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수정 : 18일 오전 8시 25분]

얼굴 없는 화가로 알려진 뱅크시. 최근 5년 동안 국내에서 뱅크시 관련 전시가 몇 차례 있었다. 뱅크시의 전체를 조명하기보다는 그 일부의 주제만을 포착하기도 해 아쉬움을 남긴 예도 있다.

지난 5월 10일부터 오는 10월 20일까지 그라운드서울에서 열리는 <리얼 뱅크시 REAL BANKSY : Banksy is NOWHERE>의 전시는 어떨까.

이번 전시는 '뱅크시 연구의 권위 있는 큐레이터들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기획'된 전시이자, '페스트 컨트롤(뱅크시가 직접 설립한 회사로 그의 작품을 판매하거나 진품 여부를 판정하는 인증 기관의 역할을 한다)'에서 인증된 작품 29점 그리고 그 외 영상 및 재현 작품을 선보인다.

재현 작품의 아우라
 
투하되는 폭탄을 포획하다. 평화는 소녀의 웃음처럼. 전시장 내 촬영 및 레이아웃
▲ 폭탄을 안은 소녀 투하되는 폭탄을 포획하다. 평화는 소녀의 웃음처럼. 전시장 내 촬영 및 레이아웃
ⓒ 황융하

관련사진보기

 
현대 미술의 반항아로 불리며 자본주의 시스템을 정조준하는 뱅크시 작품의 메시지는 항상 강렬하다. 그런데다 신비주의적 행동이 더해져 전 세계 미술계는 물론, 미술 애호가를 사로잡고 있다.

뱅크시가 추구하는 길거리 낙서(그라피티)는, 기존에 익숙했던 패턴을 전복시키며 무궁무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언뜻 보아도 쉽게 각인되며 더 들여다볼수록 친근해진다. 작품에 내재한 주제의 중층적 의미를 알아보게 되면 관람자들은 그의 작품 깊이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전시에는 '풍선을 든 소녀', '꽃 던지는 소년', '몽키 퀸', 'Fought the Law', '폭탄을 안고 있는 소녀'를 비롯해서 제목이나 그림 일부분을 보더라도 친숙한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현대 사회를 폭력과 전쟁, 지배라는 메커니즘으로 재단하되 그 해결 방책은 평화여야 한다는 상징을 표명한다. 또한 남성의 가부장적 권위를 신랄하게 조롱하는 패러디는 위트가 넘친다.

관람의 또 다른 묘미를 전시장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이동하는 동선을 따라 여러 벽을 지나게 되는데, 시선이 닿는 곳마다 재현된 복제품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걸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한다. 뱅크시가 실제로 그렸을 법한 재현 작품과 화이트보드의 인증된 작품을 견주어 보노라면, 왠지 모르게 재현 작품에 시선이 더 머무른다.
 
'풍선을 든 소녀'. 左 재현 작품, 右 인증 작품. 전시장 내 촬영 및 레이아웃.
▲ 재현과 원작의 이중창 '풍선을 든 소녀'. 左 재현 작품, 右 인증 작품. 전시장 내 촬영 및 레이아웃.
ⓒ 황융하

관련사진보기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는, 예술의 독창성은 단순히 원작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프레임에 갇힌 원작보다 벽에 재현된 복제품이 우리의 감성을 더 자극하는 게 아닌지.

그러나 인증된 작품 없이 재현된 복제만을 보았다면 이런 감흥은 없었으리라. 뱅크시가 직접 제작한 실제의 원작을 마주한다면 어떤 놀라움이 펼쳐질지, 상상만으로도 가늠하기 어렵다.

뱅크시의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상태를 건드린다. 이면에 숨겨진 왜곡과 이를 거점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모순과 그 탄생의 진실을 직시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인 방식을 추구한다. 그 어느 작품에서도 해석이나 이견이 분분하지 않을 만큼 명료한 작품이다. 꾸준한 사랑을 받는 힘이겠다.

뱅크시의 풍자적 태도

전시장 내에 벽돌을 활용하여 설치된 기획 작품은 뱅크시의 창작과 주제 의식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게끔 돕는다. 배열된 순서는 쌓인 벽돌, 벽돌 위에 모니터, 모니터 안에 뱅크시의 작품이다. '폐허(파괴)-영상(문명)-예술(창조)'의 과정으로 해석되는 이 작품은 뱅크시 예술 세계를 한눈에 집약시킨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라는 저서에서 "폐허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만 간다. 우리가 '진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폭풍이리라"라고 말했다. 폐허는 파괴의 결과이되 진보는 창조의 결과일 것이다. 뱅크시의 예술은 파괴와 창조라는 변증법이 버무려진 집합체와도 같다. 이는 뱅크시의 작품들이 현대 사회의 모순을 비판(파괴)함과 아울러 새로운 시각으로 재배치(창조)하려는 행위와 일맥상통한다.
 
'파괴가 창조다' 아포리즘을 재현하다.
▲ 폐허-문명-예술 '파괴가 창조다' 아포리즘을 재현하다.
ⓒ 황융하

관련사진보기

  
'차라리 쇼핑하는 게 자신을 위로' 하는 길이라며 냉소로 일갈하는 뱅크시의 풍자적인 토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 체제 안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비아냥거리는 게 아닐는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무수한 비난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굳건하며 오히려 그의 작품을 고가의 상품으로 둔갑시켰다.

자본주의는 그 자신을 신랄하게 찔러대는 예술과 저항의 아이콘(체 게바라)마저 집어삼키며 더욱 거대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알게 된 그의 작품 세계에서, 현재의 딜레마를 딛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 중에서도 미술은 기능과 기술로 인해 대량으로 재생산되는 시대이다. 이런 시기에 뱅크시의 격정과 함의가 전달되는 인증 작품을 관람한다면, 우리의 자존감이자 평화의 숨결을 표현하는 각자의 예술 행위일 것이다.

<리얼 뱅크시>는 2012년에 개관한 '그라운드서울'에서 진행 중이다. 인사동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더욱 팽창하는 예술공간이기를 바란다.

올 여름, 뱅크시의 직관적인 예술 세계에 시원하게 빠져보시라.

태그:#리얼뱅크시, #그라운드서울, #그라피티, #발터벤야민, #자본주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순응의 질서를 의문하며, 딜레탕트Dilettante로 시대를 산보하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