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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내년이면 끝... 여름휴가 일정으로 추천합니다 https://omn.kr/294cn]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곳을 일컫는다. 일상에서는 '막장=끝장'이라는 의미와 혼용하여 '막장 드라마'와 같이 '갈 데까지 간 상태'나 '거의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막장은 새로운 시작점이기도 하다. 갱도가 끝나는 막다른 곳이지만 그곳이 광물을 캐내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막장으로서는 억울할 만한 일이다. 그러니 막장이 꼭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일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막장이라는 말을 주로 '갈 데까지 간 상태'와 같이 부정적인 말로 쓰는 이유는 그 말속에 고달픈 광부들의 삶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석탄산업이 번영을 누리던 시절에 탄광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 사람들 속에는 수많은 사연을 가진 이들이 섞여 들었다.

수배를 피해 온 운동권도 있었고, 깡패나 범죄자들도 섞여 있었다. 또한 도시 생활의 낙오자도 있었을 것이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상처 입은 이런저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갱도 끝 막장의 삶이었으니 막장이라는 말 속에 갈 데까지 흘러온 인생의 한탄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삼척 도계탄광 광부들
▲ 마지막광부들 삼척 도계탄광 광부들
ⓒ 한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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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산업이 경제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했지만, 그 속에는 폭력과 인격 침해 등 우리 시대 모든 아픔이 들어 있어요."

삼척 도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권병성 국장의 말이 생생하다. 광부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막장 안에서 진폐증을 유발하는 석탄 가루를 마시며 목숨을 걸고 가족의 생계를 캐냈다. 특히 갱도 안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폭압적인 갱도 문화로 인해 무차별 폭력이 비일비재했었다고 한다. 광부 안전관리라는 핑계로 완장을 찬 조장은 20대라도 40,50대 광부들에게 반말과 욕설은 기본이고 조인트(정강이를 참)를 까는 것이 정당화 되었다고 한다.

"광부들은 자식들이 탄광으로 찾아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어요."

마지막 탄광 견학 중 스치듯 던진 권 국장의 말이 가슴을 아릿하게 했다. 이제 이런 막장이라는 말도 '염병'이라는 말처럼 하나의 옛말이 될 운명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 석탄을 캐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탄광인 국내 최대 석탄 생산지 삼척 도계 탄광마저도 2025년 폐광될 예정이다.

내년이면 모든 막장이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막장을 닫는다고 삼척 도계가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탄광이 있기 전에도 사람들이 살아왔고 탄광이 문을 닫아도 사람들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노인들만 남은 사택들: 연탄보일러가 눈에 들어 온다.
▲ 도계 광부 사택 이제 노인들만 남은 사택들: 연탄보일러가 눈에 들어 온다.
ⓒ 한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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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 도계읍은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접경 지역이다. 휴가철 사람들이 몰리는 동해안이지만 강릉, 동해보다 훨씬 아래쪽에 위치하고, 포항이나 영덕보다는 위쪽에 있어 수도권이나 충청, 전라권에서 찾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러니 무장 공비들도 휴전선보다 한참 남쪽인 그곳 삼척, 울진지역으로 침투했을지도 모르겠다. 삼척 도계 사람들은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지역은 무장 공비, 석탄 이런 것 말고는 딱히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접근성도 떨어지고 이제 탄광마저 문을 닫게 되면 이곳은 잊힌 곳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곳에 문화예술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1회 때부터 도계전을 기획하고 이끌어온 이종헌 선생(옻뜰 대표)이다. 이종헌 선생은 석탄에 기대 삶을 꾸려가던 막장 도시를 다양한 문화예술이 꽃피는 곳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 시작의 씨앗이 바로 작년부터 열린 도계전이다.

그런 의미로 그 씨앗의 싹을 틔울 이번 제2회 도계전은 의미가 크다. 제2회 도계전은 문화예술이 지역의 산업과 지역민들과 함께 지역을 살려내는 상생의 역할을 찾기 위해 기획되었다. 그런 취지를 살려 이번 제2회 도계전도 주)착한농부들이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는 폐교(소달중학교)를 전시회 공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상생이 곧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이번 도계전의 주제가 '끝남과 시작'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계전 포스터
▲ 제1회(좌)와 2회(우) 도계전 포스터 도계전 포스터
ⓒ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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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소설가인 아나톨 프랑스는 '여행은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여행은 단지 보고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낯선 것들과 만나며 그간 가졌던 생각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여정이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도계를 응원하며 상생의 의미로 올여름 휴가지로 마지막 막장 도시 도계를 추천한다. 낯선 도시 삼척 도계를 방문해 보면 그동안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볼거리]

1. 도계읍 긴잎느티나무(천연기념물 95호) : 도계에 가면 도계를 지켜온 정령과 같은 느티나무가 있다. 그동안 전국의 마을을 지키는 수백 년 되었다는 느티나무를 많이 보았는데 그중에 손꼽히는 크기와 신비로움을 가진 나무였다.

삼척 도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권병성 국장의 설명에 의하면 이 긴잎느티나무는 수령이 1000~1500년 정도로 추정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미 도계에는 석탄산업 이전부터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도계를 지켜온 이 느티나무는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높이는 30m, 둘레는 9.1m에 이르고 나무 몸통은 속이 비어 있어 오랜 세월 살아온 연륜을 느낄 수 있다. 도계사람들은 매년 음력 2월 15일에 이 나무 앞에서 풍년과 무재해를 기원하는 영등제를 지낸다.

2. 막장 문을 닫는 막장 도시 도계읍 : 도계읍 도시 전체는 탄광도시의 전형이다. 수많은 광부가 거주하던 사택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으며,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급수탑도 그대로 남아 있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셈이다. 한적한 도계 시내를 천천히 돌아보면 과거 영화를 누렸던 흔적과 폐광을 앞두고 쇠퇴해 가는 모습들이 섞여 있어 여러 감정을 일으킨다.
 
도계를 지켜온 긴잎느티나무(좌)와 도계읍(우)
▲ 천연기념물 95호, 긴잎느티나무와 도계 도계를 지켜온 긴잎느티나무(좌)와 도계읍(우)
ⓒ 전병호,한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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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1.물닭갈비 : 삼척 도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권병성 국장이 추천한 도계 추천 음식은 물닭갈비였다. 춘천 닭갈비는 알고 있지만 물닭갈비는 처음 듣는 음식이었다. 닭갈비에 국물이 있다고 설명하여 닭도리탕이나 닭볶음탕 정도로 생각하며 음식을 기다렸다.

일반 닭갈비처럼 나왔는데 특이한 점은 닭 뼈로 우려낸 육수를 부어 끓여 먹는 것이었다. 닭갈비 전골쯤으로 표현하면 될 음식이었는데 내가 먹어본 닭요리 중 손꼽히는 맛이었다. 도계읍에는 물닭갈비집이 4곳이 있다고 하는데 집마다 맛은 조금씩 다르지만 4곳 모두 맛집이라고 한다.

[감상과 생각거리]

1. 제2회 도계展 -끝남과 시작
장소: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소달중학교(폐교)
기간: 2024년 6월 17일~7월 17일
문의: 삼척 도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033-541-7723
주최·주관:옻뜰(ott ddeul), 사)한국옻칠협회
 
1. 광부, 진창윤작: 천 위에 아크릴
2.도계, 박경열작: CG(3D Animation)/해상도(1920*1080) 4분
▲ 제2회 도계전 작품 소개 1. 광부, 진창윤작: 천 위에 아크릴 2.도계, 박경열작: CG(3D Animation)/해상도(1920*1080) 4분
ⓒ 진창윤, 박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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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계전, #삼척도계, #탄광도시, #끝남과시작, #이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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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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