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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앞당겨진 폭염, 일상에서 할 수 있는 환경보호 실천은 무엇일까요. 작더라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례가 있다면 시민기자가 되어 직접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최근에 여름 농담으로 신박한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 한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여름까지 포함해서는 말이다. 아열대화가 진행되는 한국을 보면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위는 알려주지 않아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우리 집에 있는 선풍기는 6월부터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우리 가족은 열대야 경고 문자가 오지 않는 한 에어컨을 잘 틀지 않는다. 맞바람이 불도록 창문을 열고 선풍기 바람을 쐴 뿐이다. 베란다 화분에서 딴 방울토마토를 찬물에 씻어 오독오독 씹으며 더위가 물러나기를 기다린다. 가끔 아이들이 묻는다. 에어컨은 언제 켜냐고. 

일 년에 열 번 틀까 말까 하는 에어컨은 이사 올 때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나와 아내가 선택한 옵션은 아니었다. 우리 한 가구가 에어컨을 안 쓴다고 해서 절약되는 에너지는 미미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항의 상징 비슷한 심정으로 전원을 켜지 않고 있다. 에어컨에 길들여지면 끝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긴 여름과 폭염은 현재 상태이자 예정된 미래다. 수십 년 전부터 기후위기에 관한 경고가 있었지만 막지 못했다. 기술이 환경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낙관은 인간의 탐욕 앞에서 무의미했다. 위대한 영웅이 등장해 생태계 멸종을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를 품지 않는다. 되든 안 되든 지금부터라도 우리 집부터 자원과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방식으로 살아보려 노력하고 있다. 

다회용 보냉가방 사용, 관리 편한 스포츠 의류 입기

계절 별로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 생활방식은 다양하지만, 여름은 조금 특별하다. 더위를 극복하는 과제가 추가로 부여된다. 간식만 해도 차가운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게 된다. 우리도 동네의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주로 찾는다. 하나 사 먹을 때마다 매번 들를 수 없어 만 원 단위로 구매를 하는 편이다. 

문제는 집에서 가게까지 십 분 남짓한 거리에도 아이스크림이 금방 녹는다는 점이다. 어떤 손님은 집까지 최선을 다해 뛰기도 한다. 재빠른 두 다리를 믿는 것이다. 그렇지만 두 초등학생 둘을 양 옆에 끼고 사거리의 차량을 주의해야 하는 나에게는 불가한 방법이다. 뙤약볕 아래서의 전력 질주는 도저히 무리다. 

대신 우리는 다회용 보냉가방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보냉가방 두 개면 4인 가족이 먹을 아이스크림이 넉넉히 담긴다. 별도의 얼음주머니도 필요치 않다. 아이스크림 자체가 차가워서 가까운 거리는 충분히 냉기를 유지할 수 있다. 과일을 보관할 때는 얼음팩 한 두 개만 넣어줘도 신선함이 오래간다. 가게에서 파는 일회용 은박 보냉팩 쓰레기가 싫은 분들이라면 구비할 가치가 있다.
 
차가운 아이스크림, 과일, 음료를 보관하기 좋은 보냉가방
 차가운 아이스크림, 과일, 음료를 보관하기 좋은 보냉가방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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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 빼놓을 수 없는 연례행사 중 하나로는 냉장고 정리가 있다. 냉장고 내부에 내용물이 가득 차 있으면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다. 심지어 냉동이나 냉장이 제대로 되지 않기도 한다.

우리 집 냉장고는 2014년에 결혼하면서 마련한 혼수가전이다. 십 년이 지났지만 멀쩡히 잘 돌아간다.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씩 성애가 차는 현상이 발생하면 수리기사님을 모셔서 고치곤 했다. 그때마다 들었던 조언이 '냉장고 정리'였다.

우리 집의 경우, 냉동고에 말린 버섯과 쑥떡, 만두가 켜켜이 쌓여있어 냉기가 제대로 돌지 못했다. 무리하게 음식을 보관하는 습관이 화를 불렀던 것이다. 멀리 여행을 갈 때 캐리어에 짐을 절반만 채워서 가듯이 냉장고에도 여유가 필요하다. 수시로 냉장고를 정리하면 남은 식재료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용이하고 성능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7~8월에는 수박을 비롯해 냉장고에서 수시로 과일을 꺼내 먹게 된다. 맛있는 과일이 여럿이지만, 푸드 마일을 줄이고 싶다면 인근 농장에서 생산되는 과일을 고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내가 사는 강릉에서는 여름에 싱싱한 자두와 블루베리가 나온다. 제철에 지역에서 자란 과일은 탄소발자국이 적을 뿐 아니라 무척 달다. 

옷 구매에도 요령이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은 활동량이 많아 시원한 소재로 된 옷을 입는 편이다. 통기성과 속건성을 갖춘 스포츠 의류는 관리가 편하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여름에도 아이들 옷을 중고로 구매했다. 대나무처럼 쑥쑥 자라나는 시기인 만큼 새 상품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만 모든 상품을 중고로 구입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정에 따라 원하는 소재나 디자인, 사이즈가 없을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새 옷을 살 때 의류 회사를 신중하게 고려한다. 가급적 생산과 유통, 사후관리 단계에서 환경적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려 신경 쓴다. 가령 내가 이번에 구입한 티셔츠는 유기농 순면 소재이다. 제조사의 상품 소개에 따르면 기존의 순면 티셔츠보다 물 사용량의 84%,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6%를 줄였다고 한다.

나와 아내는 <지구를 살리는 옷장>,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같은 도서를 탐독하며 의류 산업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에 경악하고는 했다. 그래서 가급적 옷을 적게 구입하되, 가지고 있는 옷은 잘 관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최근 패스트 패션의 영향으로 의류폐기물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강력 추천하는 영상이 하나 있다. KBS 환경스페셜 다큐멘터리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는 우리의 쇼핑 패턴을 바꿀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KBS 환경스페셜에서 방영됐던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중 화면갈무리. 매년 생산되는 1천억개, 한 해 버려지는 옷은 330억 개라는 방송내용이었다. 다큐 중 소들이 버려진 옷들을 풀처럼 뜯어먹는 모습.
 KBS 환경스페셜에서 방영됐던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중 화면갈무리. 매년 생산되는 1천억개, 한 해 버려지는 옷은 330억 개라는 방송내용이었다. 다큐 중 소들이 버려진 옷들을 풀처럼 뜯어먹는 모습.
ⓒ KBS 환경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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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울 땐 현실 보여주는 환경 다큐... 납량특집 공포물 저리가라

반소매 옷과 더불어 손수건도 여름 외출에 빠져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휴지와 물티슈가 일상화된 시대에 손수건의 요긴함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손수건이야 말로 팔방미인에 가깝다. 땀을 훔칠 때 써도 좋고, 차가운 물에 적셔 피부에 대면 무척 시원하다. 

아이들과 외출하면 입가나 손을 닦을 일이 잦다. 손수건은 부드러운 감촉에 세탁이 용이하여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또 나들이 갈 때 간단한 과일이나 빵을 싸기에도 좋다. 싸 온 그대로 테이블에 펼치면 손수건이 깔개가 된다. 한 번 손수건의 다재다능함을 체감하고 나면 텀블러와 에코백만큼이나 애용하게 되는 것 같다.
 
평소 자주 이용하는 중고 옷 거래 앱으로 구입한 아이들 옷
 평소 자주 이용하는 중고 옷 거래 앱으로 구입한 아이들 옷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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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휴일을 맞아 인근 수목원 계곡에 발을 담그고 왔다. 일체의 캠핑이나 취사, 돗자리조차 허용이 되지 않는 이곳은 여름 주말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시원한 공기를 쐬기 위하여 대형마트에 가는 분도 있지만, 역시 시원한 공기의 으뜸은 자연이다.

그중에서도 골짜기의 서늘한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이 최고다. 인류는 오랜 세월 전기를 쓰지 않고도 가혹한 여름을 이겨냈다. 나무 그늘에서 쉬기와 물에 발 담그기는 현재도 유효한 피서법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했다. 냉수 샤워는 당장 짜릿한 기분은 있지만, 미지근한 샤워는 푹 잘 수 있게 도움을 준다. 한결 개운한 몸으로 온 가족이 오싹한 영상을 보았다. 여름에는 납량특집 공포물이 제격이다. 등골이 시릴 정도로 무서운 영상이면 더더욱 좋다.

최근 세상에서 가장 섬뜩한 콘텐츠는 환경 다큐멘터리다. 특수효과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연출이 굉장하다. 그리스의 섬이 불타고, 거대한 빙하가 쩍쩍 갈라진다. 아름드리나무가 시뻘겋게 타오르더니 숯이 되어버린다. 물고기는 배를 내보이며 수면 위에 둥둥 떠오른다. 종말론의 근거 자료로 쓰여도 손색없어 보였다.

영화라면 '이 영상은 순수한 창작물로서 허구의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라고 자막이 떴겠지만, 환경 다큐멘터리는 진짜다. 가상의 세계를 다룬 영상물 같지만 결코 아니다. 현재 지구에서 벌어지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약간은 당황하며, 때로는 분노하며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노라면 체온이 쑥 내려간다. 아무리 더운 여름밤이라도 효과가 있다. 

폭염 일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기상청이 공개한 '지역별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고탄소 시나리오' 적용 시 2100년 서울의 폭염일수는 110일이다.

이 '미친 여름'의 날짜를 줄일 수 있는 건 지금 당장 여기에서의 액션이지 않을까. 물티슈 대신 얼음물에 적신 손수건을 걸치고 있으면, 적어도 지구가 망했다는 우울감은 사라진다. 개인의 정신적 안녕을 위해서라도 이 정도의 친환경 실천은 꽤 괜찮은 행위다.

태그:#폭염, #여름, #친환경, #무더위, #열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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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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