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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거대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중 하나인 아이쿱생협에서 최근 1년 사이 지역조합 수십 개가 해산했다. 상당수의 아이쿱 지역조합이 단기간에 조합원 수를 300명 미만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거나 해산 총회를 열기 전에 자산을 처분하여 특정 재단법인에 기부하는 모습에 대해 협동조합 관계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은 2023년 말 기준 약 88개의 지역단위 아이쿱생협과 이들의 연합조직인 아이쿱생협연합회 그리고 약 26개의 사업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아이쿱생협은 관련된 기업, 협동조합, 비영리법인 등과 함께 '세이프넷'이란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쿱생협은 사업금액이 2013년 3449억 원에서 2020년 6616억 원으로 늘었을 만큼 급속한 성장을 이룬 협동조합으로서, 비록 최근 3년 동안 사업금액이 감소했지만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진출시키는 등 활동력이 강한 생협으로 평가받는다. 지역사회에서 먹거리,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영향력을 키웠던 협동조합이었기 때문에 아이쿱 지역조합이 갑자기 해산한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림] 아이쿱생협 조합원수와 사업금액 추이. 2022년과 2023년 조합원수는 아이쿱생협과 라이프케어의료사협의 조합원수를 합친 수치임. 자료: 아이쿱생협 각 연도 연차보고서
[그림] 아이쿱생협 조합원수와 사업금액 추이. 2022년과 2023년 조합원수는 아이쿱생협과 라이프케어의료사협의 조합원수를 합친 수치임. 자료: 아이쿱생협 각 연도 연차보고서 ⓒ 이정봉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아이쿱생협 지역조합 해산이 조합원들의 주체적 결정이었는가이다. 조합원이 통제하는 조직으로 소개되는 협동조합에서 조합원이 조합의 중요 의사결정에서 배제된다면 협동조합으로서의 자격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 아이쿱생협은 '조합원 중심주의'를 표방했던 협동조합이기에 아이쿱생협에 '조합원 통제'는 더욱 중요한 쟁점이다.

아이쿱생협 지역조합의 해산 과정에서 가장 먼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지역조합의 자율적인 결정이었나이다. 아이쿱 A지역 생협의 경우 2023년 2월 정기총회에서 사업계획으로 조합원 수를 400명 늘려 전체 조합원 수를 6800여 명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런데 해당 조합은 1년도 안 된 2024년 1월경 전체 조합원이 110여 명인 상태로 해산총회를 열고 조합을 해산했다.

이렇게 조합의 상황이 급작스럽게 변경된 이유를 추적해 보면 아이쿱생협연합회의 정책토론회가 발견된다. 2023년 4월부터 13차례 열린 토론회는 지역생협 간 통합에 대한 이해를 목적 중 하나로 삼았다. 당시 토론회가 끝나고 A지역 생협 이사회에서 "결과가 정해진 토론", "사람과 활동을 무시하는 결정", "토론이라기보다 결과에 대한 단순전달의 느낌"과 같은 평가가 쏟아졌지만, A지역 생협은 결국 해산했다.

아이쿱 지역생협의 해산이 사실상 조합원들의 논의 이전에 결정됐다고 의심하는 이유는 또 있다. 아이쿱 B지역 생협 역시 2023년 초에 조합원 확대를 사업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B지역 생협 이사장은 같은 해 6월 초 권역별 간담회에 다녀와 '지역, 조합원 수 자산 규모 등을 고려하여 ○○아이쿱을 중심으로 통합한다'고 이사회에 보고했다.

그리고 얼마 후 B지역 생협 이사회는 '조직통합 결의의 건'을 통과시키고, 동시에 조합원의 신규 가입을 중단시켰다. 조합 해산에 대한 최종 결정은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할 수 있는데, 총회가 열리기 전에 지역생협 이사회가 새로운 조합원을 받지 않는 결정까지 내린 것이다.

'소속 변경' 과정에서 조합원의 권리 상실

많은 아이쿱생협 지역조합 이사회는 조직통합을 의결한 후 조합원에게 이를 설명한다는 방식을 취했다. 그런데 지역생협 이사회는 평조합원이 조합 해산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를 진행하기 전에 "소속 변경"을 안내했다. '소속 변경'은 다름 아닌 기존 조합 탈퇴 및 신규 조합 가입이라는 행위를 의미한다.

B지역생협의 경우 조합원에게 '소속 변경'을 권유하기 전에 해당 조합이 해산하는 계획이 있다거나 소속 변경 후 조합원으로서 권리가 상실될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문제 제기를 받았다. 즉 조합이 해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해 투표할 권리가 없어지고 조합의 잔여재산에 대한 권리가 상실된다는 점을 명확히 알리지 않은 것이다.

아이쿱 지역생협에서 수천 명의 조합원이 순식간에 탈퇴한 것은 '소속 변경'의 의미가 분명히 전달되지 않았던 점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점은 아이쿱 지역생협이 조합원에게 소속 변경을 독려해 조합원 탈퇴가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조합 해산의 근거로 작용한 점이다.

예를 들어, 아이쿱 C지역 생협의 이사장은 해산총회에서 조합원이 300명 미만이 되어 조합 해산을 결의한다고 밝히고 있다. 생협법 제82조의 '설립인가 취소'의 기준을 활용한 건데, 이는 관계 당국이 행정조치를 하기 위한 근거이지 조합 해산의 이유로 삼을 수 있을지는 논란이 될 수 있다. 즉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설립 목적을 이루었거나 반대로 이루기 어려울 때 주체적으로 해산을 결정할 수 있지만, 아이쿱 지역생협의 해산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조합 재산 처분 논란

아이쿱생협 지역조합의 해산 과정에서 줄어든 것은 조합원 수만이 아니다. 조합 해산총회를 앞두고 조합의 재산 역시 크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쿱생협 지역조합의 재산 처분 형태는 상당히 유사하다. 지역조합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처분하거나 임차보증금을 회수해 마련한 돈을 자연드림유기농치유연구재단(이하 '치유연구재단')에 기부했다. 치유연구재단이 2023년 아이쿱 지역생협으로부터 받은 기부액은 약 100억에 이른다.

아이쿱생협 지역조합의 재산 처분은 이사회의 권한 범위에 대한 논란을 낳고 있다. 생협법은 이사회의 의결사항 중 하나로 '기본자산의 취득과 처분'을 두고 있는데, 기본자산의 범위를 정하지 않고 있다. 개별 조합이 정관에서 기본자산의 범위나 규모를 정하지 않은 경우 이사회는 조합 자산 처분에 별다른 제약이 없게 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아이쿱생협 지역조합 이사회는 기본자산 처분이 이사회의 의결 사항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생협법은 조합원이 총회에서 '사업계획 및 예산의 승인'과 '결산보고서의 승인'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아울러 '잉여금과 손실금의 처리에 관한 사항'을 정관에 담도록 정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총회가 예산, 결산, 잉여금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고, 이사회는 총회에서 결정한 범위 내에서 집행해야 한다. 그런데 총회를 거쳐 재산 처분을 결정한 아이쿱생협 지역조합은 일부만 확인되고 있다.
 
 아이쿱 생활협동조합
아이쿱 생활협동조합 ⓒ 아이쿱
 

한편 잉여금으로 조성된 자산을 '기본자산의 처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경우, 이사회는 자본금을 제외한 모든 자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기본자산의 취득과 처분"은 조합원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행위인데, 기부는 조합 자산이 외부로 유출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기본자산의 처분'에 포함하기 어렵다.
  
해산을 앞둔 상황에서 재산 처분은 전체 조합원이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이쿱 지역조합 이사회는 재산을 처분했고, 이 과정에서 기이한 형태를 보이기도 했다.

아이쿱 D지역 생협의 경우 이사회는 해산을 앞두고 2023년 9월경 보유하고 있던 E기업의 주식을 한 주당 100원에 매도했다. E기업은 아이쿱생협 관련 비상장 주식회사이다. E기업 소속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기업 주식을 약 7000원에 매입했고, 이를 다시 비슷한 수준의 가격으로 매도하려고 했던 시기에 D지역생협은 주식을 이해할 수 없는 가격에 처분했다.

해산 총회를 마친 아이쿱 지역조합은 현재 청산 절차를 진행 중이다. 법적으로 해산 및 청산이 마무리되어 60여 개의 아이쿱 지역조합이 사라지더라도 해산 과정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사회가 조직 통합을 결정한 행위, 해산을 앞두고 재산을 처분한 행위, 1주당 100원이라는 가격으로 거래한 행위 등이 정당했는가에 대한 문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쿱 지역생협 해산 과정에서 조합원의 참여가 드러나지 않았던 모습은 법적 기준에 앞서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아이쿱생협의 근간 조직인 지역조합이 조합원과 긴밀한 소통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해산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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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영역의 노동 및 운영에 관한 문제를 조사연구하고 있습니다. 문의 및 제보 selc20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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