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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장마로 비설거지 한 뒤 천막농성장. 아직은 비가 많이 내리기 전 모습!
▲ 천막농성장 비설거지 후 모습 본격적인 장마로 비설거지 한 뒤 천막농성장. 아직은 비가 많이 내리기 전 모습!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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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소식, 꼭 올려주세요."

29일 낮부터 제법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걱정하는 연락들이 밤까지 끊이지 않았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다시 금강 둔치 위에 소위 '재난안전본부'를 설치하고 채비를 갖췄다.

자칫 천막이 잠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텐트 내부와 물건을 비우고 물이 빠져나갈 자리도 만들어뒀다. 긴 비소식에 천막도 걱정이지만 세종시와 환경부가 비를 핑계로 무슨 짓을 할지가 더 걱정이다.

지난 4월 30일,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주장하며 보 상류 300m 지점 하천부지에 농성천막을 친 뒤 근 두 달 째 농성 중이다.(관련 기사: 강가 리코더 연주, 물수제비... 영영 사라질지 모르는 풍경 https://omn.kr/28yv1 ).

세종 금강에서 다시 발견된 수염풍뎅이 
 
천막농성장 근처에서 금방 찾아냈다. 암수가 각각 발견되어 번식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다시 발견한 수염풍뎅이 천막농성장 근처에서 금방 찾아냈다. 암수가 각각 발견되어 번식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유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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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깄다!"

앞서 수염풍뎅이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유진수 금강유역환경회의 사무처장이 곤충전문가와 함께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처음 발견한 수염풍뎅이는 암컷였는데, 이번에는 수컷이다(관련 기사: 멸종위기종 1급 '수염풍뎅이'가 놀러 왔다 https://omn.kr/298qc ). 강에서 번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수염풍뎅이는 몸길이가 3.55cm에 이르고, 우리나라 검정풍뎅이과 중 최고 대형종으로 꼽힌다. 성충이 되기까지 4년의 긴 시간을 보낸다. 현재는 충남 논산에서만 서식이 확인되었는데 이번에 금강에서 재발견된 것이다. 

하천 주변의 경작지 풀밭, 강모래톱에 사는 이들은 강변이나 하천에서 환경변화 때문에 서식처가 사라져 개체수가 급감한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유진수 처장은 "세종보를 재가동하면 환경부 스스로가 법정보호종 1급으로 지정한 수염풍뎅이의 서식처이자 산란터, 먹이터를 수몰시켜 죽이는 것"이라며 "세종시에 보존대책을 요구해야 할 환경부장관이 세종보 수문을 올리겠다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2023년, 이응다리 근처에 세종시와 국립생태원이 수염풍뎅이 보호하자는 현수막을 걸었었다.
▲ 수염풍뎅이 보호 현수막 2023년, 이응다리 근처에 세종시와 국립생태원이 수염풍뎅이 보호하자는 현수막을 걸었었다.
ⓒ 우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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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풍뎅이들이 세종시 이응다리 불빛을 보고 찾아오는 일이 많아서 국립생태원과 세종시는 공동으로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또 환경부도 여러번 보도자료를 내고 수염풍뎅이 보존에 나서겠다고 약속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세종시가 야간 경관 만든다고 과도하게 조명을 설치하면 곤충들에게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세종시는 지금도 밤이 되면 이응다리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하루살이들이 몰려들자 방충 채집기를 달아놨다. 이 안으로 빨려들어가 죽은 수염 풍뎅이도 많을 것이다.

환경부는 지자체의 이런 사업을 남일 보듯 하는 것이 아니라 수염풍뎅이 서식지 보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빨갛게 파랗게 노랗게 바뀌는 빛을 설치해야만 멋진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밤에만 잠깐 보이는 빛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의 모습을 세종시의 브랜드로 가져간다면 기후위기 시대를 대응하는 도시의 모범이 되지 않을까.

천막농성장 찾는 세종시민들 
 
천막농성장에 찾아온 아빠와 아이들이 금강에서 물수제비를 뜨며 놀고 있다.
▲ 아빠와 강을 찾은 아이들 천막농성장에 찾아온 아빠와 아이들이 금강에서 물수제비를 뜨며 놀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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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보고 그냥 찾아왔어요."

며칠 전엔 두 아빠가 아들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학나래교를 지나다니며 세종보 공사하는 것을 봤는데,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뉴스를 찾아보다 천막농성장 뉴스를 보고 찾아오고 싶었다고 전했다. 고향은 광주인데, 집값이 비싸도 금강이 좋아서 세종으로 이사 왔다고, 그런데 수문을 닫으면 어떻게 하냐고 애타한다. 

천막농성을 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드리니 주변에 몇 가정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찾아오고 알리겠다고 한다. 세종시에 숨어있는 강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속속 등판하고 있다. 

아이들이 물가로 아빠를 끌어당기자 강변으로 종종 걸어간다. 할미새와 물떼새들이 산책하는 그 자리, 아이들의 발걸음도 빼닮았다. 아빠가 안고 물속에 발을 담가 주자 아이가 웃는다. 그 모습 그대로 금강을 닮았다. 얕고 넓은 여울은 아빠의 너른 품을 닮았다. 더 많은 세종시민들이 이 너른 품을 즐기고 알았으면 한다. 그게 이 도시의 매력이니까. 

천막농성장에 있으면서, 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한 번은 곤충을 사랑하는 고등학생 친구가 강을 찾아 자기가 본 물살이와 곤충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재잘 나누기도 했다. 하루 종일 피곤한 줄도 모르고 강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하다. 

여기 있을수록 강 스스로가 그 가치를 증명한다. 그러니 흘러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환경부와 세종시뿐인 것 같다.
 
장마기간에는 안전하게 대피해 위에서 농성을 이어간다.
▲ 장마기간 천막농성은 이렇게  장마기간에는 안전하게 대피해 위에서 농성을 이어간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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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대피'.

저녁에 나타난 세종시 측 관계자들은 비를 피해 둔치로 올라온 우리에게 바로 아래쪽에 있는 농성 천막을 걷으라고 재촉했다.

우리는 이미 안전하게 올라와 있는데 왜 아무도 없는 아래 천막을 걷으라 하는 걸까. 아마도 우리의 안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걱정돼 오는 게 아니라 저 천막농성장을 치워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 천막이 계속 남아있는 게 걱정이 돼서 '행정대집행'을 할 수도 있다고 겁박을 한다. 

밤이 되자 활동가, 시민들의 발길이 오히려 더 이어진다. 걱정 때문이다. 몰아쳐 내리던 비에 강물은 금방 불어 올랐다. 새벽녘, 물길이 만든 하중도에 꿋꿋이 서 있는 천막을 보며 오늘의 힘을 얻는다. 62일, 또 하루의 농성을 이어갔다. 

2년 남짓 남은 정권이 세종보로 물길을 막으려 하지만 그 시도는 끝내 실패할 것이다. 이 땅은 한 때 거칠어졌다가, 다시 부드럽게 생명을 감싸며 흐르는 물의 땅이다. 수염풍뎅이의 땅이다. 흰목물떼새와 흰수마자, 삵, 수달의 땅이다. 엄마아빠와 손잡고 놀러 오는 아이들의 땅이다. 

우리를 강제 대피시킬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죽이려는 세종보를 강제 철거해야 한다.

태그:#금강, #세종보, #수염풍뎅이, #환경부, #멸종위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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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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