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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만 해도 나는 소위 말하는 N잡러였다. 영양사도 일도 하면서 강의도 하고 동시에 요리블로거이기도 했었다.

'열심히'였지만, 그럼에도 내가 목표하는 '열심히' 기준에 나는 부합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나를 채근했던 것 같다. 더 부지런하게, 더 열심히, 남들보다 더 빨리 새로운 생각을 하려고 했다.

딸이 어릴 때 일때문에 잠깐씩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겼던 적이 있다.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엄마가 말한다.

"얘, OO이가 너 흉내 내더라. 컴퓨터 타자 치는 흉내 내면서 전화를 하는데 '네네. 알겠습니다'라고 상냥하게 전화받다가, 전화를 끊으면, 씩씩 대면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라고 짜증을 내더라구. 너 조심해야겠더라."

친정엄마의 말을 전해 들으니 얼굴이 화끈했졌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친정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늘 화가 나있었고 밖에서 화가 난 것을 가족들에게 풀기도 했었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나를 돌이켜 볼 시간이 부족했었다.

그러다 지난해, 유방암이라는 판정을 받고 열심히 하던 모든 일을 멈추게 되었다(관련 기사: 유방암 환자가 먹는 토마토 요리 https://omn.kr/2a63w ).

일하는 사진 컴퓨터로 바쁘게 일하는 모습(자료사진)
▲ 일하는 사진 컴퓨터로 바쁘게 일하는 모습(자료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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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하길, 유방암에 걸린 이유는 내가 너무 욕심을 내서 또 너무 열심히 살아서 그렇다고 했다. 지인들은 내가 유방암에 걸린 이유를 찾아 보려고 했고, 또 위로해주려고 했지만 그런 말들은 나에겐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유방암에 걸린 후 '이렇게 금방 정리될 수 있다고?' 라고 느낄 정도로 그렇게 놓지 못했던 일들과 빠르게 이별했다.

출퇴근이 없는 백수로 지내면서 한두 달은 집 앞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행복했다. 그러나 그 이후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집에만 있다 보면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르면서, 앞으로 살 날이 많은데 내가 일을 다시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아이도 점점 커가고 나이도 점점 먹어갈 텐데. 내 일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라는 불안감이 올라오면서 영양사 구직사이트에 들어간다. 괜찮은 자리가 있으면 이력서를 써볼까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일 년을 논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하면 안 되지'라고 마음을 다시 접는다. 또 어느 날에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날인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또다시 구직사이트에 들어가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일이라는 것이 하면 너무 힘들고 안 해도 마음이 힘드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 또한 무기력함을 이기기 위해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 지키려고 노력한다. 루틴이 너무 빡빡해서 가끔은 이렇게 계획을 세우는 게 맞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그래서 시시포스가 무기력함을 이기려고 바위를 그렇게 굴렸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도 영양사 구인란에 들어가서 구직활동을 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자리가 있어 친한 친구에게 "나 이제 일할까?"라고 물었다.

친구는 "아직은 시기상조야. 너 지금 좋아 보여. 놀아"라고 답장한다. 친구의 말에 마음이 놓이면서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놀겠냐. 더 놀아보자.' 라고 마음을 접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는 마음, 어쩔수 없이 놀아보니 알겠다.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 사람이 바로 나였구나 싶었다. 일만 하지 않으면 행복할줄 알았는데, 막상 백수가 되어보니 썩 그렇지도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유방암#백수#영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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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사와 강사를 겸하고 있습니다. 딸을 키우는 엄마로 건강하고 영양 좋은 음식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직영양사가 알려주는 우리집 저염밥상> 전자책 발행하였으며 <옆집 영양사 언니>로 블로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브런치 작가로 일상의 요리에서 추억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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