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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첫째주, 방방곡곡 진솔한 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체험 함양 삶의 현장'을 연재한다. <주간함양> 곽영군 기자가 함양의 치열한 노동 현장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면서 직업에 대한 정보와 함께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흥미롭게 전하는 연재 코너이다. 관련 영상은 유튜브 '함양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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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쨔이(형), 앰쨔이(동생)."

나는 오늘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에게 한국식 서열 문화를 알려주었다.

6월 25일 오전 9시, 함양읍 용평리 어귀에는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벼 모종을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베트남 남짜미현에서 온 계절근로자들이 진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다. 

"신짜오(안녕하세요), 차오멍(어서오세요)."

베트남식 인사를 받으며 오늘 체험지로 들어섰다. 근로자들의 업무를 살펴보니 오늘 체험도 순탄치는 않을 것 같다.

경위는 이렇다. 최근 체험함양삶의현장 업무 강도가 낮다는 평가와 함께 22주년 창간호를 맞아 실시한 <주간함양> 특집 선호도 조사에서 본 코너가 인기 순위 3위를 차지했다. 물론 '근소한' 차이였지만 납득할 수 없는 수치(數値)며 수치(羞恥)다.

선호도 조사결과야 어떻든 지금까지 체험지를 누비며 되새겨본 결과 높은 강도는 결국 반복노동이며 몸을 많이 사용하고 기자의 육신이 힘들어야 재밌는 이야기가 나온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이번 체험지를 이곳으로 선택했다.

앞서 체험함양삶의현장 20회 때, 함양농협 하늘가애 육묘장 방문기에서 경험했던 육묘들이 보였다. 당시에는 키워진 벼 모종을 농민들에게 납품하기 위해 모종을 옮기는 작업이라면 오늘은 모종을 하우스에 키우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그렇다고 앞전의 체험이 쉬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계절근로자들은 3일 전부터 이곳 농장에 배치되어 일 해 왔다. 오전 7시부터 시작되는 그들의 일과는 오후 5시에 마무리된다. 이른 시간부터 현장에 투입되어 힘들 법도 하지만 표정이 밝다.

1톤 트럭 한 대가 모종을 싣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왔다. 대충 근로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한 뒤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길게 뻗어 있는 비닐하우스 바닥에는 아직 자라지 않은 노란색을 띤 모종판들이 테트리스 모양처럼 놓여있다.

갑작스러운 낯선 사람의 방문 때문일까? 주위 공기가 무겁고 조용하다. 별다른 말없이 그들 옆에서 모종을 나르고 또 바닥에 놓아두길 반복했다. 30분쯤 시간이 흘렀고 작업이 몸에 익어간다. 트럭 위에서 모종을 건네는 근로자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모종을 나에게 건넨다. 모종을 건네는 사람, 전달하는 사람, 놓는 사람으로 업무의 분업화가 생겼다.
   
그렇게 트럭 한 대 물량이 끝이 났고, 다음 트럭이 들어오는 동안 잠깐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한 숨 돌리고 있으니 이어 다음 트럭이 하우스 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트럭 세 대를 해치우고 나서야 1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생겼다. 근로자들은 이때 물도 먹고, 담배도 나눠 피우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에게 다가가 한국사람 특유의 대화법 이름, 나이를 먼저 물었다. 한국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에게 어쭙잖은 영어와 손동작을 섞어가며 소통하려고 애를 썼다. 엉터리 수화를 보고 대충 나이를 묻는 의미가 전달됐다.

32살, 손가락으로 자신의 나이를 알렸다. 내가 한 살 형이다. 짝다리를 짚었다. "내가 안쨔이(형), 동생은 앰쨔이(동생)" 나이를 '정확하게' 구분 짓고 다시금 들어오는 트럭을 '편안'하게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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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을 가운데로 두고 양쪽에서 진행되는 일은 각각 속도가 다르다. 굳이 설명하면 팀 전이라 할 수 있다. 이미 통성명?을 마친 우리 쪽 일은 반대편보다 속도가 빠르다.

비닐하우스 한 동에 모든 모종을 채우고 나니 옷은 이미 땀과 흙으로 범벅이다. 이어 옆 동 비닐하우스로 이동해 다음 일을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충분히 키워진 모종을 트럭에 옮겨 담는 일을 한다. 저번 함양농협에서 경험했던 업무의 역순이다. 그렇기에 어색함도 없이 움직였고 농장주인의 칭찬이 들렸다. "일을 잘 하시네요.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나요?" 이래서 경력직을 우대하나 보다.

외국인 근로자와 함께 그들의 통역을 담당하는 원혜정씨도 함께 일손을 돕고 있다. 그녀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웬만한 내국인보다 한국어가 유창한 그녀는 체험 일정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그녀는 "지난주 양파 농가에서 일할 때 오셨으면 더욱 다채로운 체험이 되었을 텐데 아쉽네요"라며 웃었다. 이미 양파농가는 9회 때 체험을 했다. 정말 힘들고 고된 일이다.

함양군을 비롯한 군 단위 농업 현장은 더 이상 외국인 근로자가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들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몇몇 농가들은 내국인과 차이를 두기도 한다. 또한 비교적 후진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업무 강도를 높이고 휴식시간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원혜정씨는 "이곳 농장주는 휴식시간도 오전, 오후 30분씩 보장해주고 점심시간도 한 시간씩 챙겨준다. 그러나 일부 농장에서는 30분 휴식시간도 짧게 10분으로 줄이고, 근로자들에게 물도 챙겨주지 않고 일만 시킨다. 물론 대가를 지불하는 고용주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일을 더 많이 시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은 기계가 아닌 만큼 최소한의 대우는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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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숙이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니 허리와 허벅지가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나와 비슷한 고통을 외국인 근로자들도 느끼고 있겠지만, 그들은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번 계절 근로자들은 기존 근로자들과 달리 크고 작은 문제가 없다. 또한, 모두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 계절근로자 전체가 모범 근로자 및 생활 우수자로 선택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한다.

원혜정씨는 "이번에 남짜미현에서 온 근로자들 모두가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지만 점차 적응하면서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함양군에서 계절근로자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도 실시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원자를 받아 한국어 교육까지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돈을 벌기 위해 왔지만, 근로자들이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국 최초로 시행된 함양군 계절근로자 지원센터는 2023년 초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같은 해 4월에 건물 부지를 매입한 후 12월 리모델링 공사를 착공하여 올해 3월 준공됐다. 총 42명의 근로자 입주가 가능한 지원센터는 현재 남자 12명, 여자 8명의 근로자가 상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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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 (곽영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체험 함양 삶의 현장?21 외국인 계절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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