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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치에 관심이 없다. 이 말은 20,30대 젊은 시절의 나에게는 '전 명품 가방에 관심 없어요'와 동격이어서 일견 고상한 척, 자랑스럽게 내뱉기도 했다. 그게 얼마나 부끄럽고 무식한 생각이었던지 세월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편 덕에 시대의 흐름은 놓치지 않는 것이 전부다. 때로는 내가 궁금한 것 이상으로 길게 연설을 늘어놓는 남편 앞에서 꼼짝없이 벌을 받는 어린아이의 심정이 될 때도 있다. 정치는 여전히 나에게는 어렵고 불편하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사회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다른 식으로 사람과 사회를 향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다. 바로 글이다. 누구나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이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길 원한다.

누군가는 정치로, 누군가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그림으로 세상의 변화를 꾀한다고 믿는다. 방송작가로서 가장 이상적으로 꿈꾼 게 있다면 '횡단보도 앞 정지선 지키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이경규가 간다'라는 방송프로그램이었다.
 
2016년 방영한 프로그램. 진심과 열정을 갖고 만들었다
▲ 하나뿐인 지구(EBS)_미니멀 육아, 장난감 없이 살아보기 2016년 방영한 프로그램. 진심과 열정을 갖고 만들었다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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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프로그램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2016년에 방영된 '하나뿐인 지구_미니멀 육아 장난감 없이 살아보기'(EBS)는 당시 큰 이슈를 불러왔다. 방송작가는 사심을 담아서 방송을 만들면 안 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나는 삼남매 엄마로서 나의 가장 큰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다.

늘어가는 장난감 더미 속에 파묻혀 비명을 지르다가 정말 이렇게 장난감을 마구 사줘도 되는 건지, 장난감이 없으면 정말 큰일 나는 건지, 내가 더 궁금했다. 그 마음이 제대로 담겼던 걸까.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 방송이 회자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엄마들을 보면, 이래서 내가 글을 쓴다 싶다. 

기자가 된 방송작가

이제 나의 글쓰기 영역은 무려 '기자'로 확장되었다. 오마이뉴스 덕분이다. 내가 그런 호칭을 들어도 되나 여전히 쑥스럽고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모토가 제법 마음에 든다.

사실 처음부터 시민기자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오마이뉴스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나에게 글쓰기를 배우는 엄마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글은 쓰고 싶은데 글은 써서 뭐 하나요?'

그 질문의 의미를 잘 안다. 글쓰기는 예로부터 '뻘짓'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소위 말하는 돈이 안 되는 일. 많은 순수문학 작가들이 '글만 써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가 소원일 정도로 글쓰기와 돈은 상극이었다. 나 역시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방송작가라는 직업으로 타협한 것이나 다름없다.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는 또 글쓰기가 또 돈을 벌게 해준단다. 그래서 '돈 버는 글쓰기'라는 말이 유행하고 글쓰기 수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글 써서 돈 벌고, 책을 내서 돈을 번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상하게 또 글 쓰는 엄마들은 기가 죽는다. '내가 쓰는 글도 돈이 될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엄마들에게 <오마이뉴스>에 글을 써보라고 권한 것이 시작이었다. 글쓰기로 돈 버는 것은 전문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하물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쓰는 글은 대부분 돈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하지 않는 글을 써서 블로그 체험단을 하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정성껏 쓴 글이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고, 단돈 얼마라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의 조언 덕에 자신의 글이 기사가 되었다고, 난생처음 글로 돈을 벌었다고 기뻐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나 역시 시민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총 여섯 편의 기사를 썼고, 27만3000원이라는 원고료가 쌓였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사람임에도 글로 번 이 돈이 묘한 기분이 든다. 방송을 만들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내가 진심으로 쓰고 싶어서, 내가 세상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좋아서 썼을 뿐인데 그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니!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돈 이상의 뿌듯함이 있었다.

'잘한다, 잘한다' 등 두드려 주는 곳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고 난 돈도 벌고 자신감도 찾았다
▲ <오마이뉴스> 내 방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고 난 돈도 벌고 자신감도 찾았다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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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다고, <오마이뉴스>에 처음 쓴 기사가 메인에 올랐을 때 남편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보! 나 오마이뉴스에 기사 써서 6만 원 벌었다?!"
"와! 우리 여보 대단하다! 이력서에 한 줄을 더했네!" 


남편의 대답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어주는구나. 그래도 내 글이 돈을 지불할 만큼 가치 있구나. 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나에게 돈보다 필요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인정이었음을.

나와 함께 글 쓰는 엄마들이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었던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돈도 안 되는 글을 왜 쓰고 있냐는, 그럴 시간에 차라리 빵집 알바라도 하라는 남편의 말과 주변의 시선에 스스로를 지키고 글쓰기를 지속할 방패가 필요했다. 그래서 적은 '돈'이라도 벌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27만3000원이 새삼스러워 보인다. 이 돈이 어디에서 왔을까? 고민하게 되면서 내가 받은 돈과 나의 글을 인정해 준 것에 대해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정기후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돈이 모이고 모여서 글은 쓰고 싶지만, 현실적 이유로 지속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작은 응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아직도 정치를 모른다. 언론사며 정치단체에 후원하는 것도 처음이다. 그럼에도 오마이뉴스에 후원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의 사는 이야기를 지면에 실어주고, 돈까지 주고, '잘한다, 잘한다' 등 두드려주는 곳이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정치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도 필요하다. 지혜와 지식이 담긴 거장의 글도 필요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낀 깨달음을 담은 글도 필요하다.

'나의 이야기가 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도 기사가 될 수 있다고, 용감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고, 그래서 다양성을 수용하고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말하고 싶다. 정치는 잘 몰라도 <오마이뉴스>에 후원하는 이유는 그걸로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엄마의글쓰기, #이지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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