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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시끄럽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이충상, 김용원 상임위원이 인권단체와 언론들을 상대로 막말을 일삼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인권위 전현직 직원들이 두 상임위원에 대해 보고 들은 내용을 익명으로 보내와 몇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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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6개월 걸리는 진정사건들이 허다한데, 몇 달 (소위가) 열리지 않는다고 진정인들의 권리가 침해된다고 할 수 없다. 소위가 열리지 않는 것은 송두환 위원장이 (본인이 요구한) 인사 조치를 하지 않기 때문." - 2023년 11월 2일자 <인권위 소위 석달째 '개점휴업'…김용원 상임위원, 공수처 고발돼> 보도 중 김용원 상임인권위원의 발언

'상임위원회에 출석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에요.' 지난 4일 있었던 상임위원회에서 김용원 위원이 한 말이다. 회의에 출석해서 해야 할 일을 하셔야 한다는 남규선 상임위원의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김용원, 이충상 위원과 6명의 인권위원들이 전원위원회를 보이콧한다며 출석하지 않겠다고 한 것에 이어, 이충상 위원은 계속적으로 상임위원회에 불출석하고 있고 김용원 위원은 출석해서 자신의 모두 발언이 사무처의 안건보다 중요하다는 취지로 안건상정조차 못하게 발언하며 논쟁을 하던 중에 나온 말이다. 도대체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각각 다른 사연의 진정인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

인권위에는 연간 약 1만건 정도의 사건이 접수된다. 인권위의 주요업무는 인권침해를 당한 개인을 구제하는 조사업무, 인권침해적인 법과제도 등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업무 그리고 인권교육업무와 국내외 인권관련 시민사회협력업무로 나눌 수 있다.

조사업무는 접수된 사건의 성격에 따라 100여명의 조사관들이 배치되어 있는 여러 부서에서 조사를 하고 조사결과에 근거하여 6개의 소위원회에서 처리된다. 상임위원들은 각각 2개 소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비상임 위원들도 소위원회에 배치된다.

사건 중에는 윤일병사건과 같이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달라는 것부터 사장의 성추행을 참다 못해 찾아온 사건, 경찰관이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 손목에 상처가 나고 모욕감을 느꼈다는 사건, 심지어는 국정원이 자신의 머리에 칩을 심어 24시간 감시하고 있다는 사건까지 온갖 종류가 있다. 사건의 내용은 다 다르지만 진정인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자신의 억울함을 신속하게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부 조사관들은 잠잘 때 자신이 조사하는 사건에 관한 꿈까지 꾸는 경우도 있다.

인권위법은 원칙적으로 90일 안에 사건조사를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린 후에야 처리되는 사건도 많다. 심지어 사건처리에 1년을 넘기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이렇게 사건처리가 지연될 때 담당조사관들은 진정인들의 전화를 잘 받지 못한다. 전화통화를 할 때 죄인과 다를 바 없이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지연의 이유는 사건이 어렵거나 조사할 게 많거나 피진정인이 조사에 협조를 하지 않거나 등등 다양하다. 그렇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조사가 지연되면 사건담당 조사관은 죄인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거친 사건이 소위원장에 의해 '안건, 몇 달 늦어지는 게 뭐, 대수인가요?'같은 취급을 당한다면, 어떻겠는가. 자신의 사건(진정인의 모든 사건은 진정인에게 억울한 일이며, 다시는 벌어지지 않아야 할 일들이다. 빨리 처리되었으면 하는 사건들이기도 하다)에 대해 인권위원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사건을 조사한 조사관의 입장에서는 어떻겠는가?

진정인 입장 경청은 인권위원의 의무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오른쪽은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오른쪽은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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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원 위원이 최근 국회에서 한 막말과 망발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만 이 사람의 선을 넘는 행위는 2023년 2월에 상임위원으로 부임하고 나서 셀 수 없이 많이 반복되고 있다. 부임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지난해 9월에는 자신이 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침해구제1소위원회에서 '수요집회에서의 경찰의 인권 보호 조치 미흡'을 주장하는 정의기억연대의 진정을 2명의 의견만으로 기각했다. 인권위법 규정에는 3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기각을 결정할 수 있다고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후 김 위원은 해당 소위에 관여하는 국장과 과장이 진정사건 기각 결정 통지와 관련해 자신의 지시를 듣지 않았고, 자신의 의견과 다른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인권위원장에게 이들을 교체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위원장이 김용원 위원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그는 급기야 자신이 맡고 있는 소위원회 회의 개최를 무기한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소위원회 회의는 보통 3주에 한 번 씩 열리고 한 번 회의에서 보통 50~100여건 남짓한 사건들을 심의·처리한다. 김용원 위원의 회의 개최 거부로 사건처리가 2개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수백 건의 미처리사건들이 쌓여가자, 인권위 내외부에서 그의 행태에 대한 비난이 커져갔다. 진정 당사자이기도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김용원 위원을 직무유기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자신에 대한 이러한 비난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안건?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에요?'라고 반박했다.

모든 사건은 진정인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애환들을 가지고 있다. 군대 간 자식이 갑자기 사망해 가슴에 대못이 박힌 부모도 있고, 공무원들로부터 당한 무시가 너무 억울하여 작은 카트에 관련 자료를 실은 채 지방에서 인권위까지 2박 3일을 노숙하며 걸어서 올라온 정신질환자도 있다. 물론 간혹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건들도 있지만, 인권위원이라면 진정인의 입장을 경청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곳 저곳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찾아온 사람들이 많은 인권위의 특성을 감안하면 진정인의 말을 경청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찾아보려는 태도가 우선이어야 한다. 특히 국민이 위임한 차관급의 권한으로 업무를 처리하며 국민이 낸 세금으로 기사 딸린 차량을 제공받고 월급을 받는 상임위원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약자의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고 오로지 기득권자, 강자의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수백 명의 억울함의 무게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 오갈 데 없어 마지막으로 인권위를 찾아온 사람들의 호소를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 활용하는 사람, 반성도 사과도 할 줄 모르고 자신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 이런 사람은 인권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시라도 빨리 인권위를 떠나야 하는 사람이다.

태그:#인권위원회, #김용원,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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