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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닭볶음면은 그날 더 입고될 예정이라는 판매직원의 설명이다
▲ 세계음식 섹션에 한국라면 불닭볶음면은 그날 더 입고될 예정이라는 판매직원의 설명이다
ⓒ 김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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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덴마크 수의식품청(DVFA)이 삼양식품의 매운 불닭볶음면(아래 불닭면) 3종에 대한 리콜(회수) 명령을 내려 화제가 됐다. 해당 제품에 함유된 캅사이신의 함량이 너무 높아 급성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내가 사는 영국에서는 어떨까. 불닭면이 계속 팔리고 있는지 궁금해 마트에 가보니, 평소와 다름없이 잘 보이는 매대에 자리 잡아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 판매직원에 물어보니, 불닭면은 그날 더 추가로 입고될 예정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중학생 딸아이를 통해 불닭면 먹은 친구 얘기를 들어봤지만, 정작 나는 먹어 본 적이 없다. 판매금지를 할 정도로 맵다고? 얼마나 매운지 나도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얼마나 맵길래... 직접 먹어봤다

오랜 해외 이민 생활, 뜨끈하고 매운 한국의 MSG맛이 그리울 때면 한 번씩 찾아 먹는 것이 라면이다. 난 그 맛을 알고 있기에 매운 불닭면 특유의 맵싸한 MSG 향이 올라오자 우선 침샘부터 자극된다. 포장 봉지 안에 일반 라면 스프 대신 벌건 소스가 들어있는데, 꼭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주인이 닭꼬치에 발라주던 새빨간 소스 같기도 하다.

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유튜브(Youtube) 불닭면 관련 영상과 릴스를 훑어본다. 청소년 유튜버들이 먹어보고는 눈물 콧물 흘려가며 맵다고 호들갑이다. 실제 틱톡에 올라온 불닭 관련 태그 게시물이 3억 6000만 건, 유튜브에서도 불닭 관련 콘텐츠가 수 억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라고 하니 선풍적인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불닭 챌린지(Buldak challenge)'로 검색하면 나오는 외국 청소년들의 영상들(유튜브 화면갈무리).
 '불닭 챌린지(Buldak challenge)'로 검색하면 나오는 외국 청소년들의 영상들(유튜브 화면갈무리).
ⓒ 유튜브 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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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내 앞에 놓인 불닭면 시식 시간이다. 면발이 기존 국물라면보다 굵다. 파스타나 현지 컵누들에 익숙한 영국인들에게 국물 면보다는 이런 볶음 면 요리가 더 익숙할 것 같다.

시뻘건 색감의 면을 눈으로 보고, 매운 냄새를 코를 맡는다. 침샘은 이미 분수가 터진 상황. 불닭볶음면을 한 젓가락 크게 떠서 내 입안에 가득 채운다. '이 정도면 먹을 수 있다'는 첫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매운 '후 통증'이 인다.

찬물을 마셔보지만 왠지 매운맛을 더 일으키는 것 같다. 예전 매운 닭발 먹던 시절 후루룩 마시던 쿨피스가 간절하지만, 주위에 없으니 대신 우유를 한 잔 부어 벌컥 마신다.

영국에서 매운 맛은

사실 영국 내 전통음식에는 고추보다는 향신료가 더 자주 쓰인다. 서유럽인들은 향신료로 내는 매운맛에 더 익숙하다. 실제 영국의 전통 머스터드(Mustard)는 생각보다 제법 맵다. 양 조절에 실패했다가는 일본의 간 고추냉이, 즉 와사비(Wasabi)처럼 코가 뻥 뚫리고 눈물이 찔끔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주로 고기 파이나 스테이크 먹을 때 잉글리시 머스터드를 포크 끝으로 조금 찍어 발라 먹는다. 그러면 그 매운맛 덕에 느끼하거나 고기 특유의 누릿함 없이 맛있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매운맛은 단연 인도 카레에서 찾을 수 있다. 강황과 같은 다양한 향신료, 생강, 양파에서 나는 매운맛이다. 인도 본토 음식에 비해서
는 크림이나 코코넛을 넣어 매운맛을 중화시킨 편이지만, 은근하게 맵다. 

요즘 영국 내 '힙한' 상점들의 경우에는 익숙한 초콜릿에 칠리맛을 가미한다거나 잼보다는 과육식감을 살린 전통 과일 처트니(Chutney)에 칠리를 넣어 과일의 달콤함과 칠리의 매콤함을 접목시키기도 한다. 훈제한 고추를 가루로 만들어 완성된 음식에 살짝 뿌려 먹기도 한다.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전통 음식에 고추 매운맛이 가미되고 있다
▲ 전통 처트니에 고추를 활용해 맛내기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전통 음식에 고추 매운맛이 가미되고 있다
ⓒ 김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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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도 가능한 영국의 전통 펍(Pub), 술집이라면 코리안 BBQ 치킨 메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양념치킨을 본떠 만드는데, 치킨에 고추장 소스를 발라 나온다. '단짠(단맛+짠맛)' 매운맛이 새로운 건지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스페인 타파스나 멕시코 타코 음식에 쓰이는 현지 칠리(Chilli)를 맛보면, 가끔 한국 땡고추 이상으로 매운 경우도 많다. 입맛이 보수적이라는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요즘은 다른 세계인들과 마찬가지로 매운맛이 인기다. 

고추에 함유된 캅사이신(capsaicin, 캡사이신)은 몸의 자연 진통제인 엔돌핀 분출을 자극한단다. 매운 음식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먹는 순간, 신나고 재미있는 느낌을 선사한다. 

매운맛은 혀를 자극해 침샘 분비를 촉진시키고, 달고 짜고 시고 쓴 맛 감각에 매운맛을 더해 먹는 재미를 더한다. 매운맛은 체온을 올려 땀을 배출하고 신진대사를 촉진,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일부 도움을 주기도 한다.

반면 부작용도 있는데, 위산을 과다 분비시키고 심장에 자극을 줄 수 있다. 속쓰림, 설사 등 소화기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일부지만 매운 맛에 쇼크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매운맛이 자신에게 맞는지 단계별로 경험해 보는 주의가 필요하다. 

한편, 외국에선 무분별한 SNS 매운맛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앞서 불닭면을 '판매금지'한 덴마크의 경우, 덴마크 식품청이 회수 조치를 하면서 발표한 내용을 다시 한번 찾아 읽어본다. 어린이와 노약자 그리고 건강 취약계층이 이를 섭취하는 경우, 이 제품의 매운맛이 쇼크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2023년 9월 미국에서 14살 청소년이 매운 토르티야 칩을 먹은 후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례가 보도된 바 있다. 부검 결과 해당 페퀴 칩(chips)에 함유된 다량의 캅사이신이 쇼크에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이 소년의 사망 사고 직후 페퀴 칩 제조사는 해당 제품을 시장에서 전량 회수하고 판매 중지를 발표했다.

당시 제조사는 세계에서 가장 매운 두 가지 고추를 사용한다고 선전하고 있었고, 청소년들 사이에서 틱톡(Tik Tok) '페퀴 칩 챌린지'가 유행 중이었다.
 
한국식 치킨 버거, 한국식 매운 양념 치킨 등이 영국 외식시장에서 유행중이다.
▲ 펍 음식에 Korean이 들어간 메뉴가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식 치킨 버거, 한국식 매운 양념 치킨 등이 영국 외식시장에서 유행중이다.
ⓒ 김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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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조치이긴 하나 기업은 오히려 좋아 

영국 식품기준청(FSA), 의약품 및 건강식품관리청(MHRA)의 경우 허가 및 안전 제도가 무척 세분화되어 관리되고 있다. 알레르기 반응, 임상실험 등의 과정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비단 영국만이 아니라 EU 규율이 그런 경우가 많다. 

이번 덴마크의 불닭면 회수 조치는 '식품의 안전성'이 아니라 '매운맛' 때문이라는 점에서 전례 없는 조치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유럽문화에서 정부가 나서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소 의외의 결정이기도 하다.

이번 덴마크의 불닭볶음면 회수조치 발표 이후 '불닭(Buldak)' 키워드가 구글 검색 트렌드 기준 검색량 최대를 기록했다. 틱톡(TikTok), 유튜브 등 SNS에서는 더욱 인기다. 수출량의 증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번 판매금지 조치로 삼양식품은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덴마크의 불닭볶음면 회수 조치 관련, 삼양식품은 국내 공인기관을 통해 해당 제품의 캅사이신량을 측정한 뒤 지난 19일 덴마크 수의식품청에 판매금지조치에 대한 반박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진행 과정을 통해 유럽 시스템이 어떻게 해외, 특히 아시아 음식들을 받아들이는지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하다.

K문화가 다방면에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 식문화가 세상에 소개되고, 언제나 새로운 맛을 찾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다. 이번 불닭볶음면 리콜 조치는 한식이 유럽에 수출되면서 겪는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 사이트에도 게재됩니다.


태그:#불닭볶음라면, #덴마크판매금지조치, #한식의세계화과정, #노이즈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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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세반하별 입니다. 영국 거주중으로 현지 생생한 소식을 통해 여러분과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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