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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로 가는 길 백두산 서파에서 천지로 가는 계단길
천지로 가는 길백두산 서파에서 천지로 가는 계단길 ⓒ 소준섭
 
백두산 천지 그리고 어여쁜 야생화 꽃밭

오래 전부터 백두산 천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백 번에 두 번 볼 수 있다 해서 백두산이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니 처음부터 아예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백두산 여행(7월 13일에서 7월 17일까지 4박 5일)은 운 좋게도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이틀에 걸쳐 두 번 모두 잘 볼 수 있었다.
 
백두산 북파에서 본 천지 백두산 천지의 모습
백두산 북파에서 본 천지백두산 천지의 모습 ⓒ 소준섭
   
천지 표지석 백두산 서파의 표지석과 천지
천지 표지석백두산 서파의 표지석과 천지 ⓒ 소준섭
 
백두산 산등성이 곳곳에 형형색색 수줍게, 그러나 가장 강렬한 본연의 색으로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답게 피어난 야생화들은 정말이지 고혹적이었다. 선명한 꽃 빛깔로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들 야생화들은 모두 백두산 일대에서만 자라 백두산이란 이름이 붙어있는 야생화다.
백두산 야생화 어여삐 피어난 야생화
백두산 야생화어여삐 피어난 야생화 ⓒ 소준섭
   
백두산 야생화 하얗게 피어난 야생화
백두산 야생화하얗게 피어난 야생화 ⓒ 소준섭
   
노란 야생화 백두산 야생화
노란 야생화백두산 야생화 ⓒ 소준섭
 
여행 3일째에 방문한 윤동주 생가는 툇마루에 창호지로 바른 방문하며 영락없이 옛날 우리들의 시골집 풍경이다. 담장 옆에는 100년도 넘게 자란 커다란 느릅나무가 지켜보고 서 있다. 생가 한 켠에는 윤동주의 절친이었던 송몽규 시인의 사진도 진열되어 있다. 송 시인 역시 일제의 참혹한 생체 실험의 희생자로서 윤동주가 절명한 뒤 21일 만에 옥사해야 했다.

문자 그대로 지대물박, 참으로 땅도 넓고 갖가지 물건들도 많은 중국이었다. 차창 밖으로 그 옛날 한민족의 조상들이 말 타고 달렸을 광활한 대지가 끝이 없이 펼쳐진다. 그곳들에 심어진 드넓은 옥수수밭과 산호리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떼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두만강 너머 북쪽이 이렇듯 가까이 있건만

마지막 날 중국 땅 투먼으로 가서 두만강 너머 북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만강의 중국 측 산들은 험한 지형인 데 비해 북한 측 산들은 대단히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뤄져있었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산 쪽으로 우리들은 단 한 발짝도 접근할 수 없다. 중국인들은 강변 산책도 가능하고 두만강 뱃놀이까지도 즐길 수 있는데, 정작 같은 민족인 우리들은 아예 도로 아래 두만강 산책로로 내려갈 수도 없다. 그저 강 건너 북쪽을 바라보며 아련한 슬픔을 달래볼 수밖에 없다.
 
두만강 너머 북한 두만강 너머 북한의 모습
두만강 너머 북한두만강 너머 북한의 모습 ⓒ 소준섭
 
왜 우리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토록 극단적이고 적대적인 분단 상황에 놓여야 하는 것일까? 굳이 통일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백두산부터 개성까지 마음 놓고 왕래하고 여행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 보리라.

#백두산#천지#두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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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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