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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풀더미 위에서 쉬는 청둥오리 장맛비로 쓰레기와 짚풀이 떠내려오자 그 위에서 쉬고 있는 청둥오리들.
▲ 짚풀더미 위에서 쉬는 청둥오리 장맛비로 쓰레기와 짚풀이 떠내려오자 그 위에서 쉬고 있는 청둥오리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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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바람이 엄청 부네!"

비가 오려는지 습한 기운과 함께 엄청난 바람이 텐트 안으로 불어닥쳤다. 타프(그늘막)를 더 단단하게 고정하고 주변을 살피며 바람길을 살폈다. 강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언덕을 치고 올라오면서 바람이 더 세게 들이닥치는 모양이다.

강물이 불어나면서 머물 곳이 없어지자 천막 근처에 오리가족들이 내려 앉아 쉬다가 가기도 한다. 오히려 강의 생명들은 강의 변화와 관계없이 한가하게 일상을 보내는 것 같다. 강바람을 즐기는 청둥오리들이 산책하는 모습이 오히려 여유있어 보인다.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즐기는 모습, 자연을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물이 차오른 천막농성장 지난 7일, 비가 제법 오고 바람이 불면서 천막농성장 바로 앞까지 물이 차올랐다.
▲ 물이 차오른 천막농성장 지난 7일, 비가 제법 오고 바람이 불면서 천막농성장 바로 앞까지 물이 차올랐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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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또 다시 불어올라 천막 앞까지 차올랐다. 지난 큰 비도 한 번 잘 넘어갔으니 이번에도 우리 천막은 꿋꿋할 것이다. 천막은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막을 걱정하는 수많은 마음들이 쏟아지는 비만큼이나 많이 내려앉아있다. 그래서 괜찮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 함께 살아야
 
멸종위기종 서식을 알리는 현수막 세종보 재가동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에게 죽음입니다
▲ 멸종위기종 서식을 알리는 현수막 세종보 재가동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에게 죽음입니다
ⓒ 문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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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얘네가 여기 살아요?"

둔치에 임시로 쳐 놓은 비상 천막 앞에서 그라운드 골프를 치시던 할머니 두 분이 멸종위기종 친구들을 새겨놓은 현수막을 유심히 쳐다보며 물었다. 흰수마자, 수염풍뎅이와 삵, 수달, 흰목물떼새, 미호종개의 사진과 함께 '이 곳에 살고 있는 멸종위기종 야생생물이다', '세종보 재가동은 멸종위기 야생생물에게 죽음입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다. 

여기 와서 직접 본 아이들이라고 답변을 했더니 자신들이 경험했던 옛날 금강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옛날에는 개울에 가면 가재도 있고 지금은 볼 수 없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그만큼 깨끗했는데 이게 70년 전의 이야기라고 호호 웃으신다. 아마 그 때 금강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야생동물들이 살았을 것이다. 

현수막에 새겨진 친구들도 과거가 아닌 지금의 삶이다. 금강에 기대어 오랫동안 함께한 야생동물들이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키고 보전해야 한다. 이 친구들이, 이 친구들이 사는 모습이 훗날 '옛날에만 존재했던' 생명체가 되게 해선 안된다. 작은 생명 하나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천막농성장을 차린 이유이기도 하다. 

수달 영상 전해준 첫마을 주민… 수문 닫으면 안된다
 
▲ 주민이 전해준 수달 영상 작년에 찍은 수달 영상이라며 전해주었다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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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중반의 한 남성이 농성장 옆 '첫마을아파트'에 산다고 말하면서 찾아왔다. 자신은 세종보 재가동을 반대한다고, 작년에 찍은 수달 영상이 있는데 주고 싶어 왔다고 했다. 12년 전에 서울에서 첫마을아파트 3단지로 이사왔다는 그는, 이사왔을 때는 세종보가 완공된 상태였단다. 수문 개방 전후의 금강을 바로 곁에서 목격한 증인인 셈이다. 그가 말한 소위 '죽은 강'의 모습은 이러했다.

"처음 이사왔을 때는 세종보 소수력발전소의 낙차소음 때문에 힘들었다. 민원도 많았다. 하지만 처음엔 물이 가득찬 것 이외에는 큰 환경 변화는 없어 보였다. 수질이 나빠진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2년 정도 흐른 뒤였다. 강에서 올라온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저기압 날씨에는 쾌쾌한 악취가 아파트를 감싸고 돌아 창문을 열 수 없을 정도였다.

날벌레가 창궐해서 온 전등마다 그득했고 주민들은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교통 소음 등의 이유로 첫마을아파트에 방음벽을 만들었는데, 낙차공 소음 민원이 줄어들지 않았다. 세종보 담수 초기, 물이 꽉 찼을 때는 둔치에서 줄낚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악취가 나고 날벌레가 창궐하면서 이들도 사라졌다."
 
흐르는 금강을 즐기는 수달 보가 개방되고 금강이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면서 수달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 흐르는 금강을 즐기는 수달 보가 개방되고 금강이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면서 수달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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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지만 수문을 열고 난 뒤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수문을 열고 2년 정도 지나니 날벌레가 사라지고 새가 찾아오고 수달이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이날 그는 수달이 물속에서 자맥질하면서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 담긴 3분짜리 동영상을 건네주면서 "서울에서 살았던지라 수달을 보니 신기한 마음에 자전거에서 내려서 촬영을 했다"면서 "자전거를 즐겨타는 데 냄새도 안 나고 벌레도 사라져 너무 좋았다, 고라니도 뛰어다니고 새들이 날아오는 하천이 너무 좋은데 또 수문을 닫는다고 해서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농성장에)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지난해 공주보 수문을 닫고 치른 백제문화제 이후 고마나루 모래사장이 펄로 변한 것도 보았고, 불티교 아래 청벽 앞, 펄이 쌓인 곳에서 모터보트를 타는 바보같은 사람들도 봤다"면서 "행정을 하는 사람들도 수문을 열면 강이 회복되는 걸 잘 알텐데, 왜 금강에 돈을 들여서 그런 모습을 만드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가 떠나고 난 뒤 바람 부는 둔치에 앉아서 거세게 흐르는 금강을 바라봤다.
 
어미박새와 아기박새 이소하려는 아기박새에게 먹이를 물어다주고 있다
▲ 어미박새와 아기박새 이소하려는 아기박새에게 먹이를 물어다주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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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박새가 이소하고 있네!"

다리 밑을 오가는 새들을 관찰하던 이경호 사무처장이 외쳤다. 이소(아기 새가 둥지를 떠나 독립하는 일)하는 박새 새끼 두 마리가 언저리에서 나는 연습을 하다가 교각 위에 앉았다. 새끼에게 주려고 먹이를 물고 어미새가 다가왔다. 안전한 교각 위에서 날기 연습을 했다. 교각구멍에 있던 박새가 새롭게 알을 낳은 것 같았는데 그 친구들이 알을 깨고 나온 모양이다.

70일이다. 이 시간동안 박새 친구들은 두 번이나 알을 낳고 아이들을 키워냈다. 금강에서 우리는 생명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모습을 매일 본다. 백과사전이나 인터넷 지식검색에 나오는 글과 음성과는 차원이 다른 '실재'하는 자연에 대한 경험이다. 자연의, 생명의 '살아있음'을 직접 목격하는 소중한 경험이다.
 
짚풀 위에 앉은 박새가족 물길에 휘돌아치는 짚풀 위에 앉은 엄마와 아기박새
▲ 짚풀 위에 앉은 박새가족 물길에 휘돌아치는 짚풀 위에 앉은 엄마와 아기박새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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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박새가 교각 아래 물속에서 부유하며 회전하는 짚풀에서 엄마박새를 기다렸다. 엄마박새가 먹이를 물어다 아기박새에게 주며 힘껏 날아보라 말하는 것 같다. 결국, 둘은 다시 힘차게 날아간다.  천막농성을 하지 않았다면 겪어볼 수 없었을 자연의 모습이다. 세종보 수문이 닫힌 기간에 죽은 강에서 볼 수 없는 산 강의 오늘, 고맙다.

태그:#금강, #세종보, #수달, #박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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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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