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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손바닥 선인장이라고도 불리며 월령리에서 자생하고 있다.
▲ 선인장 손바닥 선인장이라고도 불리며 월령리에서 자생하고 있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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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올레길 14코스 트레킹에 나섰다. 제주 여행 중에 '한 코스 완주하기'를 하고 있다. 나 홀로 짬을 내어 걷곤 한다. 하늘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장마철이고, 비가 내린다는 예보도 있지만 그냥 나가서 걸어 보기로 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했던가. 

올레길 14코스는 저지-한림 구간으로 총길이가 19.1km에 달한다. 소요시간은 6~7 시간 정도 예상되지만, 그래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굴렁진 숲길, 무명천 산책길을 거쳐 월령 선인장 자생지, 금릉·협재 해수욕장을 지나 한림항에서 끝난다. 

시작점인 저지리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농촌마을이다. 서귀포시 안덕면과 경계를 이룬다. 저지 예술정보화마을에서 월령리까지 숲길이 많은 중간 산악 지대다. 저지오름을 끼고 걷기 시작한다. 마을 초입에는 수백 년 됨직한 팽나무가 우뚝 서 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같다.

마을을 벗어 나니 농로를 따라 돌담을 쌓은 밭들이 이어진다. 밭작물은 콩, 깨 등이다. 대형 온실이나 비닐하우스도 보인다.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을 재배한다. 노루, 고라니 피해가 있으면 신고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멧돼지뿐만 아니라 노루, 고라니까지 우리 인간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한 40여 분이나 걸었을까. 포장 농로를 지나 우측으로 사유지 길로 들어선다. 울퉁불퉁, 구불구불 밭길이라 힘들지만 지압을 한다는 생각으로 걸었다. 발 지압은 발의 정맥과 혈관 부위 혈액 순환을 원활케 하는 것으로 건강에 좋다고 한다. 사유지 길이라 발길을 조심스래 옮긴다.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하늘이 물항아리를 힘들게 보듬고 있다가 한꺼번에 뒤엎어 버린 것 같다. 이 우중에도 트랙터로 밭갈이하는 농부가 있다. 우산도 없이 온몸에 옷이 찰싹 달라붙은 채로 올레길을 걷고 있던 외국인과 한국인 일행도 보인다. 
 
오름 저지리에서 바라보는 오름의 아름다운 모습
▲ 오름 저지리에서 바라보는 오름의 아름다운 모습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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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 올레길 14코스 길에서 만났다. 누군가 심어놓은 꽃은 길손에게는 크나큰 선물이 된다
▲ 수국 올레길 14코스 길에서 만났다. 누군가 심어놓은 꽃은 길손에게는 크나큰 선물이 된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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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비가 금방 그쳤다. 제주도 비는 오락가락 내린다. 큰 소낭 숲길을 지나 오시록헌 농로길로 들어선다. 오시록은 호젓하고 비밀스럽게 숨어 있다는 뜻의 제주어다. 구불구불 돌담으로 구획이 나누어진 밭길이다. 돌담 밑에는 강아지풀이 물을 머금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수국, 칸나, 야생화들이 향기를 뽐낸다.

농로와 들판을 지나면 '굴렁진 숲길'을 만난다. 움푹 파인 지형을 제주어로 굴렁 지다고 한다. 굴곡이 있는 숲길이라 굴렁진 숲길이라 이름 붙였다. 어둠의 터널이다. 새소리와 빗소리를 들어며 길을 재촉한다. 조금 으스스 하지만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금방 숲길은 끝난다.

숲길을 벗어나면 무명천을 따라 산책길이 이어진다. 큰 비가 오기 전에는 말라 있어 물이 흐르지 않는다. 한적하고 고즈넉하다. 평탄하고 폭신한 흙길이다. 갑자기 송아지만 한 고라니 한 마리가 후닥닥 튀어간다. 소쩍새, 지빠귀 등 새소리도 은은하게 들려온다. 

무명천에는 옹벽을 타고 담쟁이 등 넝쿨 식물들이 뿌리를 박고 산다. 후박나무, 자귀나무까지 계절을 바꾸며 쉼터를 제공한다. 마른 바닥에도 제법 큰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다. 일주도로인 월령교에 이르니 손바닥만 한 선인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선인장 자생지 월령마을
             
자생 선인장 월령리에서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 자생 선인장 월령리에서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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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뱀과 쥐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담장에 심어 놓은 선인장이 군락지가 되었다.
▲ 선인장 뱀과 쥐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담장에 심어 놓은 선인장이 군락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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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령리에는 '무명천 할머니'라 불리던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가 남아 있다.
 월령리에는 '무명천 할머니'라 불리던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가 남아 있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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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령리 마을 입구에서부터 포구까지는 선인장 군락지다. 월령리는 유일하게 한국에서 선인장이 자생하는 지역이다. 월령리에서는 예로부터 뱀이나 쥐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선인장을 심었다고 한다. 월령리 자생종 선인장은 멕시코가 원산지다. 

월령리에는 고 진아영 할머니의 생전 삶터가 있다. 제주 뼈아픈 역사인 4·3 사건의 상처를 안고 살았던 진아영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표석을 세워 기리고 있는 곳이다.

'무명천 할머니'로도 불리는 고 진아영 할머니는 4·3 당시, 토벌대의 총탄에 맞아 턱을 잃은 채로 살았다. 턱이 없는 흉한 모습을 가리려 하얀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싸고 55년을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도는 할머니가 생전에 다니던 집 앞 골목을 '무명천 할머니 길'로 정했다. 고통과 외로움에 살다 간 진아영(무명천)할며니의 생애를 들여다 보고, 선인장 군락지인 '월령 선인장 자생지'로 발길을 돌린다.

월령 포구의 광대한 선인장 자생지 길은 제주도에서 둘도 없는 길이다. 목재 데크 산책로를 따라 바위길을 지나며 훔쳐보는 풍광은 색다름 아름다움이다. 바다 바위 위로 뻗어 있는 선인장, 풍력발전기는 지나는 배와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와도 같다.
 
월령선인장 자생지 멀리 떠 있는 배와 한데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다.
▲ 월령선인장 자생지 멀리 떠 있는 배와 한데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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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령 선인장 자생지 바다 바위 위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월령 선인장 자생지 바다 바위 위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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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령선인장 자생지 1
▲ 월령선인장 자생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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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올레14코스, #저지리, #월령선인장자생지, #무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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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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