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돈(자료사진).
 돈(자료사진).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결혼하기 전에 나는 만기적금을 타 본 적이 없었다. 스무 살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지만 돈을 모으는 게 어려웠다.

대학 다닐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글세를 냈고, 직장을 구한 후에도 사글세와 생활비를 혼자 해결했다. 돈은 언제나 궁했다. 적은 금액이라도 적금을 붓고 있으면 집에 언제나 일이 터졌다. 자기 계발이니 여행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이었다. 당장 찬바람이 불면 살 집을 구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시댁은 자수성가형이었고, 시어머님의 경우엔 한 달에 한번 적금만기가 돌아왔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보험을 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신구간(제주도에서 해도 좋다고 여겨지는 기간)이 되면 집을 구하느라 쩔쩔맸던 이십 대의 내가 떠오른다. 내 집이 있음에 감사드린다. 

사는 것은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돈에 끌려다닌다. 돈이 없을 때는 돈을 모으느라 쩔쩔맸다. 결혼하고 생활비를 받는 지금도 여전히 돈의 노예로 살고 있다. 달마다 카드값을 걱정하면서 카드를 긁는다. 모아 놓은 돈은 없고, 어디서 돈뭉치가 떨어지지 않나 하늘만 쳐다보는 꼴이다. 맘 편하게 나는 돈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하며 외면하고 싶지만 그것도 안 된다. 

남편은 꼼꼼한 성격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남편은 모든 일정을 완벽하게 짜 놓고도 불안해서 가는 날까지 잠을 못 자는 사람이다. 나는 반대로 어떻게든 되겠지, 한다. 없으면 가서 사면 된다. 비행기표와 호텔만 있으면 된다. 가면 다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남편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설레서 잠을 못 잔 적은 있지만, 걱정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은 없다.

누구보다 영리하고 똑똑했던 남편이었는데 깜빡하는 날이 잦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사막에 둘만 떨어져도 남편만 있으면 살 자신이 있었는데, 요즘 같으면 내가 남편을 건사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엄마가 최고라고 말하는 우리 집 세 남매를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일단 카드값을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한다. 그동안 나의 소비 패턴을 보면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카드로 샀다. 카드도 빚이다. 쓰기 좋고 죄책감이 덜할 뿐 엄연한 빚이다. 빚으로는 소도 잡아먹는다는 조상님의 말씀대로 나는 당장의 만족을 위해 빚을 마구마구 생성했다. 남편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하늘 같던 남편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한 달에 내게 주어진 돈은 일정하다. 그 안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줄일 구멍이 없다. 방학이라 식비가 장난 아니게 들어간다. 이번달에는 큰아이 매직과 안경, 내 염색과 파마를 위해 미용실에 큰 지출을 해야 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달에 사려고 했던 구두를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꼭 갖고 싶은 구두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예전 같으면 고민 없이 구두를 샀다. 하지만 나는 달라지기로 결심했고, 실행에는 고통이 따른다.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을 믿어보자. 

일단 핸드폰에 깔려 있는 은행어플을 열었다. 그리고 6개월짜리 적금을 들었다. 한 달에 오만 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당근마켓에서 아이들 레고를 판 돈 오만 원이 들어왔다. 다른 데 쓰기 전에 얼른 이체를 했다. 만기가 되면 그때 구두를 사야지. 그렇게 마음 먹고 나니 뭔가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통장에서 오만 원이 빠져나갔다. '뭐지?'
다다음 날 다시 통장에서 오만 원이 빠져나갔다. '어? 뭐야?'

혼자서 얼굴이 빨개졌다. 이게 아닌데? 

서둘러 계좌정보를 확인했다. 맙소사. 내가 가입한 적금은 매일적금이었다. 그래서 가입금액이 1000원부터 10만 원이었구나. 그제야 이마를 쳤다. 은행은 아무 잘못도 없었다. 나는 오만 원씩 매일 적금을 들었던 거다. 서둘러 적금을 해약했다. 그리고 다시 적금에 가입했다. 꼼꼼하게 금액을 확인했다. 

어제부터 내 통장에서 2,000원씩 빠져나간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내친김에 2,000원짜리 매일정기적금을 또 하나 들었다. 아침 8시면 2,000원씩 빠져나간다는 문자가 두 개 온다. 

오늘고 커피숍에서 커피 마실까? 하다 참았다. 생각해 보면 꼭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습관적으로 마시다보니 드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조금만 참으면 될 것들을, 끝내 못 참고 소비하는 것이 예전의 내 모습이었다. 부자들은 푼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었다. 작은 것도 제대로 못하면 큰 일은 더더욱 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나는 조금 현명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글로 남겨두었으니 6개월 후에 또 하나의 글을 쓸 수 있다. 그때 쓰게 될 글이 반성문이 아니길 바란다.

또 하나의 깨우침. 많은 경우 기계는 잘못이 없다. 굳이 원인을 찾으라면 제대로 읽지 않고 멋대로 손가락을 누르는 내가 잘못이다. 천천히 제대로 읽으면 안 될 것이 없다.

태그:#매일정기적금, #티끌모아태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제주토박이, 세 아이의 엄마지만, 밥하는 것보다 글쓰는 게 더 좋은 불량엄마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