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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은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스포츠였습니다만 1970년대만 해도 국궁장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주로 활터를 차지하고 있어 중고등학생들이 찾아가면 '학생들은 가라'고 할 만큼 젊은이들에게 국궁을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이제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전통 스포츠로 국궁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는 서울 강서구 공항정(空港亭)의 윤서현 사두(射頭: 활터를 관리하는 우두머리)의 말이다. 활터에서는 사두라 불리지만 윤서현 사두의 공식 직함은 '서울강서구궁도협회장'이다.
  
 전통 활쏘기에 여념이 없는 여궁사들
 전통 활쏘기에 여념이 없는 여궁사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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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활터인 공항정은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 '각궁(角弓)' 문화가 발달한 활터로도 유명합니다. 각궁이란 참나무, 산뽕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와 쇠심줄, 물소 뿔 등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재료들을 결합하여 만든 우리 겨레 고유의 전통 활을 말합니다."
 
어제 11일(목) 오전, 공항정을 찾은 기자를 보자마자 윤서현 사두는 '각궁' 자랑부터 꺼냈다. 공항정을 찾은 것은 지난 6월 중순에 활터를 찾은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 다시 방문한 것으로 활터에 들어서니 무더위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첫 방문 시에 윤서현 사두가 바쁜 일이 있어 아주 짧은 이야기만 나눈 터라 이번에는 넉넉한 시간을 두고 대담했다.
  
궁방 전통활인 각궁에 시위를 걸기 위해 활을 만지는 궁사. 이곳을 궁방이라 하는데 장소가 없어 겨우 1명만이 작업 할 수 있다.
▲ 궁방 전통활인 각궁에 시위를 걸기 위해 활을 만지는 궁사. 이곳을 궁방이라 하는데 장소가 없어 겨우 1명만이 작업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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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운영에 가장 어려운 점은 늘어나는 회원 수에 견주어 장소가 너무 협소하고 시설이 낡았다는 점입니다. 공항정은 김포의 송학정(松鶴亭)에서 1949년 분리되어 강서구 공항동 산128-1(속칭 누랭이솔밭)에 활터를 개설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이후 1975년 4월에는 김포공항 화물청사 부근에 백호정(白虎亭)이란 이름으로 있다가 이듬해인 1976년 공항정으로 개명한 뒤 1984년 2월, 김포국제공항 확장공사로 기존의 활터가 편입, 철거됨에 따라 1986년 7월, 강서구 화곡5동 산60-1(우장산 근린공원)에 활터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 뒤 1989년 6월 29일 공원 내 활터 설치허가를 조건으로 공항정 터를 서울시에 기부채납하였으며, 1989년 12월 20일 현재의 공항정 건물을 신축하였지요."

윤서현 사두는 조곤조곤 현 공항정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이야기다.
 
"원래부터 활터 건물을 크게 지은 것이 아니었지만 35년 전만 해도 국궁장을 찾는 이들이 50여 명 안팎이라 그런대로 협소한 공간이었어도 사용하는 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체력 단련과 정신 수양에 좋은 스포츠로 국궁이 알려지자, 회원들이 늘어가다 보니 현재는 남자 100여 명, 여자 50여 명이 활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3배나 많은 인원이 이용하다 보니 당장, 사물함과 궁방(활시위를 조절하는 방), 휴게실, 화장실 등이 포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궁에 대한 인식이 날로 높아져 배우고자 하는 회원의 문의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협소한 활터 건물에다가 그나마도 낙후되어, 활쏘기를 위한 대기실 지붕은 빗물이 새는 등 손을 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화살받이터 과녁이 있는 자리에는 모래를 깔아 둔다(화살받이터). 가끔 새 모래를 부어줘야 하는 데 이를 게을리하면 비 등으로 인해 모래가 석고화 된다. 현재는 새 모래를 보충할 여력이 없어 자주 모래를 섞어 줄 뿐이다.
▲ 화살받이터 과녁이 있는 자리에는 모래를 깔아 둔다(화살받이터). 가끔 새 모래를 부어줘야 하는 데 이를 게을리하면 비 등으로 인해 모래가 석고화 된다. 현재는 새 모래를 보충할 여력이 없어 자주 모래를 섞어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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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정 안내판 공항정 활터 안내판 밑둥이 썩어들어가더니(붉은 원) 얼마 전에는 쓰러져서 철거했다.
▲ 공항정 안내판 공항정 활터 안내판 밑둥이 썩어들어가더니(붉은 원) 얼마 전에는 쓰러져서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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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정의 책임자로서 윤서현 사두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이어졌다. 윤서현 사두는 시설 확충과 노후시설 교체 등에 대해 강서구청에 문의해 보았으나 시설 확충은 이곳이 공원 지역이라 사실상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며 '어렵다, 곤란하다'라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방법'을 마련해 주는 노력이 아쉽다고 했다. 더군다나 최근에 정화조가 넘쳐 연락했더니 구청에서 나와 겨우 정화조 교체만 하고 갔는데 건물 바깥 부분의 처리 시설은 아직도 방치되어 있다고 했다.
 
활터의 과녁이 서 있는 곳에 깔아둔 모래(화살받이 터)도 주기적으로 새 모래를 보충해 주고 자주 고르게 섞어 주지 않으면 모래가 석고화 되어 화살이 튈 수 있지만 비용 등이 만만치 않아 자체적으로 기존의 모래를 뒤집어 주는 정도라고 아쉬워했다. 듣고 보니 대대적인 보수와 시설 확충이 필요했다.
 
백세 스포츠 시대를 맞이하여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민을 위한 각종 공원시설 확충 그리고 스포츠 시설 확대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역민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살피고 투자하는 빈틈없는 행정이야말로 더 미룰 수 없는 현안 가운데 현안일 것이다.
  
공항정 사물함 베테랑 궁사(24년 경력) 신경숙씨가 공항정 활터의 비좁고 낡은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사물함으로 한 사람이 사물함 문을 열면 뒷사람은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비좁다.
▲ 공항정 사물함 베테랑 궁사(24년 경력) 신경숙씨가 공항정 활터의 비좁고 낡은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사물함으로 한 사람이 사물함 문을 열면 뒷사람은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비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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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정 휴게실 활을 쏘기 위한 대기 장소로 이곳이 남녀 회원들의 유일한 휴게실이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는 대책이 없다.
▲ 공항정 휴게실 활을 쏘기 위한 대기 장소로 이곳이 남녀 회원들의 유일한 휴게실이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는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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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양궁 강국으로서 각종 올림픽과 국제무대에서 '케이 궁사'들의 눈부신 활약과 함께 우리 겨레가 오랜 세월 갈고 닦아온 국궁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져 가고 있는 현실은 강서구의 활터인 공항정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즘 스포츠 시설은 어디를 가나 냉·난방을 갖춘 휴게 시설이 기본이지만 공항정만은 예외다.
 
윤서현 사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활쏘기를 마친 신경숙(63살) 궁사가 들어와 잠시 대담을 했다. 마침 신경숙씨가 화살을 사물함에 두러 간다기에 기자가 그 뒤를 따라가 보았다. 사물함이 양옆으로 나란히 놓여 있는 곳 중간에서 멈춘 신경숙씨가 사물함 문을 열자 공간은 혼자 서 있기도 비좁았다. 바로 뒷사람이 들어와 사물함 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태였다.
 
"저는 올해로 24년째 국궁을 즐기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14년 활을 쐈고, 강서구 공항정에서는 10년째입니다. 활터를 이용하면서 불편한 점은 한둘이 아니지만 우선 급선무를 꼽는다면 늘어나는 회원에 견주어 시설이 턱없이 협소하고 낡았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여성이 50여 명인데 여성 전용 휴게실 하나 없는 실정입니다. 또한 궁방 (전통 활인 각궁에 시위를 걸기 위해 활을 만지는 곳)도 좁아 겨우 1명만이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기자가 돌아보니 남성용 휴게실도 없었는데 활을 쏘기 위해 대기하는 곳을 임시 휴게실로 쓰고 있었다.
 
공항정의 여성 고참인 신경숙씨는 강서구 공항정의 현 실태를 조심스럽게 이야기 해나갔다.

"아참, 이거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보시다시피 활을 쏴서 모두 과녁을 맞히는 것은 아닙니다. 더러는 과녁까지 못 가고 도중에 풀밭으로 떨어지기도 하는데요. 풀이 웃자라 화살을 찾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회원들이 활을 쏘러 와서 종일 풀만 뽑고 가기도 합니다. 강서구청 공원녹지과에서 풀 관리를 좀 해주면 좋겠습니다."
  
공항정 정화조 활터 건물의 반지하에 작은 주방이 있는데 사물함까지 들여놓아 더 비좁다. 얼마 전 정화조가 넘쳐 공사를 마쳤으나(왼쪽) 아직 바깥 부분은 마무리를 못 한 채 방치되어 있는 상태다(오른쪽, 윤서현 사두가 추가 공사가 필요한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 공항정 정화조 활터 건물의 반지하에 작은 주방이 있는데 사물함까지 들여놓아 더 비좁다. 얼마 전 정화조가 넘쳐 공사를 마쳤으나(왼쪽) 아직 바깥 부분은 마무리를 못 한 채 방치되어 있는 상태다(오른쪽, 윤서현 사두가 추가 공사가 필요한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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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현 사두와 고참 여궁사 신경숙씨의 말이 아니라도 공항정을 둘러보면 모든 시설이 협소하고, 낡은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회원들이 물을 끓여 커피 등을 타 마시는 주방 같은 반지하 작은 공간에도 사물함이 빼곡하다. 거기 붙어 있는 화장실은 변기에 앉아 문을 닫을 수 없을 정도로 좁다.
 
이러한 열악한 가운데서도 사두와 회원들은 전통 활쏘기인 국궁 사랑에 푹 빠져 있다. 요즘은 종교 시설들도 발 빠르게 1층을 카페로 꾸며 신도들이 편안한 장소에서 친교의 시간을 갖게 배려하고 있다. 그런 멋진 카페는 기대도 안 한다. 지역민들이 공동으로 심신을 단련하는 우리의 국가무형문화재인 전통 활쏘기를 쾌적한 공간에서 누리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대담 내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기자는 공항정 활터 건물 안팎을 둘러보며 35년 동안 시설 개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욱 놀란 것은, 서울 시내 8개의 활터 곧, 공항정, 관악정, 석호정, 황학정, 화랑정(육군사관학교 안에 있어 일반인 이용 불가), 수락정, 영학정, 살곶이정 가운데 전국 단위 활쏘기 대회를 열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시설이 열악하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활쏘기 대회는 거의 지방도시에서 열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군수기(郡守旗) 대회도 자주 열리는데 서울에서는 서울시장기(旗) 활쏘기 대회 하나 없다고 한다.
 
그나마 서울 시내에 있는 7개(화랑정 제외)의 활터 시설은 늘어나는 회원들에 견줘 좁고 낡은 데도 오세훈 시장은 얼마 전 110억 원을 들여 광화문 광장에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만든다는 깜짝 발표를 하여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재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럴 돈이면 거의 방치되고 있는 서울 시내의 국궁장을 전수 조사한 다음 비가 새고, 사물함도 부족하고, 휴게실 하나 없는 곳에 예산을 지원하여 심신 수양과 체력 단련을 겸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국궁장'을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국궁이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스포츠요,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 스포츠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지 않은가?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도 국궁장에 들러 활시위를 당겨 보게 한다면 대형 태극기 게양보다 더 중요한 양궁 강국의 저력을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강서구의 활터인 공항정의 윤서현 사두와 대담하는 필자
 강서구의 활터인 공항정의 윤서현 사두와 대담하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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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을 사랑하고 그 저변 확대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사두가 어찌 강서구의 국궁장인 공항정만의 일일까 싶다. 윤서현 사두는 조만간 강서구청과 낡은 시설 문제를 의논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했다. 기자는 우장산 공원의 활터 공항정을 내려오면서 지속해서 전통 활터인 강서구 공항정의 변신을 주목해 보자고 다짐했다.

★전통 국궁 공항정(空港亭)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gonghangjeong/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공항정, #윤서현, #국궁, #전통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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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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