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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 측은 '최저임금의 구분적용 시행'을 요구하고 있고 근로자위원 측은 '최저임금의 적용대상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 최저임금 "구분 적용"과"차별 반대" 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 측은 '최저임금의 구분적용 시행'을 요구하고 있고 근로자위원 측은 '최저임금의 적용대상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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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에는 "1주"를 정의한 법조항이 있다. "1주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 하지만 2018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없었던 조문이다. 그동안은 1주란 단어를 굳이 해석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돼 있듯, 일주일은 "칠 일"이니까. 그런데 이 사실이 왜 근로기준법에 법조항으로 추가됐을까? 1주를 5일로 보는 해석이 근로기준법에서만큼은 주류적 관점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각은 노동자가 보통 한 주에 일하는 기간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야말로 '노동의 관점'에서 1주가 새롭게 재해석된 것이다.

주 52시간제가 시작된 건 2018년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 단 1주를 5일로 해석하는 관행의 결과, '1주 52시간제'는 '5일 52시간제'였을 뿐이다. 이런 해석은 주 5일제에 따라 휴일로 간주되는 이틀간에도 하루 8시간씩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근거로 악용됐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고 있었음에도, 실제로 노동자들은 주 68시간을 일해야 했던 것이다. 사전적 의미는 물론 사회적 통념과도 어긋나는 1주는 5일이란 억지 해석의 통용은 결국 사용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노동법에서 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1주는 7일이다'라는 명제가 근로기준법에 정의된 후에야 비로소 한 주에 최대로 일할 수 있는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줄어들게 된 노동자들은 현재 더 나아진 삶을 살고 있을까? 분명한 건 본업을 가진 노동자들이 부업까지 뛰는, 이른바 N잡러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부업을 한 노동자는 월 평균 57만여 명이었다고 한다. 보수·경제지들은 이러한 현상을 '주 52시간제의 역설'로 규정하고 있다.

이 역설은 '국가가 일률적으로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건 노동자에게서 더 일할 자유를 빼앗아간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특히 보수 계열 정당의 정치인들이 이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자주 거론해왔다. "노동자들은 충분히 쉴 권리도 요구하지만, 원하는 만큼 일할 자유도 요구한다."(2021년 당시 하태경 국민의힘 국회의원) "주 52시간의 무리한 적용은 일할 기회마저 뺏었습니다."(2019년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2021년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이런 흐름은 끝내 윤석열 정부에서 주 최대 69시간 노동 논란을 야기한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의 발표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은 정말 더 일하고 싶을까? 본래 근로시간과 임금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한다.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임금은 철저하게 몇 시간을 일했는지에 따라 계산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노동자를 '시간 노동자'로도 정의할 수 있는 이유다. 기본적으로 최저임금이 1시간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현실만 봐도 저임금 노동자에게 근로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 가능하다.

결국 노동자가 주 52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부업을 하려는 이유는 본업으로 버는 시간당 임금이 적은 탓이 크다. 이때 저임금 노동자가 생계유지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해서든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뿐이다.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과연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일 수 있을까? 주 52시간제는 최소한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생계유지에 적합한 수준일 때 N잡러를 양산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막을 수 있다.

기업은 노동자의 임금 책정 시에 노동생산성이나 업무난이도를 중요 척도로 본다. 문제는 이 잣대가 법정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도 주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이다. 일이 쉽거나 숙련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업종만큼은 최저임금을 다른 업종들보다 더 적게 줘야 한다는 요구가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서 사용자위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왔다. 올해 거론된 그 대상은 택시운송업, 체인화 편의점업, 한식·외국식·기타 간이 음식점업 등이었다.

하지만 최저임금만큼은 노동생산성이나 업무난이도를 기준으로 결정돼선 안 된다. 최저의 의미가 단지 저숙련 노동의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애당초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목적과 배경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것에 있었다. 현재 모든 업종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으로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어려운데도, 사용자단체들은 최저의 의미를 업무의 난이도나 노동생산성으로 재해석하려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업무난이도가 높거나 숙련이 필요한 3D(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노동에도 최저임금이 지급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최저임금을 차별하는 척도는 업종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민간시장에서는 최저임금법에 따른 동일임금을 주는 경우 고용주는 노인보다 젊은 층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동일 임금 체계 속에서는 노인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실정"(국민의힘 소속 윤기섭 서울시의원이 대표발의한 '노인 일자리 활성화를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 촉구 건의안')이라며 연령에 따라,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 참여가 유력한 필리핀은 1인당 GDP가 3500달러로 우리의 10분의 1 정도입니다. 이분들에게 월급 100만원은 자국에서 받을 수 있는 임금의 몇 배 수준"(오세훈 서울시장)이라며 국적에 따라, "만약 강원특별자치도(아래 강원도)에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제를 도입할 경우, 지역별 경제 상황에 맞춘 최적의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다. 즉, 다른 지역 대비 낮은 최저임금 설정을 통해 기업들이 강원도 내로 이동할 유인이 발생하고, 이는 지역 내 인구 유입과 지역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강원연구원)며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을 달리 책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중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으로 간주되고, 그마저도 더 적게 주기 위해 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세상이 지속되는 한, 주 52시간제의 역설은 끊임없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 임금 때문에 노동자가 저녁은커녕 주말 있는 삶조차 포기하고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누락한 채 말이다.

태그:#주52시간제, #최저임금, #노동시간, #임금,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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