

태그:#담양, #관방천, #메타세콰이어, #5월, #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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