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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D rendering capturing the double helix structure of DNA against a blue backdrop, highlighting the intricate beauty of life's genetic code.
3D rendering capturing the double helix structure of DNA against a blue backdrop, highlighting the intricate beauty of life's genetic code. ⓒ digital_e on Unsplash

당신이 먹는 음식이 유전자 작용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타고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납니다. 이 유전자는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는 순간 정해지고, 우리의 생애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임신 초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엽산이라는 비타민이 필요한 '유전자 복제' 과정입니다.

특히 임신 초기 3개월까지 엽산이 부족한 식사를 하게 되면, 유전자의 복제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신경관 결손 같은 심각한 기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 산시성 고원지대에서는 건조한 기후로 인해 채소 섭취가 부족한 임산부들이 많았고, 이로 인해 엽산 결핍에 따른 신경관 결손 기형아의 출생률이 높았습니다.

이 사례는 특정 영양소 결핍이 유전자 복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우리는 타고난 유전자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식이 단지 유전자의 복제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난 유전자가 정해져 있으면, 음식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답은 '아니오'입니다.

음식을 통해서도 충분히 우리의 건강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로 밝혀졌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로 피마 인디언(Pima Indian)을 들 수 있습니다. 피마 인디언은 원래 사막과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한 강인한 부족입니다.

이들은 섭취한 음식에서 최대한의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도록 적응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미국 애리조나 주에 살고 있는 피마 인디언들은 전통적인 식단에서 멀어져, 정제된 하얀 밀가루, 옥수수 가루, 버터, 치즈 등 고지방, 고칼로리 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부족의 70%가 당뇨병을 포함한 성인병을 겪고 있습니다. 반면 멕시코에 거주하는 피마 인디언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식습관을 유지하며, 건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두 집단이지만, 섭취하는 음식이 달라짐에 따라 건강 상태가 크게 달라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타날까요? 그 이유는 바로 후성유전학이라는 학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후성유전학은 유전자의 변화가 없이도 유전자 발현을 조절할 수 있는 '후성유전체(Epigenome)'라는 분자들에 의해 조절되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후성유전체는 유전체(genome) '위에' 작용하면서 유전자의 발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유전자는 변하지 않지만, 그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조절하는 것이 바로 후성유전체입니다. 이 후성유전체는 음식과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공급될 수 있습니다. 이 중 대표적인 후성유전체 작용 분자가 '메틸기(-CH3)'입니다.

메틸기는 유전자 발현 스위치를 켜거나 끄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DNA의 메틸화라고 불리며,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들도록 하는 발현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메틸기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채소에 많이 함유된 엽산은 메틸기를 형성하는 중요한 원료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섭취하는 엽산이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거나 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듀크 대학교의 랜디 저틀 박사가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이와 같은 후성유전학적 조절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엽산이 충분한 식사를 하여 유전자 메틸화 조절이 잘된 쥐는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지만, 엽산이 부족한 쥐는 메틸화 조절이 원활하지 않아 비만, 당뇨, 암과 같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유전자 발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후성유전학적 작용원리에 따르면, 타고난 유전자에 따른 질병 위험을 음식 섭취를 통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좋지 않은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해도, 올바른 식습관을 유지하면 그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여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후성유전체를 통해 우리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양소 중 하나가 바로 엽산입니다.

엽산은 주로 녹색 채소에 많이 들어있으며, 이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완도에 풍부한 미역, 다시마, 파래 등 해조류에는 엽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으니 충분히 드시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엽산은 우리 몸에서 바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활성형 엽산'으로 전환되어야만 유전자 복제나 유전자 발현에 제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통계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인들 중 약 70%가 엽산을 활성형 엽산으로 변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활성형엽산 전환효소(MTHFR) 유전자에 선천적인 변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엽산을 효율적으로 전환하지 못해 엽산 결핍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엽산이 부족한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많고, 다른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엽산 보충제를 섭취할 때는 일반적인 엽산 보충제 대신 활성형 엽산(5-MTHF) 보충제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위해 의사나 약사와 상담하여 자신의 유전적 특성에 맞는 엽산 보충제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결론적으로, 당신의 유전자는 타고났지만, 그 유전자의 발현은 당신이 선택하는 음식에 의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매일의 한 끼 식사가 당신의 유전자 스위치를 켜고 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유전자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김원국 약사/향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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