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2 15:42최종 업데이트 24.10.2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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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7월 발간한 <대한민국 100년 통사(1948~2048)>가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4일에는 이 책이 대한민국 지도에서 독도를 빠트리고 일제 식민 지배를 긍정한다고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했고, 18일에는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책의 역사 왜곡을 지적했다.

21일에는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5·18기념재단이 이 책의 한 대목인 "1980년 5·18은 확실히 민주주의 기반 강화를 가로막고 그 결과가 국가에 너무나 유해한 반동이고 반역이었다"는 부분을 비판하면서 공동성명에서 이렇게 촉구했다.

"우리는 노태우정부 당시 과학기술처장관과 2008년 이명박정부 당시 건국절 논란을 일으켰던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이 집필자로 선정된 사유와 역사왜곡·폄훼 내용을 감수하지 못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공개적인 사과와 책임을 묻는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의 구체적인 역사왜곡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한다."

이 책이 문제가 많다는 점은 최근 들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이 책이 다운로드되지 않는 데서도 느낄 수 있다. '원문 다운로드'를 눌러도 첨부 파일이 뜨지 않는다. 애초부터 국민들이 읽으면 체하고 배탈 날 책을 국민 세금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박정희 독재는 '민주적 기반 구축'... 5.18 민주화운동은 '반역'

김진현이 쓴 <대한민국 100년 통사> 표지대한민국역사박물관

책 제7장 '마지막으로 - 미완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적실 리더십 정착의 과제: 민주냐 독재냐 논쟁의 허구'에서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민주나 독재라는 대서양적 개념 내용을 한국에 도입할 때 한국 역사문화의 토양을 무시하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민주냐 독재냐를 따지는 데 적합한 역사 환경을 이렇게 정리한다.

"서양의 민주주의 또는 근대 경제는 기독교라는 일신교 전통 위에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산업화, 부르주아 등장과 시장경제체제의 진행과 더불어 나온 산물이라는 역사성을 인식하고 해석·적용해야 한다."

그러면서 한국 역사환경의 특징을 다신교 전통, "나랏님에 대한 복종 문화", 제3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복합적 사회·문화·역사로 정리한다. 그는 "이 차이를 보지 않고, 내 자유를 제약받으면 그것이 공공이익을 위한 법제적 제약이라 해도 무조건 거부하고 독재로 규탄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데모크레이지이다"라고 규정한다. 민주냐 독재냐를 따질 역사환경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비정상 민주주의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한국인의 민주주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데모크레이지를 언급한 뒤에 그는 "1970년대까지는 민주사회의 기반 형성기였다"라고 평한다. 민주사회의 형성기였다고 하지 않고 그것의 기반 형성기라고 말한 것이다. 한국이 1970년대까지도 이런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한국은 민주냐 독재냐를 따질 역사환경을 갖추지 않았다, 한국은 1970년대까지 민주사회의 기반 형성기를 겪었다고 한 뒤 "박정희와 1968~74년간은 본질적으로 민주사회 기반 구축기의 고통이었다"라며 "국가에 반역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평한다. 박정희가 1969년에 3선 개헌을 강행하고 1972년에 종신집권을 위한 유신체제를 선포하는 과정을 민주적 기반 구축의 고통으로 표현한 것이다.

뒤이어 나온 것이 "1980년 5·18은 확실히 민주주의 기반 강화를 가로막고 그 결과가 국가에 너무나 유해한 반동이고 반역이었다"는 악평이다. 박정희 독재체제의 강행을 민주적 기반 구축의 고통으로 평한 뒤, 별다른 설명 없이 사실상 '5·18은 민주적 기반의 강화를 가로막은 국가 반역'이라고 평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이라고 유신독재자가 안 됐겠냐는 궤변

<대한민국 100년 통사>에서 5.18 관련 서술 부분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이 책은 언뜻 보면 유신을 비판하는 책으로 읽힐 수도 있다. "야당·언론 탄압 유신 기간", "유신 시절의 비(非)민주·비자주 시민사회", "이승만 독재를 부끄럽게 만든 박정희 유신독재" 같은 구절이 그런 느낌을 갖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유신은 민주적 기반 구축의 고통'으로 해석한 부분에 더해, 김대중·노무현도 유신 때 대통령이 됐으면 별수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를 접하게 되면, 유신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나는 다음과 같은 발상으로 당시를 다시 정리해보기를 간절히 호소한다"고 촉구한 뒤 "유신독재를 비호하자는 발상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이런 가정을 내놓는다.

"만일 1968~75년간 대통령이 박정희가 아니라 윤보선·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었더라면 이들은 박정희와 얼마나 다르게 국정을 운영했을까."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민주화를 상당 부분 진척시킨 것은 두 지도자가 민주화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대통령으로 만든 지지세력이 그런 의지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인물이 1968~1975년 시기 민주화 세력의 지지를 배경으로 대통령이 됐다면, 그 시기 대한민국은 당연히 박정희 유신체제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같은 인물이 단신으로 공화당정권에 들어가 대통령이 됐을 경우와 그런 인물이 민주화 세력의 지지로 대통령이 됐을 경우는 각각 엄연히 다른 결론으로 이어진다. 두 경우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 채 '누구라도 그때는 박정희처럼 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지를 펴는 것은 김진현 전 장관이 <대한민국 100년 통사>를 집필한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케 만든다.

그는 종신 집권을 위해 국민을 짓밟고 탄압한 박정희를 비판하지 않고, 박정희에게 저항한 세력을 도리어 비판한다. 김대중·노무현 언급이 있은 뒤에 이렇게 썼다.

"당시 국제외교·안보·경제·남북관계가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었다는 사실을 통찰했더라면 종교·언론의 엘리트들이 좀 더 국가적·종합적 차원에서 통합·조정·협상 능력을 제고할 여지가 없었을까."

1971년에 미·중 간의 핑퐁외교가 있었던 사실에서도 느껴지듯이 1970년대 초반은 세계적으로 데탕트 분위기가 일던 시기였다. 한국전쟁 때 적대했던 미국과 중국이 상하이공동성명을 발표하고(1972.2.28.), 남과 북이 역사적인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7.4) 중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발표하는(1972.9.9.) 등의 화해 분위기가 일어났다. 분단과 냉전을 위협하는 이런 정세가 김진현 전 장관이 말한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었다.

당시의 민주화 세력은 그런 최대 국난을 통찰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뒤 그는 자신을 사회운동으로 이끈 고 김수환 추기경과 고 강원룡 목사를 소환한다. "종교·언론의 엘리트들이 좀 더 국가적·종합적 차원에서 통합·조정·협상 능력을 제고할 여지가 없었을까"라고 말한 직후에 그는 "김수환 추기경, 강원룡 목사가 살아 계신다면 다시 묻고 싶고, 저승에 가서도 여쭈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유신독재에 맞선 두 인물이 걸은 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이다.

<대한민국 100년 통사>는 민주나 독재는 대서양적 개념이라는 궤변을 제시하며 유신체제를 옹호하고 5·18을 반역으로 매도한다. 이런 책이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발간됐다. 김진현 전 장관이 우리 역사와 국민들을 모독했다기보다는, 윤석열 정부가 우리 역사와 국민들을 모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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