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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감성사진 명인 1호 장영길 사진작가 .
▲ 대한민국 최초 감성사진 명인 1호 장영길 사진작가 .
ⓒ 장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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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찍을 수 있는가보다 무엇을 볼 수 있는가의 예술인 사진. 저는 그 앞에서 자주 길을 잃곤 합니다. 진실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방황하고, 그러면서도 기쁨과 슬픔, 그리움과 고독, 사색의 감성을 담아내기 위해 자주 고민합니다."

몇 년 전 어느 겨울, 섬세한 감성 메시지를 곁들인 시·에세이 책을 출간하기도 한 장영길 사진작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하게 '감성사진 명인 1호'다. 사명감을 가지고 아트피아 사진교육원 및 명인 전승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장 작가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11년 동안 한국사진작가협회 워싱턴 지부에서 매년 40일 동안 머물며 마음의 창으로 감성을 품는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3일 서산문화회관 대전시실에서 열릴 명인전을 위해 달려오신 장영길 작가를 서산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 우리나라에 '감성사진 명인'이 계신 줄 처음 알았다. 작가님의 감성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하나?

"아마도 예향의 고장에서 태어났기에 그렇지 않나 싶다. 제 고향은 전남 진도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귀양하여 살았던 진도는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천혜의 고장이다. 귀양살이로 고단한 몸을 이끈 분들은, 살아남기 위해 삶의 애환을 담은 문화라는 큰 그릇을 빚었다. 우리가 잘 아는 '진도아리랑'이 그 대표적인 노래다.

주로 슬픔, 그리움, 사랑 등의 감정을 담은 노래는 고난과 역경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애환과 함께,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을 노래했다. 가사를 들여다보면,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얽혀 있는 모습, 삶의 고통과 희망을 함께 담고 있는 등,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정적 공감을 끌어낸다. 진도에서의 어린 시절은 저에게 감성적인 심성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했는데 작가님은 팝도 굉장히 좋아하신다.

"문학과 음악은 서로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언어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음악은 음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받는 것이 문학과 음악이다. 저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음악도 상당히 좋아했다. 특히 팝을 즐겨들었다. 학교 다닐 때는 옆구리에 책 대신 레코드를 끼고 다닐 정도로 음악광(狂)이었다. 현재도 3,000장이 넘는 레코드를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 문학과 음악이 내면에 잔존하고, 여기에 사진이 결합되니 자연스럽게 감성적인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장영길 사진작가의 작품들 .
▲ 장영길 사진작가의 작품들 .
ⓒ 장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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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를 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였다. 사진관에서 하프카메라를 빌려 반 친구들 사진을 찍어줬는데, 다른 친구들이 찍은 것보다 월등하게 잘 나왔다고 난리가 났었다. 그때부터 소질이 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제주도로 들어가 남동생과 함께 여행사를 운영했다. 신혼여행을 오신 신혼부부의 기념사진과 관광사진을 찍어주면서 사진을 시작하게 됐다. 심미안과 테크닉에서 부족함이 느껴져 본격적인 카메라 기술을 배우게 됐다. 어느 정도 찍고부터는 느낌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감성사진'을 찍는 계기가 됐다 생각한다. 자잘한 느낌을 잘 끄집어내 표현하려 했지만 늘 어려웠다.

사람들이 '무지개를 쫓는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것. 저도 그렇다. 항상 무지개를 잡으려고 한다. 사진은 만족이 없는 것 같다. 100이라면 80% 정도? 나머지 20%에 대한 미련때문에 발버둥을 치는 게 사진이라 생각한다.
30년 사진가의 길에 서 있지만 늘 어떤 것을 쫓아다닌다. 때론 길을 헤매기도 하고. 정말 저의 책 제목처럼 내 안의 그대 때문에 나는 매일 길을 잃는다."

- 사진작가로서 활동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일이 있다면.

"지금도 얘기하다 보면 너무 기뻐서 소름이 돋는다.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저를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네 번째 도전에서 당당하게 입선을 했었다. 사실 그때는 직장에 다니느라 합격 여부를 알지 못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는데 평소에는 늘 열려있던 방문이 닫혀있었다. 이상하다 싶어 무심코 문을 여는 순간, 풍선 100개와 함께 '사랑하는 아빠 첫 입선을 축하합니다'라는 꼬맹이(딸)의 글씨가 풍선에 쓰여 있었다. 집사람과 꼬맹이, 함께 근무하시던 실장님께서 입이 얼얼하도록 풍선을 불어, 저를 놀래주려고 매달아 둔 것이었다.

지금도 그때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제 생애 아무리 큰 상을 받고 축하를 받아도 그때 그 감동은 여전히 가장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가장 든든한 후원군은 바로 가족이다."

장영길 사진작가의 ‘물 먹는 비둘기’ .충주 탄금호 공원으로 출사 갔다가 만났다.
▲ 장영길 사진작가의 ‘물 먹는 비둘기’ .충주 탄금호 공원으로 출사 갔다가 만났다.
ⓒ 장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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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25년 전, 가족들을 데리고 충북 충주 탄금호 공원으로 출사 갔다가 만난 '물 먹는 비둘기'다. 분수대 앞에 있는 식수대 수도꼭지에 비둘기 한 마리가 뽀로로 날아오더니 뒷발을 높이 치켜든 채, 고개를 빼서 입을 수도꼭지에 넣고 물을 먹는 걸 목격했다.

너무 신기한 충격에 기록으로 남기려고 카메라를 꺼내는 사이 비둘기는 날아가 버렸고, 저는 아쉬움과 허탈함에 한동안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다 또 올 것 같아 준비 태세를 완벽하게 하고 비둘기를 기다렸다. 40여 분 정도 지났을까, 똑같은 자세로 물 먹는 비둘기를 다시 만나게 됐고, 그 신기한 사진은 드디어 기록으로 남기는 행운을 얻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어머니께 비둘기 물 먹는 사진을 보여드렸다. 아무리 봐도 신기했던 이 사진은, 혼자 보는 것보다 모든 사람과 공유하는 게 의미 있다 싶어 사진 잡지에 기고를 하게 됐다.

어느날, 어머니께서 제주도에 사는 작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바로 옆자리 승객이 비둘기 물 먹는 사진을 보고 있는 걸 발견하여 깜짝 놀랐다고 했다. 책자 속 그 사진은 바로 제가 찍어서 어머니께 보여드린 것이었다. 이처럼 사진 한 장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특별한 톱니바퀴가 되어 뜻밖의 인연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진강의를 하고 있는 장영길 작가 .
▲ 사진강의를 하고 있는 장영길 작가 .
ⓒ 장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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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는 작가님과 인연을 맺은 분들이 많다. 어떤 인연들인지?

"미국 뉴욕 워싱턴 해외지부에서 같은 꿈을 키우는 제자들이다. 벌써 10년 이상을 40일 동안 현지에 체류하면서 사진 교육을 하고 있다. 감성사진 초대전도 그곳에서 열었다. 당시 이국땅에서 고향의 모습을 바라본 관람객들은 가슴속 뭉클함이 음파를 타고 심장 끝까지 흐르는 듯 한참을 바라봐 주셨다.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같이 가면 오래 간다고 했다. 제2, 제3의 감성사진 작가님들을 위해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함께 동행할 것이다."

장영길 작가의 'A petal song' .
▲ 장영길 작가의 "A petal song" .
ⓒ 장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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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작업은 '문학, 음악, 사진' 삼박자를 염두에 두고 진행중이다. 파도 소리 들릴 때 악기가 놓여 있다면 어떤 음률이 들릴까? 꽃잎 옆에 악기를 놓으면 어떤 향기가 피어날까?

감성사진 1호 장영길 명인은 사진에서만큼은 워낙 진한 애착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의 '사'자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아주 제대로 미쳐 산다. 그는 마지막 말을 이렇게 남겼다.

"언젠가는 사진출판으로 많은 분에게 저의 이야기를 펼쳐 보여 드릴 예정입니다. 훗날 그날이 오면 제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진한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길 소망하며 저는 다시 길 위에 서겠습니다. 그날까지 내내 여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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