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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진로교육은 입시교육의 연장선이다. 대학 입학이 곧 고학력 실업자라는 공식을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다.

우리 나라에 진로 교육이 도입된 지 10년째를 맞고 있다. 2015년 진로교육법 제정 이후 모든 중고등학교에 진로교사가 배치되고 2013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16부터 중학교에 자유학기제와 자유학년제가 전면 도입되었다. 이를 계기로 학교마다 진로탐방, 진로체험, 진로박람회, 진로이음 등 진로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운영하면서 학생 자신과 직업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개개인의 진로를 발달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노력으로 교실은 얼마나,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2022년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학생 2만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희망 직업이 '없다'고 응답한 학생은 초등학생의 19.3%,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경우 각각 38.2%와 27.2%로 나타났다. 진로가 구체화되어야 할 시기인 중등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이 보인 부정적 응답은 10년간의 진로 교육의 성과를 무색케 하고 있다.

본인의 적성과 흥미에 맞춘 진로교육과 진로지도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직업계 진학률과 대학 입학률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즉, 진로교육과 진로지도가, 제도화 이전과 이후의 직업계 고교와 대학 진학률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만족할만한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23년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업계고 진학률이 2014년 16.9%에서 2021년 기준 15.1%(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2년)로 오히려 감소했다. 거기다 직업계고의 대학 진학률(2020년 42.5%, 2021년 45%, 2022년 45.2%, 2023년 47%(교육부, 한국교육개발원, 2023년))까지 감안하면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전체 학생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대학진학에 대한 이런 쏠림 현상과 직업계 진학의 기피현상은 진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진로 교육의 방향이 궤도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도대체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또 어떻게 하면 궤도에서 벗어난 진로교육의 방향성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을까?

그 원인은 좀처럼 깨지지 않는, 아니 좀더 과장해서 표현하면 영원히 깨질 것 같지 않은 학력과 학벌중심의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분위기를 바꾸지 못하도록 막는 사회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대졸 학력은 기본값이 되었고 학벌은 미래의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경제학회의 연구보고서(한국경제학회 학술지 경제학 연구 2023년 2호에 게재된 '대학 서열과 생애임금격차' 논문, 40~44세 대학 졸업자 중 최상위권 대학 졸업자와 최하위권 대학 졸업자 대상)에 따르면 학벌에 따라 임금 격차가 최대 50%까지 벌어진다고 밝혔다.

물론 노동시장에서 학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은 어디서든, 누구든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와 같이 대학이 보편화된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한 사회에서 대졸 학력은 더이상 차별화와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근무처인 대기업은 업무능력과 생산성 기여도 여부를 학력이 아닌, 대학의 서열화를 반영한 학벌로 평가한 지 오래다. 거기다 최근 쏟아지는 해외 유학파까지 가세하여 노동시장은 거의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이런 악화된 노동시장의 여건은 노동시장의 수요 측면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2021년)에 따르면 한국의 종사자 250명 이상인 기업의 일자리 비중은 13.9%(OECD 평균은 3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다른 나라에 비해 대기업의 양질의 일자리 제공이 적다는 뜻이다.

대졸 학력 이상의 젊은이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극격차에 기인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임금 근로 일자리 소득' 수치를 보면 2021년 기준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월 266만 원(세전 기준)으로 대기업(563만 원)의 47.2%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지난 10여 년간(2016년 대기업의 44.7%, 2017년 45.7%, 2018년 46.1%, 2019년 47.6%, 2020년 49.0%, 2021년 47.2%) 별반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 수준을 다른 나라에 비교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중소기업연구원(2017년 기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대비 중견·중소기업 임금 비중은 일본 88.1%, 미국 88.7%로, 우리 나라보다 사정이 훨씬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고 싶은 일자리는 적고, 차선책인 일자리의 임금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아 대다수의 대졸자들은 열패감에 시달린다. 대졸 학력으로 쥐어지는 월급봉투만 얇은 것이 아니다. 여기에 고물가, 고금리, 가파른 집값 상승을 감안하면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대졸 졸업장이 더이상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 않는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사회는 대학행을 만류하지 않는다. 대졸 학력이 주는 혜택의 폭(대기업 취업률)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오히려 대졸 학력이 필수인 것처럼 부추긴다.

이런 상황에서 진로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어떻게 하면 본래의 목적에 맞게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을까? 국가 경쟁력 향상과 경제성장을 전제 조건으로 한 사회적 시스템과 제도적 개선 외에는 답이 없다.

학교에서 최근 강조하는 역량은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이다. 미래사회를 이끌고 갈 인재들에게 필요한 역량이자 그들의 경쟁력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량함양과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로교육을 논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실제 중학교에서 이뤄지는 진로교육은 학교와 유관기관이 연계한 단체형 방문과 1회성 체험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한 단계 올라선 고등학교에서는 입시지도에 무게가 실린다. 이런 상황은 직업계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출구가 보이지 않으니 대책 없는 대학행을 막을 방법이 없다.

학생들에게 자신있게 보여줄 양질의 일터가 적으니 진로교사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인문계는 인문계대로 직업계는 직업계대로 학교현장에서 진로교육의 목적과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진로 교사는 그들의 존재감을 입시지도와 우수대학 입학률로 나타내려 노력한다. 제도의 조력자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이것은 진로교육 도입 초기 모델로 삼았던 유럽의 몇몇 국가와도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독일, 덴마크, 핀란드의 경우 체계적인 진로 시스템과 사회적 지원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직업의 현실을 맛보도록 돕는다. 중학교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기소개서 및 이력서 작성법을 배운 후 직접 작성한 이력서를 들고 지역기업이나 기관을 방문하여 현장에서 팁을 제공받는다. 그리고 실제 관심있는 일터에서 직업체험을 한 주 이상 해본 뒤 실습 보고서와 평가서를 학교에 제출한다. 이를 통해 일의 가치를 배우고 업무과정의 경험을 통해 해당 일에 대한 적성 여부를 스스로 고민한다.

중학교 과정에서 한 주 이상의 실무경험을 쌓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직업계와 인문계의 적성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탐색과 체험을 기반한 자기 검증과 이를 토대로 한 선택은 상급학교에서의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는 인문계 고등학생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실습과 체험의 장소도 일터만은 아니다. 연구소나 대학도 실험실과 대학 강의실을 개방해 놓고 학생들을 기다린다.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직업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진로교사가 입시지도에서 벗어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우리에게도 학생들에게 안내할 일터가 있어야 한다. 어린 학생들을 미래의 동반자로 여기고 따스하게 맞아 일의 의미를 진정성 있게 가르쳐줄 기업 또한 필요하다. 학생들이 작성한 이력서를 들고 혼자서도 찾을만한 기관이 곳곳에 있어야 한다. 이런 환경이 갖추어질 때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건강하게 꿈꿀 수 있고, 학업에 대한 동기부여 역시 스스로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제도적 뒷받침 또한 필요하다. 학력에 맞는 일자리 매칭이 이루어지기 위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또한 고졸 학력으로도 인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능하도록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런 개선이 어렵다면 삶의 최소 조건인 물가와 주거비(집값)라도 안정시켜야 한다. 안전장치가 없는 사회가 지속된다면 젊은이들은 그들만의 생존 전략인 비혼과 저출산으로 기성세대와 끝없이 맞설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기성세대들에게 한 가지 덧붙여 주문하고 싶다. 젊은이들에게 열패감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경쟁에서 뒤처졌다고 몰아세워도 안 된다. 또한 지금의 결과물이 개인적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책임을 물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기성세대들이 짜놓은 틀에 힘겹게 달려온 그들에게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염치이다.

태그:#진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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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키일대학(Christian-Albrechts-Universitat zu Kiel)에서 경제학 디플롬 학위(Diplom,석사) 취득 후 시골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21년, 독일 교육과 생활의 경험을 담은, 독일 부모는 조급함이 없다(이비락,2021)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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