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4 07:01최종 업데이트 24.09.24 09:31
  • 본문듣기

김성 세례자요한 신부 박정훈 대령의 해병대 사관 동기로, 가톨릭 미사와 해병대 집회 등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박 대령 지원에 나서고 있다. ⓒ 황의봉


"이 친구가 아니라면 이렇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이 친구에게서 희망을 보지 않나, 하고 느낍니다. 제주도가 멀어서 이렇게 올라오기가 좀 주저하게 되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만 되면 좀 도와주고 함께해보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동기라서가 아니라 정말 이 친구가 옳아서, 의연해서, 정의로워서, 진실해서 그러는 것입니다."(2024년 8월 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함께 걷는 예수의 길 월례미사'에서)

"항명죄라니 군부 쿠데타라도 일어났습니까? 이게 무슨 해괴한 죄명입니까?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군 생활을 해봤던 이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사단장을, 여단장을 과실치사 혐의로 수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내는 일인지, 법과 원칙을 따른 참으로 소신 있는 행동임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결재가 끝난 일을 보류하라, 혐의자를 빼라, 이첩을 중단하라, 이런 몰상식한 외압,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해병대는 명예를 지켰습니다. 법과 원칙을 지켰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입니다."(2023년 9월 23일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 용산집회에서)

한 해병대원 죽음의 진상과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대통령 혹은 대통령실과 국방부장관, 사령관, 사단장과 맞선 외로운 싸움. 이른바 '채 해병 수사외압 의혹사건'에 로만 칼라의 가톨릭 사제가 뛰어들었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소속으로 서귀포 '면형의 집' 원장인 김성 세례자요한 신부다.

해병대 집회와 가톨릭 미사 모임 등에서 연설과 기도를 통해 박정훈 대령을 돕는데 발 벗고 나선 김성 신부를 면형의 집에서 만났다. 먼저 박정훈 대령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부터 들어보았다.

박정훈 대령이 동기에게 밝힌 속마음

"박정훈 대령과는 해병대 동기입니다. 해병대 장교는 예전부터 좀 다르게 뽑았어요. 타군으로 치면 학사장교인데, 저희끼리는 해병대 간부후보생 줄여서 해간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저희 기수를 해간 81기라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해병대 사관 81기입니다. 저는 국문과를, 박 대령은 법대를 졸업하고 1996년도에 사관후보생으로 들어왔어요.

당시엔 지금과 달리 해병대와 해군이 함께 훈련을 받았습니다. 3개월 훈련을 받은 후 저희는 포항에 가서 한 달 동안 해병대 특수훈련을 따로 받은 것이지요. 4개월의 훈련기간에 정훈이와는 같은 소대에다 바로 옆자리여서 아주 친하게 지냈어요. 훈련 동기생이 한 200명 정도였는데, 임관한 사람은 165명이었습니다."

TV에 비친 박정훈 대령은 전형적인 군인의 풍모다. 건장한 신체에 의지가 강한 군인이라는 인상을 준다. 김 신부가 기억하는 사관후보생 시절의 박정훈 대령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친구가 처음 볼 때부터 인품이 넉넉하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훈련 때부터 가깝게 지냈습니다. 해병대 훈련은 아주 셉니다. 그때가 벌써 30년 전인데 무척 많이 맞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무슨 특수훈련이라는 게 때리고, 안 먹이고, 안 재우고, 뭐 이런 것 같았어요. 그 정도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동기생들 간에 좀 특별한 감정이 쌓였던 것 같아요.

사관후보생 시절 제가 이 친구에게 '관우'라는 별명을 붙여줬어요. 워낙 풍채가 좋고 넉넉해서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을 연상시킨 겁니다. 박 대령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이미지가 있잖아요. 의연하고 강직하고 원칙적인, 그런 겉으로 보이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 친구가 공부도 잘했지만, 운동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임관을 앞두고 축제 같은 걸 했을 때 태권도 시범을 보였는데, 발차기를 엄청나게 잘하더라고요. 태권도 4단이었던 겁니다. 나중에 해병대 사령부에 근무하면서 고려대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을 정도로 문무를 겸비한 친구였죠.

사관후보생 시절 이 친구의 포항 집을 방문한 것이 더욱 친해진 계기가 됐습니다. 포항에서 훈련받을 때 한두 차례 외출할 기회가 있었는데, 집으로 초대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동기생 2, 3명이 함께 정훈이네 집에 가서 식사한 기억이 있어요. 어머니도 만나 뵙고 하면서 각별한 관계가 된 것입니다. 임관하고 나서는 저는 백령도로 갔고, 박 대령은 처음엔 아마 포항으로 갔을 겁니다. 그 후 군 생활을 하면서 전화나 한 두통 주고받는 정도였지요."

김성 신부는 작년 8월 TV를 통해 뜻밖의 사건을 접하게 된다. 박정훈 대령이 이른바 '채 해병 사건'으로 전국적인 이슈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박 대령이 권력과 맞서면서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음을 알게 된 김 신부는 서귀포 면형의 집으로 친구를 불러들여 치유의 시간을 갖도록 했다. 당시의 이야기다.

"작년 가을에 이 친구가 너무 힘들어하길래 제가 이곳에서 2박3일 피정(避靜)을 하게 했어요. 함께 숲길도 걷고 면담도 했는데, 그동안 힘들다는 말도 안 하고 잘 버티고 있다고만 하던 친구가 처음으로 힘들어하는 실상을 얘기하더라고요. 처음 사건이 불거졌을 때 압력이 어마어마했다는 겁니다. 군검찰이 며칠간 밤샘 조사도 하는 등 엄청나게 몰아쳤더라고요. 채 해병 수사외압 의혹사건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는 얘기도 했어요. 대통령은 군 최고 통수권자이잖아요. 그리고 해병대는 명령체계가 다른 어느 부대보다도 셉니다. 그런데 사단장, 사령관, 국방장관과도 계속 싸우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당시 엄청난 핍박을 받으면서 '만약 불명예제대를 하게 되면 연금도 없어질 텐데, 우리 가족을 어떻게 하나, 내가 죽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겁니다. 죽으면 불기소 처분이 될 테니까요. 참 고마운 게 저희 동기회장 친구가 박 대령이 정신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걸 알고 심리학박사에게 상담을 받게 해주었어요.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고 합니다. 또 좋은 변호사들을 만났고, 이 친구가 출두할 때 동기들이 함께 가주고 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는 겁니다."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미사 지난 8월 3일 박정훈 대령을 위한 미사에서 주례를 맡은 김성 신부(가운데). 이날 미사에서 강론을 한 데 이어 이야기 손님으로 나섰다. ⓒ 김성


박정훈 대령은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다. 김성 신부는 신자 박정훈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정훈이가 원래 불교 신자였어요. 그러다가 가톨릭 신자가 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요즘 엄청나게 신앙이 깊어졌습니다. 제가 연락할 때마다 성당에 가 있다는 거예요. 주일날에는 얼굴이 알려져 본당에 가기가 불편하니까 남양성모성지에 가서 미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수원에 살고 있으니까 바로 옆이거든요. 매일 성경을 본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얘기할 때 성경을 자주 인용하더라고요. 지금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신앙적으로 깊어지면서 하느님을 만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순교자란 다름 아니라 하느님을 증거하는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순교는 피 흘리며 죽는 게 아니라 정의와 진실 편에서 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박 대령은 보이지 않을 뿐이지 진짜 피 흘리고 있어요. 저는 박정훈 스테파노에게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보고 있습니다."

"해병 출신, 보수·진보 떠나 이번 사건에 크게 분개"

박정훈 대령 7차 공판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 이첩 관련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7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출석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수녀님들이 천주교신자인 박 전 대령을 응원하고 있다. ⓒ 이정민


채 해병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 했던 박정훈 대령이 오히려 항명죄로 재판을 받게 되자 해병대 전우들이 나섰다. 박 대령의 동기들이 앞장서고, 전국의 해병 출신들이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라는 조직을 결성해 집회를 하는 등 전에 없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해병대 동기들과 예비역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사건이 터진 이후 저희 동기생 80여 명이 카톡방에서 긴밀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이가 다들 50이 넘었는데도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어요. 박정훈 대령을 응원하고, 변호사비에 보태려고 후원금도 꽤 모았고요.

해병대 예비역연대도 집회를 자주 갖고 박 대령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집회에 참석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용산에서 300명 정도가 모여 크게 집회를 했을 때 저도 참석해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해병대 예비역연대를 주도하는 분들은 대개 병 출신인데 아주 세게 합니다. 박 대령이 순직한 채 해병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하는 걸 보면서 열심히 움직여주는 것이지요."

해병대 전우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집단 중 하나라는 평가가 많다. 이런 풍토에서 해병대 출신들이 집회를 갖고 정권을 규탄하는 모습은 낯선 게 사실이다. 해병대 집회에 참석했던 김성 신부에게 해병대 내부의 분위기를 들어보았다.

"본래 해병대 전우회는 매우 보수적인 조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극우단체로 보는 시각도 있고요. 그리고 거의 광적이라고 할 만큼 조직에 대한 충성도도 강해요. 그런데 이번 사건에 대한 논평을 보니까 좀 갈팡질팡하더라고요. 처음엔 해병의 충성심을 강조하다가, 조금 바뀌어 제대로 수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가, 요즘은 중립적인 태도로 지켜보는 상태입니다.

예비역연대 집회에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 100여 분 정도가 아주 열심히 응원해 주셔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박 대령의 아들이 육사 3학년이어서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교수들이나 장교들이 '괜찮다, 너 기죽을 필요 없다'라면서 지지해 준다는 것이에요. 그들도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거죠. 그래서 아들이 박 대령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뉴스타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보수는 왜 채 해병 사건에 분노하는가>를 보면 해병대 집회에 나오는 분들의 의식 수준이 높더라고요. 해병대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졌나 하면서 분개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극우 보수 성격의 어용 집회도 열려 '좌파 해병' 운운하기도 했어요. 참 창피한 일이죠. 해병대 전우회라는 조직은 여전히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개별적으로 해병 출신은 보수 진보를 떠나서 이번 사태에 크게 분개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가톨릭, 중립 가장해 침묵하면 안 돼"

제주도에서 만난 해병대 동기들 지난 2월 김성 신부의 초청으로 면형의 집에 피정 온 박정훈 대령(가운데) 김태성 미카엘 동기회장(오른쪽)과 함께 곶자왈 도립공원을 찾았다. ⓒ 김성


채 해병 수사외압 의혹사건은 박정훈 대령이 장관의 결재를 받아 경북경찰청에 넘긴 수사기록이 회수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개인 휴대폰으로 국방장관 등과 통화를 한 사실이 밝혀졌고, 언론 보도와 국회 청문회를 통해 고위공직자들이 대거 연루된 정황이 나왔다. 외압 논란의 당사자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다.

"지도자, 결정권자가 정말 중요하다는 점을 절감합니다. 최종 결정권자가 비상식적이니까 법과 원칙, 상식이 다 무너지고 흐트러지는 것 아닙니까.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어올 정도입니다. 위에서 권력으로 내리누르는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보니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이 떠오릅니다.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아 화도 나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처신에 가장 화가 많이 납니다. 솔직히 자기가 (수사 결과를) 결재하지 않았습니까. 결재했다는 건 자기가 책임진다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다음날 바로 그걸 보류하라고 하질 않나, 박 대령에게 집단항명 수괴죄를 씌웠다가 말이 안 된다 싶으니까 항명죄로 바꾸질 않나. 김계환 사령관이 녹취록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을 부인하는 모습이나, 임성근 사단장이 청문회에 나와서 자기가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는 모습도 너무나도 졸렬해 보입니다.

반면에 박정훈 대령은 수사단 내에서 엄청나게 신임을 얻고 있었더라고요. 부하 중에 한 사람도 불리한 증언을 안 했어요. 누구도 배신하지 않으니까 처음에 집단항명 수괴로 몰고 간 것입니다. 박 대령 바로 밑에 중앙수사대장이 있는데 중령으로 사관학교 출신입니다. 이 친구가 참 멋있더라고요. 해병대 사령관이 '정훈이는 문제없다(수사 결과에 잘못된 건 없다)'라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까버린 거예요. 상관인 사령관의 진실 회피에 결정타를 날린 것입니다. 이건 진짜 자기 목숨 걸고 한 일이죠. 용기 있는 행동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정훈이가 참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김성 신부는 박 대령 재판도 방청하면서 관련자들의 진술 태도를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그가 목격한 재판정 풍경은 어땠을까.

"제가 서귀포 강정에 계시는 문정현 신부님을 모시고 재판을 참관하러 갔을 때였어요. 재판정 풍경이 참 가관이더군요. 판사는 질문하면서 약간 한숨 같은 걸 계속 쉽니다. 검사 2명은 마스크를 쓴 채 고개를 못 들고 있고, 변호사들은 막 호통치고 난리를 치는 분위기였어요. 판사가 김계환 사령관에게 '박정훈 대령이 처벌받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묻자 '처벌을 원한다'고 답변하는 겁니다. 방청석에서 막 욕이 터져 나왔지요. 사령관도 협박이나 회유를 받고 있겠지만 그럴지라도 선처를 원한다든가, 최소한 자기 부하를 감싸주는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박정훈 대령이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 '채 해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이 국회 의결, 대통령 거부권 행사, 국회 재의결 부결이라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김 신부는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통령이 정상적인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비상식적이에요. 전두환이나 이명박 박근혜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국민 눈치도 보고 뭔가 제스처도 취했잖아요. 자기가 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인지 그냥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같아요. 유시민 작가가 지난 총선 때 야권이 200석 이상 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없을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습니다. 제가 볼 때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습니다."

채 해병 수사외압 의혹사건에서 드러나듯이 윤석열 정권의 국정 운영 시스템이 정상궤도를 이탈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목격되는 형국이다. '김건희 공천개입' 의혹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역사 왜곡이나 친일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최근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70%에 이르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과거와는 달리 종교계에서는 쓴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가톨릭 사제이자, 수도자로서 김 신부의 진단을 들어보았다.

"제가 다른 종교까지 말하기는 좀 뭣하고 가톨릭에 대해서 보자면,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는 그래도 윤석열 정권에 대해 쓴소리를 많이 했죠. 1년 동안 시국미사를 하면서 정말 속 시원하게 지적을 했는데, 언론에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내에서도 사제단의 목소리가 무시되거나 왕따당하는 분위기마저 있었어요. 9월 23일이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창립 50주년이거든요. 그걸 기점으로 다시 사제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 때도 그렇고,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가르침도 그렇고, 교회에 중립은 없습니다. 교회에 무슨 중립이 있습니까. 중립을 가장해 침묵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시작부터 가난한 사람들 편에, 정의 편에, 진실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횡포와 불의와 거짓에 대해 말하기를 불편해하는 상황이 부끄럽습니다. 정의 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불의하고 부당한 것에 눈감으면서 평화를 말한다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두 축이 사랑과 자비, 공정과 정의입니다. 그런데 사랑과 자비만 강조하면 공허한 것이죠.

이제는 우리 주교님들이 좀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주교회의에서 현 상황은 비상식적이다, 대통령은 거부권을 중지하라고 한마디 해야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누가 어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그래도 주교님들 정도 되면 어른이라고 할 수 있죠. 신부님들도 마찬가지이고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다만 지혜롭게, 논리적으로 아주 정연하게, 그리고 상식적으로 통할 수 있도록 말을 해야 합니다. 국민 사이에 이념 갈등이 심하고 정파적 대립이 심해 정권을 몰아붙이는 식으로 비판하면 일부 신자들이 들고일어나 막 싸우려 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김성 신부가 제주에서 보고 느낀 것

면형의 집 녹나무 제주도 최초의 피정센터인 서귀포 면형의 집 본관 앞에는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수령 250년의 녹나무(수고 16.5m)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 황의봉


화제를 돌려 김 신부가 해병대 장교에서 가톨릭 수도자가 되고 이어서 사제 서품을 받게 된 사연을 들어볼 차례다. 앞에서 김 신부가 해병대 사관 81기를 수료하고 동기생 박정훈 대령과 헤어져 백령도에 부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다.

"해병대 장교로 임관돼 백령도에 소대장으로 근무하게 됐는데, 소대에서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성당이 있었어요. 주말마다 미사를 드리러 갔죠. 젊은 장교가 열심히 오니까 수녀님 눈에 띄게 됐고 3년 동안 교리교사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휴가 때, 수녀님 부탁으로 서울 성북동의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가게 되었어요.

그 일이 계기가 돼 휴가 때마다 성북동 수도원에 놀러 갔고, 그곳에 계신 수도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친해졌습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수도원을 찾아가다가 점점 빠져들었던 것이지요. 결국 제대 후 수도회에 입회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들어가 학부와 대학원에서 7년, 수도회 자체 교육 2년 등 9년을 공부한 끝에 신부가 된 겁니다."

홍로의 맥 옛 홍로성당 터인 ‘면형의 집’ 정원에서 108년을 살아오다가 2019년에 고사한 오늘날 제주 감귤의 원조 온주밀감 고사목. ‘홍로의 맥’이라는 이름으로 면형의 집 성당에 전시하고 있다. ⓒ 황의봉


김성 신부가 일하고 있는 면형의 집은 1902년 에밀 타케 신부가 세운 홍로성당이 있던 곳으로 제주도 가톨릭의 초창기 역사와 관련이 깊다. 1959년, 당시 하놀드 광주교구장의 요청으로 이 홍로성당 터를 관리하게 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귤밭이었던 이곳을 1975년 제주도 최초의 피정 센터로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면형의 집은 원장인 김 신부를 비롯한 사제 4명과 수사 2명이 전국에서 피정 오는 신자들을 맞아 지도하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곳으로, 8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김 신부는 이곳으로 피정 오는 신자들과 함께 천주교 성지를 순례하고, 교회사 강의를 한다. 곶자왈이나 올레길 등 생태 순례도 하고, 제주4·3에 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6년째 제주에서 살고 있는 그에게 이곳에 와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제주도는 섬 자체가 아름답기도 할 뿐 아니라 이곳의 역사를 알아갈수록 생각할 것이 많다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한마디로 저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고, 울림이 큰 곳입니다. 특히 4·3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서 처음엔 무척이나 힘들었고, 놀랐고, 화가 많이 나더군요. 요즘엔 윤석열 정권이 임명한 고위공직자 중에 제주 4·3을 북한이 사주한 폭동이나 반란으로 왜곡하는 사례가 빈번해 자칫 지금까지 이뤄진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작업이 후퇴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김 신부는 제주의 자연생태계가 날로 훼손돼가는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특히 제2공항의 건설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번 여름이 이렇게 더운 것부터가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이지요. 해녀들 말을 들어보면 바닷속이 사막화돼 해초들이 거의 사라졌다고 합니다. 미역도 없어졌고요. 지금 급한 건 제2공항이죠. 이거 너무 심각한 문제입니다. 제2공항이 건설되면 사실 몇몇 개발업자들만 이익을 볼 뿐이고 대다수 주민의 삶은 다 망가지는 겁니다. 제주도를 다 망가뜨리고 제주도에 관광하러 오라는 게 말이 됩니까. 논리가 맞지 않아요. 강정해군기지보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제 진짜 다 들고 일어나야 합니다. 원희룡 지사 때 여론조사를 한 결과 반대가 더 많았잖아요. 그런데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왜 다시 지으려고 합니까. 민주당도 비난받아야 하는 게, 도지사도 찬성하는 듯한 언행을 하고 있고, 국회의원들도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얼버무리고 있어요. 주민들이 들고일어나 정치인들을 압박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제주교구 신부님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기본계획 고시가 됐다고 플래카드가 나붙고 하던데, 공항을 일단 지어버리면 되돌릴 수 없으니까 시작부터 하지 못하도록 빨리 대응해야 합니다."

김성 신부는 마지막으로 "국민과 모든 의로운 세력이 결집해 비상식적인 정권을 심판할 때 박정훈 대령의 외로운 싸움은 아름답고 의로운 결말로 끝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루하고 지저분한 재판'이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정의로운 하느님의 섭리를 믿는다는 김 신부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