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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는 스포츠 현상을 비평하고, 대안 담론을 생산하는 모임입니다. 토론 불모지의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 다양한 가치와 합리적 비판이 경쟁하는 공론장 구실을 지향합니다.[기자말]
파리의 에펠탑이 내려다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에 올림픽 성화가 설치돼 있다.
 파리의 에펠탑이 내려다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에 올림픽 성화가 설치돼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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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24 파리올림픽 출전 남녀 선수의 비율은 정확하게 50대 50이다. 이는 국제올림픽위원회 등 스포츠 국제기구의 적극적인 남녀 평등 정책의 지속적인 확장을 반영한다. 미디어의 올림픽 보도와 관련해, 젠더 이슈가 중요해진 것은 여성 인권이나 지위에 대한 사회 의식의 변화와 보조를 맞춘 결과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가부장적 문화의 영향 속에서 형성된 성차별적 미디어 보도 양태는 여전히 드러나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2021 도쿄올림픽 보도 매체 500여 개를 대상으로 언어 분석을 한 결과를 보면, 남자 선수에 대한 수식어(호쾌, 완벽, 강렬, 뜨겁다, 예리)와 여자 선수에 대한 수식어(약하다, 무겁다, 갖고 싶다)는 차이가 있었다. 또 여자 선수에 대한 묘사에는 미소나 눈물 등 외모와 관련한 것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 가운데 여성은 꽤 많지만 미디어 보도에는 남성 중심주의적 언어 관습이 많이 작동하고 있다. 아이를 둔 여자 선수가 이겼을 경우 등장하는 '엄마는 강하다'는 표현에서 여자는 집에서 육아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은 아닌가. 선수의 수준 높은 연기에 '아름답다'라고 표현한 것에 차별적 시선이 있는가. 이런 문제들은 문맥이나 상황, 종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남성 중심적 세계관에 의해서 굳어진 관용적 표현이 미디어 언어의 기본 설정값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올림픽에서 거둔 성과를 대중 스포츠 확산으로 연결하거나, 스포츠 과학을 동원한 깊이 있는 보도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토론 참가자]  탁민혁 영국 러퍼브러대 교수, 장익영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오태규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전 한겨레신문 스포츠부장),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박슬기 한체대 박사과정 학생, 사회 김창금 한겨레신문 기자.  
일시: 6월 24일 줌 토론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에 붙는 다른 형용사

사회자: 이번 토론의 주제는 '2024 파리올림픽에 대한 미디어 보도의 방향'으로 잡았다. 미디어가 주요한 이슈를 선택해 보도하고, 강력한 전파력으로 대중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올림픽을 보도하는 미디어의 보도 경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아사히 신문 보도를 보면, 도쿄올림픽에서 남자 선수에게 호쾌, 완벽, 강렬, 뜨겁다, 예리하다 등의 단어가 쓰인 반면, 여자 선수에게는 약하다, 무겁다, 갖고 싶다 등의 표현이 기사에 많이 등장했다.

오태규 연구원: 아사히 신문이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 직후(8월 6일치 신문) 야후 재팬에 나온 500여 매체의 올림픽 관련 기사를 대상으로 언어 분석을 한 결과를 보면, 확실히 일본 미디어에서도 남녀에 따라 선택되는 용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쾌, 완벽, 강렬, 뜨겁다, 예리하다 등의 단어는 여자 선수보다 남자 선수에 많이 쓰였다. 반대로 약하다, 무겁다, 갖고 싶다 등의 표현은 남자보다는 여자 선수 관련 기사에 많이 등장했다. 여자 선수에 대한 묘사에는 미소나 눈물 등 외모와 관련한 것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신문이 2021년 개최된 도쿄올림픽 미디어 보도 언어를 분석한 결과(대회 기간 야후 재팬의 500개 매체 대상)
 아사히신문이 2021년 개최된 도쿄올림픽 미디어 보도 언어를 분석한 결과(대회 기간 야후 재팬의 500개 매체 대상)
ⓒ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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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영 교수: 스포츠 사회학계에서도 가장 이슈가 되는 게 올림픽 출전 선수의 성비가 50대 50인데, 여전히 기사 보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문제다. IOC도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로 담론을 만들어내는 미디어가 일본의 사례처럼, 남성은 성취를 강조하고 여성은 어머니나 모성애를 강조하는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여성성을 드러내는 일이 반복되면, 남녀 기사의 양적 비율이 비슷해져도 그 논조나 뉘앙스에서 독자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2021년 8월 6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한국과 브라질의 준결승전. 한국의 김연경이 3세트 실점하자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2021년 8월 6일 일본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한국과 브라질의 준결승전. 한국의 김연경이 3세트 실점하자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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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그것이 반복되면 사람들의 인식 속에 남성적인 것, 여성적인 것이 자연화된 형태로 굳어질 것을 말씀하는 것 같다. 

오태규: 올림픽 순위나 메달 중심 보도에 대한 비판은 그동안 많이 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젠더 이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세계적으로도 젠더, 평등성 이런 얘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한국의 미디어가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봐야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가장 상업화돼 있고, 이를 포장하는 방식으로 젠더, 인테그리티, 도핑 문제를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IOC를 욕할 수 없다. 오히려 미디어가 젠더 이슈 등을 제기하고 선도해서 IOC를 더 견인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사회자: 먼저 자기 고백을 한다면, 저도 젠더 이슈 등에 많은 관심을 쏟지 못했다. 젠더 이슈가 올림픽 보도 미디어가 주요하게 다뤄야 한다면, 그 정당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쿠베르탱 남작은 마초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은 초기 올림픽에 참여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도 역사적으로 보면 스포츠라는 게 체력과 국력 등 힘이나 남성성과 연결됐다.

장익영: 스포츠라는 것 자체가 원래 남성 중심이다. 쿠베르탱 남작이 주창한 올림픽의 첫 대회에는 여성이 참가를 못 했다. 쿠베르탱 남작을 마초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역사적으로 보면 스포츠라는 게 '체력은 국력' 등의 용어에서 보듯 전투적인 의미나 남성성과 연결됐다. 여성들은 스포츠에서 소외당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스포츠 무대에서 메달 따는 여성의 비율이 높은데, 남성의 헤게모니가 스포츠에서도 관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세훈: 젠더 이슈의 중요성을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올림픽이 남녀 동수 참가로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그대로 말을 한다.

오태규: 스포츠는 해당 사회와 세계적인 흐름과 동떨어질 수 없다. 지금 세계적인 흐름은 남녀의 동등성 쪽으로 가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여성이 중요하다.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서 여성의 노동력이 활용되지 않는다면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을 것이다. 시대적인 환경과 흐름이 남녀 평등으로 가고 있다.
 
어떤 공간에서도 특정 성별을 당연하게 전제하지 않고 진술하겠다는 선제적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관점은 매우 은은해서 티도 안 나는 것 같지만,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그런 접근이 천천히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탁민혁 교수: 저는 스포츠 대중화 측면에서도 성별에 대한 미디어의 접근, 그에 따른 재현 방식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도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관행과 지침들이 속히 정착돼 나가야 하겠지만, 어떤 게 옳고 그른지에 대한 강박을 갖는 방어적 태도보다는, 어떤 공간에서도 특정 성별을 당연하게 전제하지 않고 진술하겠다는 선제적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관점은 매우 은은해서 티도 안 나는 것 같지만,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그런 접근이 천천히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사회자: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다시 말해 낯설게 보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씀 같은데,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

탁민혁: 물론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균등한 재현 또는 도전적 재현을 당연하게 시도하는 것이다. 영국에 있으면서 2021 도쿄 하계 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중계를 경험했는데, 어느 방송사에서나 두드러지는 점은 중계진의 성별·인종별 균등한 대표성이다. 여성은 거의 모든 경우 동수이거나 다수 또는 보다 핵심적 역할을 맡음으로써 스포츠 공간의 중심부를 차지한다. 여성의 참여를 활성화하려면 당연하게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이건 비단 스포츠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대학의 강의 슬라이드에도 남성지배적인 분야(과학, 스포츠)를 보여줄 때는 여성을 균등 재현할 것이 장려된다. '어떤 곳도 당연하게 남성들의 공간'으로 전제하지 않는 재현,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임을 전제하는 태도. 어쩌면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에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비단 스포츠에서만이 아니다. 대학의 강의 슬라이드에도 남성지배적인 분야(과학, 스포츠)를 보여줄 때에는 여성을 균등 재현할 것이 장려된다. '어떤 곳도 당연하게 남성들의 공간'으로 전제하지 않는 재현,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임을 전제하는 태도. 스포츠저널리즘연구회에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사회자: 탁 교수님의 질책이 따끔하다. 명심해야 할 것 같다. 마침 오늘 토론회에는 한체대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는 박슬기 선생을 초청했다. 여자 펜싱 선수 출신인데, 아무래도 선수 시절 경험에서 이런 부분을 남다르게 느꼈을 것 같다.
 
'엄마 검객' '엄마는 강하다'라는 식인데, 이렇게 선수의 정체성을 하나의 단어로 획일화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라는 이미지가 굉장히 도전적이고 강하게도 보이지만 사실 선수의 정체성을 특정하게 규정하는 효과도 있다.

박슬기: 펜싱 메달리스트인 남현희 선수는 과거 실력이 뛰어났음에도 엄마라는 타이틀로 많이 주목을 받았다. '엄마 검객'  '엄마는 강하다'라는 식인데, 이렇게 선수의 정체성을 하나의 단어로 획일화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라는 이미지가 굉장히 도전적이고 강하게도 보이지만 사실 선수의 정체성을 특정하게 규정하는 효과도 있다.

저도 현역 선수로 뛸 때, 지도자가 흰색 티나 레깅스를 입지 못하게 했다. 운동 효율을 위해 입는 것인데도, 속옷이 비치니까 그랬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젠더 이슈에 대한 감수성은 민감하지 않았다. 같은 팀에서 리더를 맡는 쪽은 남성이었고, 제가 주장을 할 때도 남자 선수한테 의존하도록 책임이 분산되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4년 7월 <‘엄마 검객’ 남현희, 아시아 펜싱 금메달> 제하 기사
 2014년 7월 <‘엄마 검객’ 남현희, 아시아 펜싱 금메달> 제하 기사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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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미디어의 반성 시간인 것 같다. 기자들은 시간이 없으니까, '엄마 검객'이라는 말을 큰 문제의식 없다고 생각하고 쓴다. 운동부 내부의 남자 중심 문화에 대한 지적도 여전히 진행중인 것 같다. 

오태규: 아사히 신문이 2021 도쿄올림픽 기사들을 분석한 배경에는 올림픽조직위 젠더 평등 추진팀의 어드바이저가 일본의 미디어 보도에서 여성 선수에 대해 편견이 많다는 얘기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아사히 신문이 실제 분석해 보니  '좋다, 훌륭하다, 강하다'라는 표현은 남녀 공통으로 사용이 됐지만 차이가 났다. 호쾌하다라는 단어는 남자 선수 기사에서 120회 정도가 쓰였는데 여성(21회)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여성 선수들 기사에서 웃는 얼굴이나 눈물 등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단어가 많이 나오고, '엄마 선수' 같은 표현도 있었다고 한다. 과거 올림픽에서 지상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여성 선수 3명을 불러놓고 좋아하는 남성 타입이나, 일본 선수단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는 누구냐라는 질문도 나왔다고 한다. 우리도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장익영: 세계 스포츠 사회학자들이 모여서 책을 냈다. 도쿄를 포함해 역대 올림픽에서 젠더 이슈들에 대해 학자들이 꽤 많이 다루고 있다. 장애나 여성, 인종 등에서의 연구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말씀해 주신 내용에 대한 미디어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박슬기 선생) 예를 들어 배구 감독 남녀 보도 차이에서 여성 감독이 발을 동동 구른다라는 표현이 있었다.
피겨 스케이팅을 남자가 하면 힘차고 박진감 있는 것이고, 여자가 하면 아름답고 부드러운 것이다. 이것을 두고 여자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종목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김세훈:  젠더에 대해서 최근 몇 년 동안 관심을 갖고 있는데, 차별이냐 구분이냐를 확실히 해야 한다. 운다거나 '동동 구른다'라는 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아름답다, 예쁘다가 나쁜 게 아니다. 피겨 스케이팅을 남자가 하면 힘차고 박진감 있는 것이고, 여자가 하면 아름답고 부드러운 것이다. 이것을 두고 여자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종목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골프에서 완벽한 샷이 나오면 그것을 남녀 가려서 쓰지 않는다.

여자 축구 선수들의 슈팅이 남자보다 강하지 않지만, 강력한 슈팅이라고 쓸 수 있고, 반면 남자 배구 선수들의 플레이를 묘사하면서 아기자기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 배구를 아기자기하고 하다고 했을 때, 이것이 열등한 것인가. 

오태규: 통계나 언어 분석이 어떤 단어를 남녀 똑같이 동등하게 사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단어 선택이나 표현에서 젠더 이슈를 의식하면서 쓰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다르다. 관습에 젖어 생각 없이 쓰기보다는 고민하면서 표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게 표현하면 엄마의 구실도 하면서 운동선수의 역할도 하게 되는 것인데, 자칫 자식에 대한 헌신을 마치 엄마만 해야 하는 것처럼, 남자는 가사에서 벗어나 보이게 할 수 있어 미디어가 좀더 표현에 신중해야 한다.

장익영: 엄마 선수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여서, 그렇게 표현하면 엄마의 역할도 하면서 운동선수의 역할도 하게 되는 것인데, 자칫 자식에 대한 헌신을 마치 엄마만 해야 하는 것처럼, 남자는 가사에서 벗어나게 보이게 할 수 있어 미디어가 좀더 표현에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애인 선수의 경우 성공하면, 미디어가 슈퍼맨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걸 당사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사회자: 저도 남자축구대표팀의 경우 남자를 빼고 축구대표팀으로 써왔는데, 남자축구대표팀이 기본 설정값이어서, 축구대표팀(남)과 여자축구대표팀으로 쓰는 게 경제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종목별로 다 구분을 해줘야 할지는 고민스럽다.

김세훈: 남자의 경우 남자축구대표팀, 여자의 경우 여자축구대표팀으로 구분하는 게 바르다고 본다. 또 친정으로 돌아간다거나, 처녀 출전한다는 표현 등은 안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장익영: 고등학교를 남고, 여고라고 하는데, 사실 그냥 고등학교다. 스포츠에서도 종목단체의 이름에 남자가 기본 설정값이 많은데, 미디어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그런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여성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관행이라고 말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있다. '뭐가 문제야'라는 식으로는 바꿀 수가 없다.

오태규: 사회부에서 기사 쓸 때 남녀 구분이 없이 '그'라고 표현한다면, 성별이 중요한 기사일 때 독자는 답답할 수 있다. 그런데 이해하는 데 아무 관계가 없다면, 반드시 성별을 구별해서 쓰는 것이 관행인 것은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여성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관행이라고 말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있다. '뭐가 문제야'라는 식으로는 바꿀 수가 없다.

선수들의 성취를 일반시민의 스포츠 참여로

사회자: 미디어와 언어 문제는 이 정도로 정리하고, 메가 스포츠인 올림픽을 보도하면서, 그 보도가 스포츠 대중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살펴봤으면 좋겠다. 영국에 계신 탁민혁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

탁민혁: 젠더 이슈를 넘어서도 BBC는 국영방송으로서 스포츠 대중화와 관련해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의 메달 성과를 축하하고 그걸 국가적 성취로 기념하는 건 한국이나 영국이나 마찬가지지만, 중계나 뉴스 보도는 선수들의 '성취'를 일반 시민의 스포츠 '참여'로 이어가려는 노력을 다각도록 보여준다. 'Inspire a generation'이라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슬로건을 유산으로 이어가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도 인터뷰에서 메달의 의미를 그렇게 설명하려고 하고, 해설가들도 해당 종목의 참여 제약 요인들을 설명하려는 노력들이 곳곳에 보인다. BBC 홈페이지에는 집근처에서 해당 종목을 접할 수 있는 클럽이나 시설을 검색할 수 있는 페이지가 홍보된다.
 
영국의 중계나 뉴스보도는 선수들의 '성취'를 일반시민의 스포츠 '참여'로 이어가려는 노력을 다각도록 보여준다. 'Inspire a generation'이라는 2012년 런던올림픽의 슬로건도 그렇고, 선수들도 인터뷰에서 메달의 의미를 그렇게 설명한다.
 
올림픽 성화가 런던의 전통적인 무개 이층버스를 타고 웨스트민스터 구역을 지나고 있다.
 올림픽 성화가 런던의 전통적인 무개 이층버스를 타고 웨스트민스터 구역을 지나고 있다.
ⓒ 런던올림픽조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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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겨울 올림픽 보도에서는 여름 올림픽 보도 경향과 조금 다른 면을 봤다고 했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요?

탁민혁: 영국이 약세를 보이는 겨울 올림픽 중계에서는 자국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하는 콘텐츠가 줄어드는 대신 종목에 작용하는 스포츠 과학의 원리를 선수 출신 해설가들이 설명하는 섹션이 증가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영문 정보에 대한 접근의 차이 때문인지 한국 미디어의 한국 중심 중계 관행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BBC 중계를 통해 볼 때 출전하는 팀, 선수에 대해 한국 중계보다 훨씬 광범한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선수 출신 해설가, 논평가의 활약은 해당 종목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은퇴 선수들이 유능한 해설·논평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훈련을 제공하는 것 또한 미디어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오태규: 최근 일본의 선수가 세계 육상 100m 동메달을 땄는데, 그 선수의 주법에 대한 특집이 언론에 크게 나왔다. 서양인 주법으로 하면 도저히 불가능한데, 발을 낮게 들고 피치를 많이 해 극복했다는 식이다. 수영 등에서도 세계 기록이 나오면, 스포츠 과학적 분석을 통해 접근하는 기사가 나온다. 한국의 양궁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 선수들의 특이한 점은 심장의 박동수가 변하지 않고 떨림이 일정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제 과거와 달리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선수들을 찾아, 그것을 개인의 정신력 차원에서만 얘기하지 말고, 과학적인 측면에서 조명하는 기사가 나왔으면 좋겠다.

사회자: 예전에 올림픽 선수를 소개하거나, 성과를 전달할 때 스포츠 과학적인 측면에서 풍부한 이야기를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꼭 과학적 접근이 아니더라도 선수들이 현장에서 활용하는 암묵지 등도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
 
펜싱 선수들이 경기 중 칼을 잡아서 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다음 공격에 유리하기 위해서인데, 휘면 각도가 더 깊어지기 때문에 찍는 것을 잘하는 선수가 선호가 가고, 펴면 길어지니까 찍는 선수가 유리하다.

박슬기: 펜싱 선수들이 경기 중 칼을 잡아서 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다음 공격에 유리하기 위해서인데, 휘면 각도가 더 깊어지기 때문에 찍는 것을 잘하는 선수가 선호가고, 펴면 길어지니까 찍는 선수가 유리하다는 얘기다. 검증의 문제도 있고, 과학 지식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선수들이 가진 경험적 지식은 확실히 종목별로 있는 것 같다.

오태규: 예를 들어서 한국의 양궁이 왜 강한지에 대해 좀 더 과학적으로 파고들어 전달해주면 좋겠다. 만날 해병대 가지말고, 그것은 다른 애들도 할 수 있다. 

김세훈: 동계 종목은 결국 원심력과 구심력의 싸움이고,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스포츠 과학적인 소재가 많다. 하지만 하계 종목은 조금 다를 것 같다. 과학이 경기력에 미치는 게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과학 덕분에 금메달을 땄다고 하면 선수들이 듣기 싫어한다.

사회자: 이번 올림픽에서 종목별 성적에 경도되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올림픽 기사를 발굴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세훈: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한 선수들을 한 10명 정도 찾아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메달 따기도 어렵고 한 판 이기기도 어려운데 정말 열심히 준비하는 선수들이 있다. 1승도 못할지라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박슬기: 사실 유명한 선수들의 정보는 이미 알려져 있다. 눈에 안 보이는 선수들이 어떻게 준비하는지 오히려 궁금할 수 있다. 옛날 방송 프로그램이 태릉선수촌의 3일을 다큐멘터리로 방송한 적이 있는데, 조회수가 높았다. 사람들이 궁금한 게 결과에 대한 것도 있지만, 선수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운동하는지 더 궁금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도 좋고 심판 등 주변의 인물들까지 얘깃거리는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미디어의 스포츠 보도에는 상업주의를 배제할 수 없고, 다양한 소재로 관심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스포츠 과학도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시청자, 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몰랐던 종목에 대해 알게되면서 확장이 일어날 수 있다.

장익영: 미디어의 스포츠 보도에는 상업주의를 배제할 수 없고, 다양한 소재로 관심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스포츠 과학도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시청자, 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몰랐던 종목에 대해 알게 되면서 확장이 일어날 수 있다.

다른 한편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사회 다른 영역과 연관해 볼 대목도 있다. 2018년도에 일본 체육청 장관이 왔을 때, 왜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때 새 경기장도 많이 짓고, 그런 투자가 노령화 된 인구들이 스포츠 참가를 통해서 의료비 절감 등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올림픽 메가 스포츠 이벤트가 우리가 생각할 때 부정적인 부분들도 많고 비난받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 도시는 도시 재생 차원에서 접근하는 추세다. 경기장 등 건물 몇 개 올리는 게 아니라 스포츠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연간 의료비가 120조 이상인 상황에서 스포츠 국제대회 개최를 사회 다른 영역과 연결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오태규: 승리 지상주의라든가 엘리트 중심의 천편일률적인 기사에서 탈피하는 것만으로도 스포츠 대중화에 공헌할 수 있다. 하나 더 말하자면, 스포츠 기자도 좀 더 전문성이 더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올림픽 4년마다 하는데 각 매체의 파견 기자가 늘 새로운 기자라면 독자와 차이가 없다. 옛날에는 현지 파견된 기자의 보도를 신선하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인터넷 환경으로 독자들도 기자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것을 본다. 기자는 훨씬 더 깊고 넓게 알아야 하고 준비해야 한다.

김세훈: 덧붙이자면, 성적에 목매서도 안되지만, 선수들의 성취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줘야 한다. 세계 콩쿠르에서 1등을 하고, 미술 대회에서 1등하면 칭찬한다. 올림픽 등 스포츠 세계에서 1등을 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사회자: 오늘 열띤 토론에 감사드린다. 젠더 이슈를 비롯해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행사를 통한 스포츠 대중화의 가능성도 짚어봤다. 모두 미디어의 보도를 매개로 변화와 도전이 가능한 영역들이다. 미디어 종사자로서 다시 한번 저널리즘의 의미와 책임을 새겨보는 계기가 됐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태그:#파리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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