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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혹시 이 노래 아세요? 사랑했나 봐, 잊을 수 없나 봐, 자꾸 생각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어느새 5년이 되었다. 그동안 매일 같이 자는 학생, 코를 파고 교재에 묻히는 학생 등 다양한 유형의 학생들을 만났다. 그러다보니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도 잠시, 최근 일하게 된 과학 학원에서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소셜 미디어로 생긴 수많은 부작용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때, 한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 익숙한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랑했나봐, 잊을 수 없나봐, 자꾸 생각나, 견딜 수가 없어."

가수 윤도현의 '사랑했나봐' 노래를 빠른 템포로 부르며 싸이의 말 춤을 같이 추었는데 주변 아이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분명 꽤나 오래된 노래인데 다들 아는 눈치여서 놀랐고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스타에 있는 짧은 영상인 릴스를 보는데 글쎄, 조금 무섭게 생긴 곰돌이 푸가 방금 학생과 똑같은 자세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 이걸 보고 따라한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사랑했나봐 유튜브 https://youtu.be/zh6U6lZW0cI?si=UDsgfokLZOIGs4_i
사랑했나봐 유튜브https://youtu.be/zh6U6lZW0cI?si=UDsgfokLZOIGs4_i ⓒ 번젠, 윤도현

다음 주가 되고, 이번에는 그 친구가 '미룬이'라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미룬이 사태를 아냐며 또 이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학생에게 물어보니 그 노래와 춤이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쇼츠 노래라고 한다. 일주일마다 바뀌는 춤과 노래를 보며 학생들이 참말로 빠르게 적응해간다 싶었다.

그날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쇼츠에는 어떤 한 개그맨이 추는 미룬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알고리즘의 무서움을 느끼며 무심코 다음으로 넘긴 영상을 보다 댓글을 눌렀다.

그저 10대 학생들끼리 평범하게 노는 영상이었는데 댓글은 그렇지 않았다. 해당 영상에 나온 사람의 얼굴에 대해 평가를 하거나 관련이 없는 정치적인 이야기, 하다 못해 부모님의 이야기, 혹은 성적으로 수치심을 줄 수도 있는 댓글들이 많은 공감을 받고 있었다.

보다 보니 엄청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얼굴을 가린 채로, 상대가 올린 영상에 인신 공격과 욕설을 사용하는 댓글들을 보며 내가 다 괜히 마음이 미워졌다. 그러다, 오늘 춤을 춘 학생이 생각났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이런 댓글들을 보고 있을까?

"우리 때도 그랬어."

내 하소연을 듣던 친구가 말했다.

"생각해 봐. 우리도 싸이월드 UCC부터 각종 카카오 스토리 가짜 썰들, 어그로 유튜버들, 가짜 뉴스 페이스북 페이지들을 겪고 온 세대잖아."

생각해보니 친구 말이 맞았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툭 던진 말이 그 나이 대 학생들에게 얼마나 힘들고 상처가 될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소셜 미디어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

올해 1월 말, 미국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고개를 숙였다. 13~15세 10대 소녀 37%가 인스타그램에서 일주일 동안 원치 않는 노출을 경험했는데 어떤 조치를 취했냐는 질문에 답변을 머뭇거렸고 결국 사과하라는 압박에 방청객에 있던 피해자 부모들에게 사과했다.

이처럼 미국 국립실종·착취아동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아동 성 학대 신고 건수가 3600만건으로 전년(3200만건)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아동 성학대물 신고는 지난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아이들은 성범죄 및 자해, 섭식장애 등에 노출되었다.

'우리 때도 그랬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미성년자가 SNS에서 접할 수 있는 온라인 범죄는 예전과 다르게 매우 정교하고 그 규모도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한 범죄가 성인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들까지 그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뉴스들이 올라왔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게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을 교묘하게 합성해 성적으로 이용하고 공유하는 등의 범죄가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피해자들이 자신의 사진이 유출되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그 충격은 더 컸다.

좋은 인터넷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 필요

인스타그램 청소년 보호 안내 https://about.instagram.com/ko-kr/blog/announcements/instagram-teen-accounts
인스타그램 청소년 보호 안내https://about.instagram.com/ko-kr/blog/announcements/instagram-teen-accounts ⓒ 인스타그램

결국 인스타그램은 18세 미만 청소년들의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청소년 계정은 팔로우한 사람이나 이미 연결된 사람으로부터만 개인 메시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10대 청소년들이 공개된 계정으로 상대 알고리즘에 뜰 수 없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부적절한 디엠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인스타그램에 60분 이상 접속하게 되면 앱에서 자동으로 종료하라는 알림이 뜨게 하고, 오후 10시부터 오전 7시까지는 알림을 중단하는 '수면 모드'와 '감독 모드'를 통해 부모가 자녀의 인스타그램 사용 시간을 제한할 수 있으며, 자녀가 메시지를 주고받는 상대방도 확인할 수 있는 보호 기능이 추가된다고 인스타그램 측에서 밝혔다.

한국에는 이러한 조치가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SNS에서의 청소년 보호가 다소 강화될 것으로 보이면서도 무조건 막는 기술적 해결책보다는, 사회 전반의 관심과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학원에 가서 중학교 1학년 친구 두 명에게 미성년자 SNS 금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어보았다.

나: 너네는 중학생들이 인스타를 사용하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학생 1: 아우 좋죠. 우리 반 학생들 다하는데
학생 2: 제 친구들 다하는데 다시 풀리겠죠.

나: 그럼 인스타 금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학생 1: 반대요 반대. 인스타 재밌는데
학생 2: 저는 중립이요. 그래도 소식 접하는데 좋아요.

그러면서 한 학생이 나에게 본인 인스타그램을 보여주었다. 그전까지 일상 계정만 생각했던 나에게 학생이 보여준 인스타그램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게시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학생의 계정 게시물에서는 비행기의 영상들이 올라와 있었고, 심지어는 비행기 관련 정보를 릴스로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도 많은 종류의 비행기 사진이 올라와 있었고 사진에 대해 물어보자 신나서 관련 지식에 대해서 나에게 설명을 해줬다.

또, 자기가 팔로우하는 친구들의 계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십대 초반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많고 멋있는 비행기 사진들, 그런 사진들을 보고 내 얼굴 사진만 잔뜩 올려 놓은 계정이 민망할 정도로 그 학생이 멋있어 보였다.

어릴 적, 망원경으로 행성을 관찰하고 열심히 위성을 종이에 기록하던 내가 떠올랐다. 종이에 적고 혼자 간직하던 나와 달리, 지금의 아이들은 SNS로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고 지식을 넓히는 데에 사용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순전히 부정적인 기능만 생각하던 나에게 학생이 보여준 계정은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해주는 경험이었다.

SNS는 아이들에게 민감한 콘텐츠나, 유해한 콘텐츠를 보여주고 해당 콘텐츠를 계속해서 볼 경우 해당 알고리즘을 통해 더 유해하고, 민감한 콘텐츠를 보여줄 수도 있다. 또한, 불순한 목적을 가진 성인들이나 악의적인 댓글들에도 노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취미를 알리고 키우며,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하나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최근 AI 연구자 사이에서 딥페이크와 가짜뉴스, 욕설과 같은 부정적인 인터넷 기능을 해결하고자 하는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연구에 발맞추어 회사와 정부는 아이들을 보호할만한 수단을 강구해야 하고, 사회 구성원인 우리들 역시 아이들을 위해 부정적인 댓글 보다는 좋은 인터넷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 유튜브 댓글들을 읽다보면 냉혹하고 차디찬 댓글 사이에서 따뜻한 선플달기 운동을 하는 학생 친구의 댓글을 읽게 된다. 어쩌면, 해답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스타그램#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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