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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종자는 오랫동안 농민들의 손에 의해 최소 30년 이상 이 땅에 심겨진 종자를 말한다. 매년 심겨지며 조금씩 그 땅의 생태계에 맞춰서 적응해 온 토종종자는 우리 삶의 터전과 유기적으로 공명하는 존재이자 농민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유산이다. 최근 유전자변형 농수산물(GMO)과 종자주권 등의 이유로 이미 많이 주목받은 토종종자가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역 풍토에 맞는 다양성 확보를 통해 병해충 및 환경변화에서 생존율이 뛰어난 토종농작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함양군은 농업이 주요 생산기반인 지역으로 농업계획이 중요하다. 경상남도를 통해 함양군도 토종농산물 소득보전 직불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저변확대에 한계가 있다. 농업 문화유산인 토종종자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토종종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만든 토종종자 생태계를 알아보고 함양농업의 미래를 고민해본다. [기자말]
아산제터먹이사회적협동조합 장명진 이사장.
 아산제터먹이사회적협동조합 장명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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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미래는 토종종자다."

제터먹이를 들어보셨나요?

'제터먹이'는 내가 살아가는 터, 혹은 지역을 뜻하는 '제터'와 먹거리를 말하는 '먹이'가 붙은 순우리말이다. '제터먹이'는 흔히 쓰는 로컬푸드의 우리말 표현이지만 이름이 품고 있는 가치는 조금 더 크다.

아산제터먹이사회적협동조합(이하 제터먹이협동조합)의 홈페이지에 있는 설명에 따르면 '제터'는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말하고 '먹이'는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생명의 원리를 의미한다. 단순한 공간과 음식을 넘어서 우리네 삶의 터전에서 함께 환경을 공유하는 농작물, 그리고 그런 농작물을 음식으로 먹으면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관계. 제터먹이협동조합은 이런 가치를 핵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제터먹이협동조합이 단순히 지역에서 경작된 농산물을 먹자는 개념을 넘어서 이 지역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토종씨앗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이유다.

현재 제터먹이협동조합의 이사장, 장명진 농부는 20대 때부터 40여 년간 농민운동을 해온 농민활동가다. 제터먹이협동조합 활동을 포함한 농업 관련 공적을 인정받아 매헌농민상 농민권익보호 부문 수상을 하기도 했다.

장명진 이사장은 "우리 협동조합은 지역 사회와 농업 공동체를 복원하고 토종종자 주권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출범했다"고 설명했다. 제터먹이협동조합은 2012년 협동조합 관련법이 개정될 당시 아산 지역 한살림 생산자들이 모여 출범하게 됐다.

"사람들 안 된다고 했지만, 자신 있었다"

제터먹이협동조합이 첫 번째로 둔 목표는 마을 공동체의 복원이다. 농촌 지역은 전부 소멸 위기에 직면해있다. 농촌 구성원은 고령화되고 청년인구는 도시로 유출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젊은 청년은 수익이 안 되는 농업에 호감을 갖지 않고 그러니까 마을은 텅 빌 수밖에 없는 수순이죠. 공동체를 복원해서 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면 농촌에 살고 있는 농부들의 자식이 마을로 돌아와서 농업을 이어갈 수 있는 그런 토대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농촌의 농부들 부양 책임도 공동체가 마련해보고 싶었죠. 국가의 근간이 농업인데 농업을 평생 이어온 농부들이 마지막에 비참해지는 그런 상황을 대비하고 싶었어요."

두 번째 목표는 종자 주권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부분 농민은 스스로 종자권이 없기 때문이다.

"농촌이 젊은 인력으로 채워진다고 해도 종자주권의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 한 농업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눈에 보이는 거죠. 그래서 종자주권 운동의 일환으로 토종종자 수익구조를 만들었어요."

제터먹이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는 책임수매다. 이 지역에서 토종종자로 농사를 짓는다면 시장의 시세나 매해 달라지는 가격 변동과 상관없이 농부들이 토종종자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수준의 수매가를 정한다. 농부친화적 적정 가격 보장제도인 셈이다.

 "농부가 수지타산을 못 맞추면 관행농에서 하고 있는 일반 종자를 쓸 수밖에 없고 그러면 종자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계속 노동하지만 바뀌는 건 없는 거죠. 토종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고 했어요. 농부에게 보람은 소득이죠. 영농 계획에서 자연스럽게 토종종자를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돼야죠."

농부친화적인 운영을 고집하다 보면 협동조합의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 협동조합이 흔들리지 않고 튼튼하게 지속할 수 있어야만 더 높은 가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가격으로 수매한 농산물을 가공, 판매, 유통을 통해 수지타산을 맞추는 일은 협동조합의 일이죠. 많은 사람들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자신 있었죠."

장명진 이사장은 기존 농업의 유통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단계의 유통 비용을 줄였다. 직접 수매, 직접 가공, 직접 유통을 하면서 방법을 찾았고 그만큼 농가소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제터먹이협동조합의 주 무기    
 
토종콩으로 만드는 콩나물. 토종콩나물, 촉진제를 이용해 3일이면 다 자라는 다른 콩나물과는 다르게 5일에서 7일 정도 걸린다.
 토종콩으로 만드는 콩나물. 토종콩나물, 촉진제를 이용해 3일이면 다 자라는 다른 콩나물과는 다르게 5일에서 7일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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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터먹이협동조합은 출범 초기 연매출 3억 원에서 현재 11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꾸준히 성장해왔다. 중심이 되는 건 토종콩으로 만드는 콩나물과 앉은뱅이밀로 만드는 밀가루 및 국수다. 콩과 밀은 이모작이 가능한 전통 농업으로 토종 농업 모델을 농부들에게 제안하고 두 가지 모두 수매하는 방식이다. 콩을 기준으로 생산자조합원 30여 세대, 수매량 5.4만 kg, 총 재배면적만 7만7천 평이다. 규모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금은 여기 아산뿐만 아니라 공주, 청양, 예산, 천안 등에도 우리 생산자조합원이 있어요."

아산을 넘어서 충남 지역으로 건강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제터먹이협동조합. 제터먹이협동조합이 생산하는 토종콩나물은 한살림과 학교 급식, 로컬매장에도 들어간다. 밀의 경우 부침가루, 밀가루, 튀김가루, 국수 등 가공을 통해 판매한다.

제터먹이협동조합 내에서 토종농부양성 프로그램인 토종농부학교 운영도 올해로 9년 차에 접어들었다. 적을 때는 열다섯 농가, 많을 때는 스무 농가가 참여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다양한 토종종자들로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토종종자가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토종농부학교는 토종종자를 이어가는 농부들을 모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초보 농부들이 농업과 종자주권, 농업노동의 가치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1년 동안 매주 토요일 9시에 모여 11시까지는 노동을 하고 11시부터 12시까지 이론 수업을 한다.

토종농부학교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수업을 진행한다. 논농사로 바라보는 수중 생태의 순환, 토종소, 재래닭, 강아지에 대한 역사, 한의사가 말하는 건강 강좌, 지역 김장 교육 등 농업 기술뿐만 아니라 지역의 농부가 가져야 하는 생활상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과정이다.

토종콩으로 만드는 콩나물. 토종콩나물, 촉진제를 이용해 3일이면 다 자라는 다른 콩나물과는 다르게 5일에서 7일 정도 걸린다.

제터먹이협동조합이 바라보는 농업의 미래

장명진 이사장은 "저는 스마트팜이라는 정책을 아주 피 터지게 반대했던 사람"이라며 말을 시작했다.

"스마트팜 정책에는 농부가 없어요. 농기업만 있는 거지. 시설 투자비가 그렇게 많이 드는 농업을 미래라고 하기는 어렵죠. 스마트팜으로 주곡 생산할 수 있어요? 공간도 한정적이고 수지타산도 안 맞아요. 주곡 생산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농업의 미래가 될 수 있겠어요."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다. 기후위기는 점점 심각해지고 이를 통해 농업이 점점 불리해지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장명진 이사장은 "기후위기마저도 작물과 농부가 같이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며 "모든 생물에게 축복인 태양을 중심에 두고 농업이 있어야 한다. 가공된 빛으로 갇혀 있는 공간에서 대량 생산된 채소들이 건강한 먹거리가 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스마트팜을 통해 생산된 농산물이 건강한 먹거리가 될 수 없다면 스마트팜을 농업의 미래라고 보기 어려우며 이는 같은 작물을 건강하게 재배하는 농민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몇 사람이 이익을 보겠지만 대부분의 보편적인 농민은 희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스마트팜은 사회적으로는 공동체 파괴와 소멸을 가속화하고 개인에게는 큰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는 농민 없는 농업 정책이에요. 결국 농업 정책에는 농민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국가의 식량자급을 책임지는 농민이 없고서 어떻게 국가가 있을 수 있겠어요."

고추 씨앗이 같은 양의 금보다 비싸게 팔리는 상황은 이미 유명하다. 고추 씨앗 한 봉지 30만 원에 구매하고서, 고춧가루 30만 원어치 팔 수 있을까?

농사는 종자값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비닐멀칭, 퇴비, 인건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출이 필요한데 고추의 경우 병이 들면 밭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비싼 종자값을 들이고 농약을 쳐서 나오는 게 건강한 것도 아닌데 그럴 바에 조금 덜 수확하더라도 건강한 식재료 만들어내는 게 맞다는 판단을 해야 하는데 정부와 농업기관에서 농민을 지도한 결과 지금 토종은 아예 값어치 없는 종자로 사람들 인식이 되어있죠. 토종 심어 뭐 할 거냐는 이야길 들어요.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토종을 이어가겠어요? 안 심지. 그래서 적정 가격 보장제도는 꼭 필요한 제도예요."

장명진 이사장이 생각하는 농업의 미래는 토종종자다. 실제로 제터먹이협동조합에서는 토종콩이 개량콩에 비해 수확량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농부들에게 입증하는 등 토종을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지역의 여성 농민에게 토종 잡곡 한 품목씩 농사짓게 하고 잡곡을 제품으로 낼 계획도 하고 있고요. 토종콩 10톤 규모 메주도 준비하고 있어요. 전통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누룩과 쌀도 전부 토종으로 해서 막걸리도 준비하고 있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함양 농업에 토종종자 생태계 마련하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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