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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공원에서 내려다 본 전경
국립공원에서 내려다 본 전경 ⓒ 이강진

호주에서 휴양 도시로 유명한 골드 코스트(Gold Coast)로 이사했다.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는 한 평생 살면서 이사를 몇 번 정도 할까.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70세가 넘은 나의 경우만 보아도, 과거 셀 수없이 삶의 터전을 옮겨 다녔다. 심지어는 호주까지 와서 국적까지 바꾸지 않았던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역마살이 끼었다는 소리를 수없이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골드 코스트는 어느 정도 익숙한 도시다. 호주에 정착한 이후 제법 많이 찾았다. 브리즈번(Brisbane)에서 월드 엑스포가 열렸던 1988년, 시드니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들렸던 것이 첫 방문이다.

당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눈에 비친 끝없는 해변과 시월드(Sea World)에서 보았던 각가지 쇼는 나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자그마한 캐러밴에 의지해 호주를 여행할 때도 기착지로서 좋은 장소이기에 골드 코스트 야영장에서 머무른 적도 서너 번 된다. 따라서 골드 코스트는 내게 친숙하다.

퇴직한 삶이다. 골드 코스트가 마지막 삶의 터전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은 점칠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닌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일단 골드 코스트의 삶에 충실하기로 마음 먹었다. 혹 내일 이사를 하게 될지라도 말이다.

퇴직한 삶의 무료함도 달랠 겸 일주일에 한 번은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트위드 헤드(Tweed Heads) 전망대에 올라 태평양을 바라보기도 한다. 바다를 끼고 끝없이 펼쳐진 산책로를 걷기도 한다. 예전에 캐러밴 야영장에서 지내면서 아침마다 걸었던 벌레이 헤드 국립공원의 산책로를 찾기도 한다. 관광객이 아닌 주민의 시선으로 주위를 바라보니 색다른 기분이 든다.

골드 코스트라고 하면 바다를 연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곳에 살면서 근처에 산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탬버린 마운틴은 관광객 신분으로 두어 번 가본 적이 있다. 다른 곳은 없을까. 지도를 보니 레밍턴 국립공원(Lamington National Park)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들어본 국립공원이다.

처음 가본 국립공원, 숲내음... 여기에 왜 비행기가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레밍턴 국립공원을 찾아 떠난다. 구름이 낮게 깔려 파란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운전한다. 처음 가보는 도로다. 이름 모를 호수도 지나고 언덕 위에 새로 조성된 마을도 지나친다. 골드 코스트에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카눈그라(Canungra)라는 동네다. 공원 옆에 주차하고 심호흡을 하는데 작은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호주 오지를 다니다 보면 작은 교회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회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신자는 몇 명이나 될까.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어려운 오지 교회를 지키는 목사님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교회에서는 자식에게 대물림하면 존경받을 것이다. 한국의 대형 교회에서는 물의를 일으키지만.

다시 차에 오른다. 국립공원까지 30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앞으로 100km 구간에는 주유소가 없다는 경고판도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다. 조금 더 운전하니 대형차는 20km, 승용차는 40km라는 속도 제한 표지판이 보인다. 급커브가 많고 중간중간에는 1차선 도로도 많다. 속도를 낼 수 없는 도로다.

협소한 도로를 따라 산속 깊이 들어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일품이다. 차를 세우고 멋진 계곡을 사진에 담고 싶지만, 도로변에 주차할 공간이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좁은 도로를 계속 운전해 올라간다.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한가한 편이다.

차에서 내려 크게 심호흡한다. 산속 내음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조금 걸으니 뜻하지 않게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다. 안내판을 읽어본다. 브리스베인에서 시드니로 향하던 비행기가 1937년 래밍톤 국립공원에 추락했다고 한다.

탑승객 7명 중 2명은 구조하였으나 5명은 사망했다는 설명이다. 당시에 추락했던 비행기 모형을 전시해 놓은 것이다. 안내판에는 구조대원의 활약상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레밍턴 국립공원(Lamington Natioanal Park)에 전시된 비행기
레밍턴 국립공원(Lamington Natioanal Park)에 전시된 비행기 ⓒ 이강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나무 위에 조성한 산책로(Tree Top Walk)에 들어선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출렁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앞에 가는 청년들 때문에 난간을 잡지 않으면 걷기 어려울 정도로 다리가 심하게 흔들린다.

다리 중간에는 큰 나무에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도 만들어 놓았다. 높이가 30m라고 한다. 튼튼한 사다리와 함께 원통형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사다리에 의지해 나무에 올라서니 산야가 발아래 펼쳐진다. 힘겹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

 나무에 설치된 높이 30미터 사다리.
나무에 설치된 높이 30미터 사다리. ⓒ 이강진

오는 도중에 마을에서 잠시 쉬었기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산에 왔는데 좋아하는 산책을 빼놓을 수가 없다. 짧은 산책로 중의 하나인 모란 폭포 전망대를 걷기로 한다. 요즈음 비가 많이 내려 폭포 수량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몫했다.

예상했던 대로 우거진 숲속에 들어선다. 조금은 가파른 그리고 촉촉한 산책로다.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며 천천히 걷는다. 걷기 명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자신의 움직임을 온전하게 의식하며 걷는 것이라고 한다. 명상하는 마음으로 주위와 하나 되어 산책로에 몸을 맡긴다.

전망대에 도착했다. 폭포가 보인다.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진다. 낙차가 80m라고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자연이 연출하는 공연을 온몸으로 관람한다. 자연과 하나 되어 지금 주어진 삶에 빠져든다.

어두운 과거와 걱정스러운 미래는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이제 '지금의 삶'에 빠져든다.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모란 폭포(Morans Falls) 전경
모란 폭포(Morans Falls) 전경 ⓒ 이강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동포 잡지 '코리안 라이프''에도 실립니다.


#호주#골드코스트#레밍턴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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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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