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호치민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베트남에어라인에서 만난 일출
 호치민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베트남에어라인에서 만난 일출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나는 지금 호치민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베트남에어라인 항공기의 가장 끝자리에 앉아 창밖의 일출을 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호치민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국적기 직항이 있다는 게 놀랍다. 10년을 먹어도 적응이 안 되는 고수가 기내식에도 들어 있다는 게 또 놀랍다. 호치민은 국제적인 도시였고, 고수는 국제적인 식자재였다. 해외 생활이 곧 10년 차에 접어들지만 나의 세계관은 여전히 좁다는 게 마지막으로 놀랍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김영하 작가의 데뷔작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남자는 결국 어떻게 됐을까? 나도 엘리베이터에 끼었던 적이 있었다. 물리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그런 일은 존재한다. 10년 전 부산 수영 현대아파트의 오래된 엘리베이터에 낀 나는 세계일주를 하겠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배낭을 멨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내가 손에 쥘 수 있었던 건 실직으로 인한 시간적 여유와 잔고는 0원이지만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금전적 여유였다. 한 마디로는 빚쟁이 백수 정도 되겠다. 세계일주 같은 건 꿈꾸면 안 되는 젊음이었다. 아니, 중년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생면부지의 <오마이뉴스> 독자들도 나를 걱정해주셨다. 나의 선택이 크게 잘못됐다는 것과 나의 미래가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전망이 주를 이루었다.

나 역시 동의하고 공감하는 바였기에 힘찬 응원의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이 여행은 내 삶의 마지막 여행이다. 내가 여길 언제 다시 와 보겠어?'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경험하든 간절하고 절실했다. 

[연재기사 :  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https://omn.kr/1puud]

오마이뉴스에 <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간절하고 절실했기에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생각하고, 더 크게 성장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몇 개의 상을 받았다. 내가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지는 않았다는 코멘트가 적힌 성적표를 받은 기분이었다. 
 
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직장 그만두고 세계여행 떠난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 타박타박 아홉걸음 세계일주 직장 그만두고 세계여행 떠난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그때의 여행은 세계일주는커녕 지구 반 바퀴를 못 채우고 베트남에서 멈췄다. 평생 월급쟁이로만 살던 내가 법인을 만들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것도 여행이라 생각했고, 더 떨어져 본들 마이너스 통장의 남은 잔고 외에 떨어질 것은 없었다.

첫 번째 숙소는 큰 냉장고 박스 위에 깔아 놓은 낡은 담요 한 장이었다. 그리고 약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당시의 연재기사는 나의 여행을 모두 담지 못하고 끝이 났지만, 지금 나의 일상은 여행처럼 계속 되고 있다. 

그때의 여행 중 캠핑카를 타고 핀란드를 거쳐 노르웨이로 지날 때 백야와 오로라를 함께 보는 환상적인 경험을 했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내 선택에 대한 벌을 받더라도 달게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불가능한 꿈을 또 하나 바랐다.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오고 싶다고. 누군가에게는 상투적인 효자 멘트로 들리겠지만, 지체장애로 휠체어를 타시는 나의 아버지에게 캠핑카 여행은 가장 최적화 된 여행 방법이었다.
 
 노르웨이에서 만난 오로라
 노르웨이에서 만난 오로라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10년이 채 되기 전에 나의 바람은 실현되었다. 삶은 나에게 벌을 주지 않았다. 실은 내 삶의 주인은 나이고, 내 운명은 내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벌 받을 일도 없고, 시작도 하기 전에 겁먹을 일도 없는 거였는데 그때는 몰랐다. 내가 이런 삶의 진리를 찾아 헤매며 벌을 받지 않아 안도하던 시간 동안, 내 동생은 진리보다 사랑을 찾았고, 복을 받았고, 결혼을 했고, 조카(예명 고래)가 태어났다. 

일주일 후 한국, 베트남, 독일에 흩어져 살던 우리 가족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다. 우리의 여행은 어른 5명과 5살 조카 고래와 아버지께서 자식보다 아끼시는 전동 휠체어까지 모두 캠핑카 한 대에 몸을 싣고 5주 동안 약 10,000km를 돌아 다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후 각자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나는 곧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공항에 도착한다.
 
지구 최북단 전망대 Nordkapp - 내가 여길 다시 올 수 있을까?
- 응, 10년도 안 걸려.
▲ 지구 최북단 전망대 Nordkapp - 내가 여길 다시 올 수 있을까? - 응, 10년도 안 걸려.
ⓒ 한성은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태그:#북유럽, #캠핑카, #가족여행, #세계일주, #부릉부릉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베트남 호치민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고 어른들과 그림을 읽으며 일상을 여행처럼 지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