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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자신의 저서 <나는 왜 쓰는가> 에세이에서, 자신이 글을 쓰는 네 가지 동기 중 '정치적 글쓰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고 밝힌다.

책 <카탈로니아 찬가>는 바로 그런 오웰의 말처럼 정치적 의도가 강한 작품이다. 오웰이 이 책을 집필한 동기는 스페인 내전에서 자신이 겪은 혼란과 배신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민음사 고전 카탈로니아 찬가는 1936년부터 시작된 스페인 내전의 기록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무엇보다 오웰 자신이 스페인 내전의 의용군으로 참전해 직접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이 책은 세계 3대 르포르타주 문학 중 하나로 불리기도 한다.

치열한 이념 대립이 펼쳐진 스페인

 카탈로니아 찬가 책표지.
 카탈로니아 찬가 책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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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1936~1939)은 제2차 세계대전의 '축소판'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프랑코 군부를 지원했고, 반대로 스탈린이 공화파를 지원하는 등 유럽 각국의 이념 대립이 스페인을 무대로 치열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스페인은 경제적 불안정과 사회 개혁에 대한 반발이 겹치며 심각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등 여러 파벌 간의 갈등도 심화되었으며, 이러한 혼란 속에서 1936년 프랑코가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프랑코의 쿠데타는 스페인 공화파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과 군부 세력 간의 내전을 촉발하며, 이후 3년간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조지 오웰은 이 내전에 통일노동자당 소속 의용군으로 참전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신문 기사를 쓸 목적으로 스페인에 왔지만, 노동자 계급이 장악한 카탈로니아의 혁명적 분위기에 매료되어 내전에 직접 뛰어들었다. 오웰은 이 혁명적 분위기가 충분히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용군의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실제 전장에 투입되기 전까지는 사격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제식 훈련만 반복되었다. 지급되는 군복은 모두 제각각이었으며, 지급되는 총기의 상태도 형편없었다. 오웰은 적군의 총을 맞는 것보다 자기가 지닌 총기의 오작동으로 부상당할 위험이 더 크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또한 의용군은 15세 정도의 어린 소년들이 많이 참전했는데, 그들은 오로지 월급을 받기 위해 입대한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군대 내에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고, 체계적인 명령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다. 이러한 의용군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다.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스페인 내전이 실제 상황과 다르게 보도되는 것과 통일노동자당이 불법 단체로 규정되는 과정이다. 오웰은 참전 후 6개월 만에 휴가를 받아 다시 카탈로니아로 돌아왔으나, 그곳에서 무정부주의자들과 시가전에 휘말리게 된다. 이 시가전은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고 통일노동자당은 불법 단체로 규정되어 소속 의용군들이 모두 체포되는 상황에 이른다.

당시 공화파를 지지하는 세력은 아나키스트, 통일노동자당, 사회주의자 등 다양한 정치세력이지만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는 모두 달랐다. 사회주의 세력은 강력한 중앙집권 통치를 원했으나, 통일노동자당은 노동자 중심 사회를 원했다. 이 이념 노선의 차이로 인해 통일노동자당은 사회주의 세력에게 밀려났고, 배신당했다. 이러한 이념적 분열과 배신은 쿠데타 세력의 승리와 독재로 이어진다.

 조지 오웰은 이 내전에 통일노동자당 소속 의용군으로 참전하였다.(자료사진)
 조지 오웰은 이 내전에 통일노동자당 소속 의용군으로 참전하였다.(자료사진)
ⓒ stijnswinn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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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은 내전 동안 치열한 전투보다 추위와 배고픔, 권태와 싸우는 일이 더 많았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당시의 보도는 이런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다. 내전은 온갖 추측과 왜곡된 정보로 가득했다. 통일노동자당은 정치적 싸움의 희생양이 되었으나, 이 진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오웰의 소설 <1984>에는 '진리부'가 등장한다. 진리부는 정보를 조작하고 거짓 정보를 진실로 둔갑시키는 곳이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진리부의 모습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의 조작된 정보는 진실로 퍼져나갔고, 이 혼란스러운 정보는 공화파 간의 분열과 대립만을 낳았다.

또한 <1984>속에서는 주인공 윈스턴이 속한 오세아니아와 유라시아 간 끊임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사소한 국지전만 오갈 뿐이었다. 하지만 당은 전쟁을 이용해 '분노'를 심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을 이끈다. 소설과 같이 스페인 내전의 참상은 전쟁의 치열함보다는 정치적 싸움과 이용이 더 많았으며, 대중의 '분노'는 진실을 가리는 도구가 되었다.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다 보면 <1984>속에 투영되는 세계관이 내전의 모습과 닮아있단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오웰이 살던 시대에는 신문이나 라디오가 거의 유일한 정보 매체였지만, 현대는 다양한 매체가 존재한다. 때문에 오웰이 살던 시대만큼의 정보 조작과 통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가장 커다란 교훈은 전쟁에는 진실이 없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현대의 전쟁도 자극적인 정보가 오갈 뿐, 제대로 된 전쟁의 참상이나 진실을 알기 어렵다. 오히려 전쟁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고, 거짓 정보와 추측이 난무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어느 때보다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가 있는 현대에도 전쟁의 모습은 과거와 그리 다르지 않다.

또한 혁명은 대개 백일몽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중의 무지와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오웰이 처음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느낀 혁명적 분위기, 프롤레타리아가 장악한 도시의 모습은 '거짓 평화'에 불과했다. 부르주아들은 때를 기다리며 프롤레타리아 행세를 할 뿐이었다. 결국 복잡한 이념 노선과 정치적 갈등, 정보의 통제와 조작 등이 어우러져 혁명의 도시는 내전 이전의 도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칼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동 집필한 <공산당 선언>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 말처럼 전쟁 또한 권력과 계급 투쟁의 산물이다.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묘사되는 프롤레타리아 즉, 대중은 혼란스러운 내전의 과정에서 진실을 알지 못했고, 혁명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당신이 아는 정보는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이것이 보여주는 교훈은 어쩌면 '이 세상에 절대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일지도 모른다. 진실은 언제나 상대적일 뿐이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나 권력과 계급이 발생하고 이로 인한 갈등과 투쟁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 속 진실을 알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들이 어쩌면 조작된 정보와 선동에 휩쓸린 것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단순한 전쟁의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본질과 인간세계에서 드러나는 정치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가 믿고 있는 정보가 때론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정보는 얼마든지 조작되고 가공될 수 있다.다. 이 사실은 21세기에도 변함이 없다.

각종 매체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반드시 진실만을 반영하지 않는다. 정보는 그것을 전달하는 이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마다 논조가 다르다는 점이 이를 반영한다. 따라서 오웰이 제기하는 의심과 비판의 시각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또한 권력은 언제나 분노를 통해 대중을 선동하고, 내부의 불안을 외부로 돌린다. 역사가 계급 투쟁의 산물이란 마르크스의 말처럼 권력의 본질을 이해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시사점은 과거를 넘어 현재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권력과 정보의 본질을 이해하고 무지와 무관심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일에 관심을 두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민음사(2001)


#조지오웰#카탈로니아찬가#스페인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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