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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기를 수리하고 있는 김덕성 대표. 힘에 부쳐 지금은 주로 소형농기계 수리를 하고 있다.
 예초기를 수리하고 있는 김덕성 대표. 힘에 부쳐 지금은 주로 소형농기계 수리를 하고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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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가 절묘하다. 충남 예산군 삽교읍·덕산면·봉산면 접경지역에 정확히 자리하고 있는데다 가장 가까운 고덕면 경계 지점까지 3㎞. 이렇듯 '제일농기구센터' 김덕성(67) 대표는 4개 읍면이 교차하는 곳에 터 잡고, 농기계 고장으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농민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터줏대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차량으로 덕산읍내에서 고덕 방향으로 진행하려면 반드시 덕산회전교차로를 통과해야 한다. 이 교차로를 돌아 다시 덕산시장으로 향하는 초입에 연이어 붙어 있는 오래된 정미소와 옛 삽교농협창고를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이곳이 '제일농기구센터'다.

김 대표에 따르면 지난 1985년, 그의 나이 27세 때 현재 센터가 위치한 곳 길 건너편 조그마한 건물을 임대해 개업한 뒤 40년 동안 줄곧 농기구 수리 외길을 걷고 있다. 개업 11년째 되던 해 마침 매물로 나온 정미소·삽교농협창고 건물과 부지를 매입해 농기구 수리점으로 바꾼 뒤 이 자리에서 29년째 운영하고 있다.

매입 당시 가격을 1억원으로 기억하는 현재 센터 건물에 대해 "정미소는 70~80년 정도 된 것 같고, 농협창고는 그보다도 더 오래된 것 같다"며 "비록 건물은 낡았지만, 농기계 수리를 위해 찾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더없이 좋은 곳이다"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김덕성 대표는 29년전 어림잡아 7~80년쯤 돼 보이는 정미소와 옛 삽교농협 창고를 매입해 농기구 수리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김덕성 대표는 29년전 어림잡아 7~80년쯤 돼 보이는 정미소와 옛 삽교농협 창고를 매입해 농기구 수리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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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정미소·농협창고가 품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건물 내외부에 현대적인 편리함을 가미해 독특한 형태미를 갖춘 카페로 재탄생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봤기 때문인지 몰라도 "가끔 주변에서 카페로 리모델링하면 정말 멋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센터 여기저기를 소개하는 김 대표를 뒤쫓아 가던 중 시야에 포착된 농협창고 외벽 커다란 손글씨는 과거와 현재가 조우하는 역사적인 건물로 가치를 드러내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검정색 페인트로 벽면에 적힌 '삽교농협창고', '협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판매하자', '상하리 2구 새마을 창고' 등 문구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에겐 '새마을 운동'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그 이후 세대라면 어쩌다 텔레비전 뉴스에 등장하는 북녘 땅 평양 시내의 글씨체로 착각할 수도 있다.
 
"다른 데서 못 고친 기계 살릴 때 큰 보람"

 
농기구 수리점이 된 건물 외벽에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농기구 수리점이 된 건물 외벽에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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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시간여행을 하듯 한동안 건물 구경 삼매경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일순간 이곳을 방문한 목적이 농기계 수리점임을 깨달았다.

김 대표에게 근황을 묻자 "이제 나이도 들고 해서 트랙터 같은 대형 농기계를 고치는 일은 힘에 부쳐 그만둔 지 오래됐다. 지금은 예초기, 분무기, 살포기 같은 소형 농기계 위주로 수리한다"며 "큰 돈벌이는 안되지만 소일 거리한다는 생각으로 그럭저럭 운영하고 있다"는 정 많은 이웃집 아저씨의 굵고 정제된 음성이 귓전에 닿는다.

삽교 창정리가 고향인 그는 아버지 김수정(68세 작고)씨와 어머니 김순금(80대 작고)씨 사이에 4남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맏형 김향용씨는 부모님 곁으로 떠났고, 현재 둘째 김칠용, 셋째 김삼용 형과 함께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고, 막내 여동생은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다고.

김 대표는 덕산초·중을 졸업한 뒤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뛰어들며 잡은 것은 목공 도구였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옛말처럼 대구 대명동에서 목수일을 하고 있는 고향 친구(신현승)와 함께 찬장 짜는 일을 했다. 

군입대 준비로 신체검사를 하기 위해 귀향하면서 농기계 수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고덕농기계 박상묵 사장과 인연이 돼 농기계 수리기술을 배웠다. 이어 삽교 기아농기계에서 몇 년 더 직원으로 근무한 뒤 27세 나이에 독립해 '제일농기구센터'를 개업하고 사장이 됐다. 

부전자전일까. 1녀 1남을 둔 김 대표는 아들 김기동(27)씨에 대해 "지난해 나보다 1살 적은 나이에 내포신도시 모아엘가 아파트 인근 '내포마트' 정육점 코너 사장이 됐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나랑 닮은 것 같다"고 아들 자랑을 했다.

그는 "예전엔 농기계를 수리한다는 건 곧 경운기나 이앙기를 고치는 것을 의미했다. 거기에 더해 경운기에 장착하는 적재함(트레일러)을 수리·용접하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예초기, 분무기, 농약 살포기 등 주로 소형 농기계 수리를 요구하는 고객들이 대세를 이룬다"고 수리 대상 장비의 변천사를 들려준다.

"하던 일 미루지 말고, 오늘 하루 열심히 사는 것", "농민이 원할 때 고쳐주는 것"이 김 대표의 좌우명이자 경영철학이다.
 
???????제일농기구센터에서 가장 오래된 장비인 선반. 나이로 치면 족히 쉰 살은 넘었다고 한다.
 ???????제일농기구센터에서 가장 오래된 장비인 선반. 나이로 치면 족히 쉰 살은 넘었다고 한다.
ⓒ <무한정보>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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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대 젊고 혈기왕성한 시절, 트랙터 같은 대형 농기계 수리도 혼자서 거뜬히 해낸 김 대표였지만, 그도 세월의 무게를 마냥 이길 순 없었다. 일의 특성상 장시간 쪼그려 앉아 일하면서 무릎과 허리에 탈이 났기 때문이다. 현재 주로 다루는 자잘한 농기계는 큰 돈벌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특히 주말마다 밀려드는 예초기 수리 요청을 마다하지 않는다.

김 대표를 잘 아는 지인은 "다른 농기계 수리점에서 고치지 못한 농기계들도 김 대표가 손보면 신기하게 생명을 얻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볼트 하나 부러져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 어쩌다 수리점 주인을 잘못 만나면 거절당하기도 하는데, 못 고쳐서가 아니라 들인 품과 시간만큼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그런 손님을 외면하지 못하는 성격이다"라고 소개한다.

또 일이든 인간관계든 조금만 어렵고 힘들어도 회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는 40년 세월 한결같은 마음과 자세로 일의 경중·대소 구분없이 농민의 수리 요구에 언제나 성심성의를 다 한단다. 그 역시 10마지기 땅에 벼농사를 짓는 농사꾼으로서 농기계가 고장났을 때 누구보다 농민의 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 끝나고 친구들과 소주 한 잔 하는 게 유일한 낙"이라며 소박한 일상을 전하면서도 "다른 데서 못 고친 것을 고칠 때 가장 보람이 있고, 죽은 기계를 살릴 때 기분이 좋다"는 말과 함께 살짝 입가를 올려 웃는 그. 그런 그를 보니 천상 '장인'이 따로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농기계수리, #농기구수리,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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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참소리 <무한정보신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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