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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기자말]
우리 부부가 머물고 있는 미국 미시간주 이스트 르로이(East Leroy)는 너무 한적해서 마음을 옥죄는 '비교'나 '경쟁', '속도'로 부터 멀어진 곳이다. 마치 샤워라도 한 것 같은 깨끗한 길 위에서 어제는 단 세 사람을 목도했을 뿐이다. 그저 광활한 들판과 숲뿐이니 비교할 대상이 없고 서로 뽐낼 사람이 없으니 경쟁이 있을 수 없다. 자연뿐인 이곳에서의 적정속도는 자연의 순환속도다.

사람 만나기 어려운 이 시골마을에서 이웃 카니(Connie Randall Hamlin)씨는 사람만나는 즐거움을 큰 보람으로 여기는 우리 부부에게 참 고마운 분이다.

올드 스쿨하우스 카니 씨는 가정집으로 개조된,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함께 공부한 옛 원룸하우스를 구입해 살고 있다.
올드 스쿨하우스카니 씨는 가정집으로 개조된,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함께 공부한 옛 원룸하우스를 구입해 살고 있다. ⓒ 이안수

카니씨는 42년간 중학교와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했는데 불과 2년 전에 은퇴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할 때 어머님은 저의 아이들을 돌봐주셨죠. 제가 은퇴함으로써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돌봐드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나이까지 나와 동갑에 성격까지도 공통점이 많았다. 그제는 공원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카니댁을 방문했다. 사전에 연락을 드리지 않았음에도 흔쾌히 우리를 집안으로 들였다.

"괜찮아요. 오늘은 조카 손자소녀들도 모두 각자의 부모들과 보내고 있어서 아주 한가한 시간이에요. 지금 파리올림픽 폐회식을 보고 있었는데 TV 스위치를 끄는 것으로 당신을 맞을 준비가 완료됐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이 집을 방문하고 싶었던 것은 지난번 뵐 때 '스쿨하우스(학교였던 집)'에 살고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 여러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였었다면 아주 큰 집일 텐데 하는..."

"아닙니다. 이렇게 소박합니다. 스쿨하우스와 이집에 대한 의문을 모두 풀어드리겠습니다."

카니씨는 기꺼이 130년이 넘은 집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려줬다.

"이곳은 학교였습니다,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42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치고 2년 전에 은퇴한 카니(Connie Randall Hamli 작년에 여동생과 어머니가 4개을 간격으로 하늘로 떠났다. 상심속에도 그녀는 스스로를 잘 추스리려고 애쓴다. "한 해에 중요한 혈육 두 사람이 곁을 떠나는 것은 좀 힘든 내리막길이었습니다. 어쩌겠어요.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신데... " 누구에게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매순간 다가오는 그 기복을 평정심으로 수용하는 모습이 참 놀랍다.
42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치고 2년 전에 은퇴한 카니(Connie Randall Hamli작년에 여동생과 어머니가 4개을 간격으로 하늘로 떠났다. 상심속에도 그녀는 스스로를 잘 추스리려고 애쓴다. "한 해에 중요한 혈육 두 사람이 곁을 떠나는 것은 좀 힘든 내리막길이었습니다. 어쩌겠어요.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신데... " 누구에게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매순간 다가오는 그 기복을 평정심으로 수용하는 모습이 참 놀랍다. ⓒ 이안수

- 이 집이 학교였던 것이 맞나요? 제가 생각했던 학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서요?

"학교 맞습니다. 그 얘기를 하려면 134년 전인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1890년도에 지어진, 교실이 하나인 학교(one-room schoolhouse)가 맞습니다. 학교로서의 이 집 기능은 1949까지 59년간 계속됐습니다.

그 후 75년간은 가정집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집에서 저의 아버지 제임스 랜달(James Randall)과 어머니 달린 랜달(Darlene Randall)이 처음 만났습니다. 목사이자 교사였던 아버지는 48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께서는 작년 8월에 89세로 돌아가셨습니다."

- 그렇다면 당신은 부모님이 공부했던 그 학교에 지금 살고 계신 건가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이 집에서의 삶이 너무나 각별합니다."

- 상상하기 힘들어요.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학년이 다른 부모님을 비롯한 전 학년이 함께 공부했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유치원 1학년, 초등학교 7학년, 총 8학년의 학생이 이 한 교실에서 한 선생님의 지도로 공부한 겁니다. 이 벽에 걸린 사진을 보세요. 1942년의 사진이에요. 이 사진속의 아이들이 이 집에서 공부한 모든 전교생이랍니다.

이 사진속의 가운데 흰 신발을 신고 치마를 입은 저 여학생이 저희 어머니이고 오른쪽 저 남학생이 아버지입니다. 전교생이 국기게양대 앞에서 사진을 찍은 것으로 보아 아마 현충일(Memorial Day)이었던 것 같아요."

- 그럼 이 집이 나중에 가정집으로 개조된 것이겠군요.

"바로 맨 아래, 오른쪽 사진의 신사, 린(Lynn)이 집을 개조한 장본인입니다. 저 신사분은 나중에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옮겨가고 이 집이 더 이상 학교로서 기능할 필요가 없을 때 이 집을 사서 자신의 부모님을 사시게 하려고 집을 가정집으로 개조한 거예요.

1년 동안 지하실과 2층을 만들고 방과 부엌, 화장실을 구분하는 벽을 세우고 가정집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현재의 모든 기능을 넣은 거지요. 운 좋게도 그 집을 제가 살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에요."
한 교실에서 전교생이 공부하던 학교 이 전교생의 사진속에는 자라서 부부가 된 카니씨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함께 있다.
한 교실에서 전교생이 공부하던 학교이 전교생의 사진속에는 자라서 부부가 된 카니씨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함께 있다. ⓒ Connie Randall Hamlin

-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때부터 서로 사랑에 빠져서 나중에 결혼을 하신건가요?

"서로 연인이 된 것은 아마 고등학교에서였던 것 같아요. 이곳에서 6마일 남쪽에 애쓴스(Athens)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애쓴스고등학교(Athens High School)에 함께 다니셨어요. 아버지는 1950년에, 어머니는 1952년에 그 고등학교를 졸업하셨으니 겹치는 시간이 있었지요."

- 8학년의 학생이 이 좁은 한 교실에서, 한 선생님의 지도로 공부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도 참 행복한 시절이었죠. 집이 많지 않은 이 동네에서 아이들이 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거리인 반경 2마일쯤 마다 이런 원룸학교가 있었어요. 그 학교도 지금은 가정집으로 활용되고 있고요.

우리는 이런 유서 깊은 건물에서 사는 것이 자부심이에요. 어떤 스쿨하우스는 지역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요. 그래서 대부분의 스쿨하우스들은 그 지역의 기념물로 여전히 살아남아서 당시의 교육방식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 마을의 역사 일부가 되고 있어요.

원룸학교는 모두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됐어요. 유치원 1년, 다시 초등학교 7년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그러니 8년을 한 교실에서 한 선생님과 생활한 거지요."

미국인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쳤나
반경 2마일쯤 마다 위치했던 원룸학교 이근 마을에 있는 또다른 올드 원룸 스쿨하우스. 카니씨의 집인 1층 단칸의 원룸학교는 나중에 새로 지은 이 2층 학교로 통홥되어 합반수업이 분반수업으로 바뀌었다. 오래된 것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사람들은 이런 옛 학교건물을 가정집이나 지역박물관 혹은 앤틱숍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경 2마일쯤 마다 위치했던 원룸학교이근 마을에 있는 또다른 올드 원룸 스쿨하우스. 카니씨의 집인 1층 단칸의 원룸학교는 나중에 새로 지은 이 2층 학교로 통홥되어 합반수업이 분반수업으로 바뀌었다. 오래된 것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사람들은 이런 옛 학교건물을 가정집이나 지역박물관 혹은 앤틱숍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 이안수

- 단일학급에서 이렇게 함께 공부하는 시스템은 언제까지 계속된 건가요?

"이 집이 지어진 19세기 후반까지도 미국의 공립학교 시스템이 자리 잡기 전이었기 때문에 이런 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에서는 스쿨하우스를 통해 아이들을 교육할 수밖에 없었어요.

스쿨하우스는 주로 마을주민들의 협력으로 세워졌어요. 이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집은 리차드슨 스쿨(Richardson School)로 불렸는데 리차드슨이라는 분이 1에이커의 부지를 기부하고 마을 사람들이 각자 돈을 내어 이 스쿨하우스를 짓게 된 것입니다.

이 스쿨하우스가 문을 닫은 것은 이스트 르로이 서쪽 K 드라이브 사우스에 2층짜리 학교가 지어진 뒤였습니다. 1955년에 4개 학급이 있는 큰 학교가 세워졌죠. 1963년이 되어서 유치원부터 전 학급이 각자의 교실이 있는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오늘날의 이스트 르로이초등학교(East Leroy Elementary School)입니다.

이 학교가 세워지기 전에 거친 두 학교도 오늘날 가정집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는 애쓴스 중학교에서 2년, 이 초등학교에서 40년간 교사로 근무하고 2년 전에 은퇴했고 손녀 엘라(Ella)가 그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 당신을 포함한 랜달집안은 이 지역 학교 역사의 굽이마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신 당사자인 셈이군요. 제일 늦게까지 이 원룸스쿨하우스가 남아있던 마을이 어디일까요?

"아마 아미쉬 마을일거에요. 여기서 50마일정도 떨어진 인디애나주 쉽슈와나(Shipshewana)에 태허(Taehur)와 안드레아(Andrea) 부부가 종종 방문했던 큰 아미쉬공동체가 있어요."

- 이런 스쿨하우스는 이곳 미시간주만의 형태였을까요, 아니면 미국 전역에서 동일한 형태였을까요?

"큰 도시를 제외한 미국 시골전역이 같은 형태였을 것입니다."

- 어떻게 8개 학년이 공부할 수 있고 한 교사가 어떻게 다른 연령, 다른 수준의 학생들 모두를 가르칠 수 있었을까요?

"교사 한 사람이 모든 학생을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수업방식이 유연할 수밖에 없었죠. 예컨대 일정시간동안 1학년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숙제를 자습을 하도록 한 다음 그 다음 학년을 가르치는 방식이었죠. 또한 서로가 서로를 도와 가르쳤을 거예요."

- 학생 수는 몇 명 정도였나요?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15명에서 20명 정도입니다."

- 하루 수업시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6시간 수업이었어요."

- 어떤 과목을 가르쳤나요?

"읽기, 쓰기, 산수 같은 기초과목에 체육이 더해졌고 고학년에서는 농업과 목공, 가사 같은 기술과목도 가르쳤습니다."
카니씨의 뒤뜰에 있는 당시의 학교종 카니씨의 할아버지 엘론께서 옛날을 회상하며 이 종에 대한 시를 지었다. "올드 스쿨 벨 옛 학교 종소리는 침묵중입니다. 더 이상 누구를 부르지 않습니다. 시골을 가로질러 울려 퍼지며 크고 작은 아이들을 불러 모았던? 옛 학교 종은 침묵중입니다. 종의 역할은 지나갔습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통합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학교 종소리의 추억은, 지시봉과 흑판, 규칙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_Richardson Country School에 다녔던 이, 엘론 A. {포시} 랜달"
카니씨의 뒤뜰에 있는 당시의 학교종카니씨의 할아버지 엘론께서 옛날을 회상하며 이 종에 대한 시를 지었다. "올드 스쿨 벨 옛 학교 종소리는 침묵중입니다. 더 이상 누구를 부르지 않습니다. 시골을 가로질러 울려 퍼지며 크고 작은 아이들을 불러 모았던? 옛 학교 종은 침묵중입니다. 종의 역할은 지나갔습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통합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학교 종소리의 추억은, 지시봉과 흑판, 규칙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_Richardson Country School에 다녔던 이, 엘론 A. {포시} 랜달" ⓒ 이안수

- 아이들의 등하교는 어떻게 했나요?

"당시에는 스쿨버스가 없었고 아이들 스스로 걸어서 등하교를 했어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혼자요. 그래서 아이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 1.5마일이나 2마일 정도의 반경으로 스쿨학교가 세워진 겁니다. 엄마는 눈이 많이 온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등교를 했다고 해요. 크로스컨트리 스키가 스포츠종목으로 자리 잡기 전에 이미 그 종목을 즐겼다고 볼 수 있지요."

- 이 집이 학교였을 때의 구조를 설명해주세요.

"이 소파 뒤의 벽에 칠판이 걸려있었고 저쪽 코너에 난로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 마루바닥에 이런 책상이 나란히 놓였어요. 이 책상이 그 때의 책상인데 의자 뒤에 책상이 붙은 모습이잖아요. 책상에는 책을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있어요. 이 책상의 맨 앞에는 책이 필요 없었던 유치원생이 앉았죠."

- 저 위에 '옛 학교종(The old school bell)'이라는 시가 있는 액자가 있군요?

"벽에 걸린 시, '옛 학교종'은 제 할아버지, 엘론(Elon Posey Randall)께서 이 집의 지붕에 걸렸던 종에 대해 추억하며 시를 지은 거예요. 그 종은 헛간에 보관됐던 것을 제가 뒷문 발코니에 달아뒀습니다.

당시에 이 종은 지붕에 달려있었기 때문에 길게 줄이 아래로 늘어져있어서 그 줄을 잡아당겨서 종을 칠 수 있었죠. 수업시작을 알리면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갔죠. 그리고 점심시간이후에도 한 번 더 종을 쳤고요. 지금은 제가 손자들을 부를 때 종을 흔들어서 치고 있어요."

란달씨 가족과 카니씨가 살고 있는 원룸스쿨하우스를 통해서 1890년부터 130여 년간 미국 초등학교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개괄해볼 수 있었다.

주로 교회를 통한 종교적 교육이 중심이었던 초기식민지시대를 거쳐 오늘날의 공립학교 시스템과 교육과정이 확립 되기전 지역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가 주도했던 그 교육현장에 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카니 씨의 스쿨하우스에 얽힌 얘기가 흥미롭다.

이스트 르노이를 비롯한 인근 4개의 타운십 아동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이스트 르로이초등학교의 현재 학생수는 200여 명이라고 한다. 이 초등학교에서 유치원 1년과 초등학교 5년 과정을 공부하고 인근 애쓴스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6학년부터 11학년까지를 공부한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올드스쿨하우스#원룸스쿨#미시간#미국#은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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