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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강요된 소멸> ⨉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북 콘서트를 하였습니다. 책 출판을 기념하거나 자랑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어느덧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진 '지역소멸' 담론에 태클을 걸기 위해서입니다.
 
<강요된 소멸> ?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북 콘서트
 <강요된 소멸> ?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북 콘서트
ⓒ 박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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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을 진행한 유명 산악여행작가 이상은씨는 "지역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소멸을 강요당하고 있다"라고 하는 말의 뜻을 물었습니다.

누가 소멸을 강요하는가? 수도권과 대자본을 중심으로 한 국가의 경제성장지상주의가 수도권 일극 집중과 지방의 쇠퇴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생산주의 농정과 개발주의 지역정책이 지역 주도의 내발적 발전을 막고 사람들을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가와 자본의 지배를 거부하는 '유쾌한 반란'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북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저 스스로에게 두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역은 소멸할 수도 없고, 소멸해서도 안 된다'고 비판하면서 나 스스로 '지역소멸'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역소멸'이란 용어 자체가 매우 부정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실제로 지역이 소멸할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언어학자들의 말처럼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고 특정한 이데올로기와 권력을 담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브르디외는 언어가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고, 이 과정에서 이익을 얻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가 갈린다고 하였습니다.
 
<강요된 소멸> ?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북 콘서트
 <강요된 소멸> ?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북 콘서트
ⓒ 박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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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은 국가권력과 자본의 언어이지, 지역과 지역민의 언어가 아닙니다. '지역소멸' 운운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메가시티나 압축도시는 어차피 소멸할 지역에 재정을 낭비하지 말고 될성부른 지역에 투자를 집중하여 집적의 이익을 보자는 것인데, 이는 주변 지역과 마을의 쇠퇴를 가속할 것입니다.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역리더가 '지역소멸'이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역소멸'이라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언어가 심각한 지역 현실을 대변하는 일종의 시민권을 이미 획득한 상황에서 달리 적절한 용어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소멸론의 근거는 지역의 인구감소와 고령화입니다. 인구가 줄고 나이 들어 늙는다고 지역이 소멸할 리 없습니다. 지역소멸을 대신해 오늘날 지역이 처한 심각한 위기를 표현할 적당한 용어가 없을까요. 인구가 줄어도 여전히 지역이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임을 표현할 적당한 용어가 없을까요. 여러분에게 지혜를 구합니다.

청중의 한 분이 '유쾌한 반란'의 뜻을 물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책 제목을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이라고 정하고 나서 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이 '반란' 혹은 '유쾌한 반란'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에 놀랐습니다. 아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반란'을 좋아한다는 말이야.

'유쾌한 반란'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이 말을 사용하여 가장 재미를 본 사람이 김동연 경기도지사라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김 지사는 경기도 지사 선거에서 경기도의 유쾌한 반란을 강조하였습니다. 김 지사는 유쾌한 반란을, 남이 낸 문제에 대한 반란(환경을 뒤집는 반란), 사회가 낸 문제에 대한 반란(자신의 틀을 깨는 반란), 사회가 낸 문제에 대한 반란(사회가 던지는 문제에 답을 찾는 반란)이라는 세 가지 반란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김 지사의 유쾌한 반란은 자신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름대로 의미 있는 제안이지만, '반란'이라 표현하기는 적절치 않은 거 같습니다. '반란'은 본디 기존의 권력이나 체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나 도전을 의미하고,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체제를 전복해야 합니다. 반란은 본질적으로 불온하며 혼란과 갈등을 야기합니다.
 
<강요된 소멸> ?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북 콘서트
 <강요된 소멸> ?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북 콘서트
ⓒ 박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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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사용하기를 꺼립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유쾌한'이란 수식어를 사용하여, 김 지사처럼 반란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고,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혁신하자는 뜻으로 '유쾌한 반란'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란의 본질은 기존 제도나 질서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반란이 반드시 폭력적이거나 파괴적일 이유는 없습니다. '지역소멸'에 대응한 지역리더의 반란은 경제성장주의, 생산주의 농정, 개발주의 지역정책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다만, 이러한 반란이 쉽지 않다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농촌문제와 농민운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할 때 선배들은 10년만 고생하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말을 내가 후배들에게 했습니다. 그렇게, 40년, 5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속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절망하면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세상이 달라질까"하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역리더들은 '반란'을 도모해야 하고, 남다른 희생과 헌신이 요구됩니다. '반란'에 대한 확실한 신념과 의지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버티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는 일이 행복하고 즐겁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습니다. '반란'은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고,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지만, '유쾌한 반란'은 반란을 즐기고 버티며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유쾌합니다.

엄혹한 현실에서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은 점으로만 간신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길 기대하고 기다릴 수 없습니다.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을 조직하여 점을 확산하고 그것이 선이 되고 면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강요된 소멸> ?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북 콘서트
 <강요된 소멸> ? <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 북 콘서트
ⓒ 박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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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리더의 유쾌한 반란'을 도모하고자 하는 북 콘서트를 희망하는 지역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많든 적든 소박한 모임이라도 작은 도움이 된다면 달려가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페이스북에 게재


태그:#지역소멸, #유쾌한반란, #경제성장주의, #개발주의지역정책, #생산주의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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