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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나간 교육청 밑에 혼 빠진 학교가 있었다. 서울 강남교육청과 강남지역 한 초등학교 얘기다.

강남교육청(교육장 황남택)이 지난 4월 12일 이 지역 교장 39명을 강원도 속초로 불러 L논술업체 사장의 강의를 듣도록 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아래 박스기사 참조).

그런데 이번엔 같은 지역 K초등학교 교장이 지난 3월 21일 학부모를 동원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강연자 또한 해당 학교의 '방과후학교' 강사이면서 학원주변 인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올해 들어 논술교육을 강조한 뒤 생긴 일이다.

학원 주변 인사가 학부모 총회에서 TV 강연

3월 21일은 K초등학교 학부모총회가 있는 날이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43개 교실에 모인 400여명의 학부모들은 담임교사가 켜 놓은 텔레비전을 반 시간동안 봐야 했다. ○○영재개발원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P씨의 특별강연을 듣기 위해서다.

P씨가 이날 강연한 내용은 독서 논술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 P씨는 이 강연 이후 웃었다. 자신이 이 학교의 '방과후학교' 강사인데 235명의 학생이 대거 수강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P씨는 논술학원 주변 인사였다. 2005년 논술 프랜차이즈 업체(○○SBS) 사장을 했고,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단체는 지금도 한 논술학원의 홍보 홈페이지에 내걸려 있다.

이에 대해 P씨는 "현재는 학원과 전연 관계가 없고, 오로지 방과후강사 일만 하고 있다"고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이날 강연을 들은 한 관계자는 "학부모총회에서 외부강사가 강연한 것도 이상했지만 며칠 후 그가 방과 후 강사란 사실을 알고 기가 막혔다"고 털어놨다.

반면 이 학교 K교장은 "강남 학부모들이 보통 사람들이냐, 제대로 된 사람이 강의하지 않으면 듣지도 않는다"면서 "학원 관계자든 '방과후학교' 강사든 좋은 강연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지난 4월 12일 교육청이 연 "속초 논술 강연도 감명 깊게 들었다"고 덧붙였다.

교장들, 속초로 '출근'한 까닭은...
서울 강남 초등교장 39명의 해괴한 봄나들이

서울 강남지역 초등학교는 지난 12, 13일 이틀간 결재가 미뤄지는 등 업무공백 상태였다. 이 지역 50개 초등학교 가운데 39개교 교장이 강원도 속초에 있는 한 콘도로 사실상 '봄나들이'를 떠났기 때문이다.

이 지역 교장들을 평일 속초로 이끈 사람은 다름 아닌 서울 강남교육청 황아무개 교육장.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을 맡다가 지난 3월 1일자로 부임한 황 교육장을 비롯하여 학무국장, 초등교육과장과 장학사 등 10여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틀 일정 가운데 연수다운 연수는 첫날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학교혁신연수'였다. 나머지는 친목도모의 시간을 갖거나 신흥사와 비선대 등 설악산 일대를 돌아다니는 '체육문화연수(?)'를 벌였다고 한다.

첫날 연수의 강사로 나선 이는 놀랍게도 150개 사설논술학원을 지역업체(프랜차이즈 체인)로 거느린 L논술업체 박아무개 사장이었다. 이 업체는 같은 강남지역인 서초구에 본사를 두고 있다.

김민석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처장은 "사설논술업체의 논술 사교육이 국가적 걱정거리로 떠오른 상황에서 논술 사교육 1번지로 일컬어지는 강남지역의 교장들이 사설업체 사장에게 '논술의 중요함'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니 황당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 사장을 섭외한 이는 강남교육청 아무개 과장으로 확인됐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한 교장은 "학기 초 바쁜 와중에 이틀씩이나 학교를 비우도록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원 관계자를 섭외한 과장은 "사설논술학원 관련자란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섭외를 했다. 다른 의도가 없었다"고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황 교육장도 "취임 전 미리 잡힌 일정에 따라 연수에 참가했으며 학원 관련자 섭외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 3월 20일 사교육경감대책에서 "강남지역 초등학생의 29.1%가 (사설논술학원에) 참여하는 등 크게 높아 타 지역을 견인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날로 팽창하는 강남지역 논술 사교육 현상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조학규 서울시교육청 교원정책과장은 "적절한 강사를 선정해야 하는데 학원 사장의 강의를 들었다면 관련 사실을 알아보겠다"고 답변했다.(<교육희망> 4월 25일자). / 윤근혁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 <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강남교육청#논술학원#학부모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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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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