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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당극패 우금치의 적벽대전(赤碧大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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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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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사)마당극패 우금치의 <적벽대전>의 첫 시작은 동요 <얼굴>(심봉석 작곡, 신귀복 작곡)의 신디사이저 반주 음으로 시작됐다. 

동그라미만 보면, 보름달만 보면 떠오르는 사람. 얼마나 보고 싶고 떠오르면 '그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까. 관객에게 첫 시작부터 '그 사람'이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던진다.

'그 사람'은 한국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숨진 오빠와 아버지 등 희생자다. 첫 등장인물들도 구천을 떠도는 혼백이다. 오래전부터 조상들은 혼(영혼)은 몸에서 빠져나와 하늘나라로 오르고 백(육체)은 몸속에서 머물다 땅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적벽대전>에 등장하는 희생자들의 영혼은 억울함과 분노,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한으로,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여전히 골령골에 머물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구천 떠도는 '혼백' 
 
사)마당극패 우금치의 적벽대전(赤碧大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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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미순'의 오빠는 해방 직후 야학을 운영했다. 글을 모르는 마을 아주머니, 할머니를 위해 글방을 운영했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던, 여동생 미순을 끔찍이 사랑했던 그는 전쟁이 터지자, 예비검속돼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경찰은 오빠를 끌고 가기 전 미순에게 '오빠가 있는 곳을 대라'며 목에 총을 겨눴다. 당시 미순의 나이 14살.

미순의 엄마는 새벽부터 길을 나서 몇 번씩 버스를 갈아탄 끝에 대전형무소에서 아들을 면회했다. 아들의 손은 전기 고문으로 걸레가 돼 있었다. 손바닥과 손등은 모두 갈라지고 피부는 까맸다. 아들의 모습을 본 엄마는 마음 편히 버스를 탈 수 없다며 울며불며 집까지 100리(40km) 길을 되짚어 걸었다. 집에 도착한 엄마는 혼절했다. 미순의 오빠는 얼마 뒤 골령골로 끌려가 처형됐다.

극중 이야기지만 이는 실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다. '미순'은 올해 88세가 된 신순란이다. 그의 오빠는 '신석호'(당시 26세)다.

충남 공주군 의당면 송정리에 살던 신순란은 오빠가 잡혀가는 모습과 경찰이 자신의 목에 총을 겨누며 협박하던 그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껴안고 살고 있다. 오빠는 고문 끝에 누명을 쓰고 1심에서 5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항소심을 기다리던 중 6.25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부는 오빠를 대전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총살했다. 이때 골령골로 함께 끌려가 골령골에 묻힌 대전형무소 수감자와 보도연맹원은 최소 4000명에서 최대 7000명에 이른다.

극중 '영철'의 아버지는 평범한 마을 주민이다. 마을 주민들의 궂은일을 도맡아 해오던 아버지는 해방이 되자 당시 전국적으로 지역마다 조직된 민간자치기구인 마을 인민 위원을 맡아 봉사했다. 이 일로 보도연맹 가입을 강요받았고, 전쟁이 나자, 보도연맹 원이라는 이유로 끌려가 산내 골령골에서 극 중 미순의 오빠와 함께 처형됐다.

실제 이야기... 미순이는 '신순란 할머니', 미순 오빠는 '신석호'
 
사)마당극패 우금치의 적벽대전(赤碧大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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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철 아버지 이야기 또한 실화다. 해방 직후 인민위원회는 순수 민간 자치 기구로 일본인이 조선인으로 가장해 횡포를 부리는 짓을 막고 힘없는 사람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돕는 등 마을, 행정을 주도했다. 

하지만 미군정은 인민위원회라는 명칭만으로 이를 공산주의 단체로 여겨 강제 해체했다. 이후 1948년 12월, 보도연맹이 결성되자 과거 인민위원회 활동 전력을 문제 삼아 보도연맹에 가입하게 했다. 또 극중에서처럼 경찰과 공무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보리쌀, 비료, 고무신 등을 준다고 회유해 얼떨결에 가입한 사람도 많았다.

보도연맹은 좌익전향자들을 교화·보호·지도한다는 목적으로 구성했지만 6.25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 정부는 북한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며 무차별 검속 후 살해했다. 보도연맹 희생자는 최소 10만 명에서 최대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적벽대전>(연출 류기형)은 삼국지의 유명한 적벽대전을 연상하게 하지만 6.25 전쟁 당시 대전에서 일어난 민간인학살 사건을 토대로 인권, 평화를 말하고 있다. 赤(붉을 적)과 碧(푸를 벽) 자를 쓴 '赤碧大田'으로 남과 북, 음과 양, 남과 여 등 모든 갈등과 대립을 대전에서 만나 풀어내고 소통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간인학살 사건 그린 적벽대전(赤碧大田)
 
사)마당극패 우금치의 적벽대전(赤碧大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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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극은 대전의 역사에 국한돼 있지 않다. 해방 이후 미군정, 4.3항쟁, 여순사건, 6.25 전쟁까지의 격동기 역사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그러면서도 생생하게 표현했다. 또 고화질 프로젝터를 벽면과 천정에 설치해 무대 효과를 극대화했다.

지난 6월 19일부터 6월 30일까지 별별마당 우금치 소극장(대전 중구 중앙로112번길)에서 선보인 '적벽 대전'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가슴을 울리는 작품"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를 이렇게 살아 있는 얘기로 전해 줘 감사하다" "디테일한(섬세한) 연출과 실감 나는 배우들의 연기..." "감동 듬뿍..." "최고의 역사물" "청소년들이 꼭 봐야 할 공연" "아프지만 우리 시대가 꼭 봐야 할 작품" 등 관람 후기도 쏟아졌다.

실제 극이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은 훌쩍이거나 어깨를 들썩이거나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시의적절한 배경음을 직접 연주해 몰입도도 높였다. 마당극의 묘미에 영상을 더해 상상력까지 살렸다.

"가슴을 울리는 작품"...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도 감동 받을까? 
 
사)마당극패 우금치의 적벽대전(赤碧大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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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응어리진 상처를 화해와 상생으로 풀어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한 방향을 혼백과 유가족의 시선으로 제시한 점도 작품의 미덕이다. 원래 이 작품은 2020년 첫선 때부터 전쟁의 상흔을 예술로 잘 승화시켰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매년 공연을 거듭하는 사이 초연 때보다 스토리는 명료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더 깊어졌다.

지난 6월 27일 대전 산내 골령골 현장에서는 74주기 위령제가 열렸다. 이날 눈물을 쏟아낸 사람 중에는 <적벽대전>에서처럼 골령골에서 부모와 형제를 잃었지만, 처음으로 현장을 찾은 이도 많았다.

이날 전미경 대전유족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희생자 유족을 만나 '전시하에서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한 발언을 소환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의중이 반영됐기 때문인지 지난 3년간 진실화해위원회의 사건 처리율은 60%에 불과하고 그중 진실 규명률은 단 30%에 머물고 있다.

마당극패 우금치는 이 작품을, 서울을 비롯해 전국 순회공연도 구상 중이다. 희생자 유가족은 물론 그 유가족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람을 권한다. 김 위원장의 경우 꼭 봤으면 한다.

정부는 대전 산내 골령골에 전국 민간인희생자 추모 평화공원을 조성 중이다. 평화공원과 함께 들어서는 소공연장에서 <적벽대전>을 상설 공연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태그:#적벽대전, #우금치, #골령골, #민간인학살, #보도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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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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