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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 사이에 '한국 언론, 이대로 괜찮은가?'를 준엄하게 묻는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제1야당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애완견 언론' 발언(14일),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17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인 해외연수 대폭 증원 발표(17일)가 그것들입니다.

언뜻 보면, 세 사건은 전혀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입니다. 상호 인과관계라든가 사건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 사건의 배후를 감싸고 있는 공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세 사건은 뚜렷한 하나의 지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한국 언론의 타락'입니다.

왜 그런지 차근차근 따져봅시다.

애완견 발언의 본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6월 14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법정으로 들어가기 전 이재명 대표는 '대북송금 사건은 희대의 조작사건으로 결국 밝혀질 것'이라고 말한 뒤 언론에 향해서도 '진실을 보도하기는커녕 마치 검찰의 애완견처럼 주는 정보를 받아서 열심히 왜곡 조작 하고 있지 않느냐. 언론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6월 14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법정으로 들어가기 전 이재명 대표는 '대북송금 사건은 희대의 조작사건으로 결국 밝혀질 것'이라고 말한 뒤 언론에 향해서도 '진실을 보도하기는커녕 마치 검찰의 애완견처럼 주는 정보를 받아서 열심히 왜곡 조작 하고 있지 않느냐. 언론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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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가 그냥 '애완견 언론' 발언을 한 게 아닙니다. 배경이 있습니다. 쌍방울그룹의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제3자 뇌물 수수 혐의로 추가 기소된 것을 기화로 '검찰이 흘리는 것을 또박또박 받아적기만 하는 법조기자들의 보도 행태'를 '검찰의 애완견'과 같다고 분통을 터뜨린 겁니다.

한국의 주류 미디어들이 검찰이 이 대표를 옭아 넣기 위해 피의자를 한데 불러놓고 세미나를 했다는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의 주장, 쌍방울이 주가조작을 위해 북과 접촉했다는 국정원의 보고서, <뉴스타파> 등의 쌍방울 비리와 조작 행위 보도 등을 깡그리 무시·외면·축소하고 있는 주류 언론의 보도 태도를 언론계의 관행어를 사용해 꼬집은 게 본질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언론계는 제1야당 대표의 지적에 답을 하기보다 떼를 지어 반격에 나섰습니다. 진보와 보수 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똘똘 뭉쳤습니다. '또 하나의 신문'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 아래 한국 언론계의 고질인 권언유착을 비판하며 출범한 <한겨레>마저 비판 대열에 가담한 것은 충격입니다.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 현업단체는 깃발을 들었습니다. 이들은 이 대표의 발언을 '조롱' '비하' '협박' '저급' '부적절' 등 다양한 용어를 동원해 난타하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 대표도 급기야 18일 자신의 발언이 "언론계 전체로 오해하게 했다면 유감"이라고 한 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가 끝난 것일까요. 이 대표가 유감이라고 한다고 해서, '애완견'이라는 소리를 듣는 한국 언론이 자동으로 '감시견'으로 둔갑하는 것은 아닙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치우게 했다고 달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한국의 언론계가 이 대표의 '애완견' 발언에 발끈할 정도로 자신이 있다면 그것을 기사로 보여주면 됩니다. 최근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뉴스 리포트 2024>가 보여주듯이, 시민들은 한국의 언론보도를 매우 불신하고 있습니다. 진실과 공정 보도를 통해 권력을 감시한다는 언론의 역할을 방기한 채, 비판은 참지 못하겠다고 으르렁대는 한국 언론을 '타락'이라는 말 외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난감합니다.

신학림 구속영장 청구가 의미하는 것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2023년 9월 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조사를 받기 위해 조사실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2023년 9월 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조사를 받기 위해 조사실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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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사건과 관련한 검찰 수사와 이와 관련한 언론의 보도입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이준동 검사)는 17일, 김만배과 신학림 두 사람에 대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배임수재 및 증재, 청탁금지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공갈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혐의는 거창하고 여러 가지지만, 핵심 혐의는 이들이 모의해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보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대선 개입 여론 조작'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한 지 무려 10개월 만입니다. 배후를 찾는다고 수사를 착수했으면서, 영장에는 배후를 김만배씨로 적어놓은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태산이 떠나갈 듯 요동첬으나, 뛰어나온 것을 쥐 한 마리뿐)'의 결말입니다.

이 사건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의 공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칼럼을 썼다가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특파원 사건과 닮은 꼴입니다. 당시 가토 특파원은 결국 재판에서 무죄가 됐고, 그 사건으로 일본에서 언론자유 투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덤으로 '한국은 언론자유가 없는 나라'라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김만배-신학림 사건도 그런 전철을 따라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김만배-신학림 사건은 가토 특파원 사건 못지않게 정권이 언론자유를, 자신의 입맛에 거슬리는 비판 언론을 탄압하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기자와 언론사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수사가 벌어진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주요 언론은 이 사건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야당 대표의 '애완견' 발언에는 득달같이 덤벼드는 언론 현업단체들도 대선후보 검증 보도에 칼을 들이댄 검찰의 전대미문의 언론탄압에는 입을 닫고 있습니다. 주요 미디어들도 문제의식 없이 아주 담담하게 검찰의 영장 청구 사실만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한겨레>만 언론탄압의 관점에서 접근했을 뿐입니다. 이것 또한 언론 스스로 발등을 찍는 방관 행위이자 타락입니다.

언론인 해외연수 대폭 증원, 까칠한 질문 안 한 대가?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5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통령의 저녁 초대'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5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통령의 저녁 초대'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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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내년에 언론인의 해외연수, 교류 인원을 160명으로 늘리겠다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발표입니다. 무려 올해보다 100명이나 늘어난 파격적인 숫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4일 대통령실 출입 기자를 초청한 '김치찌개, 계란말이 만찬'에서 약속한 지 25일 만에 나온 '대통령의 하사품'인 셈입니다. 그것도 '내돈내산'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생색내기입니다.

만찬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참석 기자들 앞에서 "(기자들 해외연수의) 선발 인원을 내년부터는 세 자리로 만들어 보자"라고 말했고, 기자들은 환호와 박수로 환영했다고 합니다. 당시 참석 기자들은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거부, 채 상병 사건 때의 격노 문제, 물가고 등 긴급한 국정 현안에 관해서는 한마디의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의 해외연수 대폭 증원이 그때 까칠한 질문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답례품이라는 비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까닭입니다.

마치 전두환 정권 때 한쪽에서 수백 명의 언론인을 내쫓으면서 언론사와 기자들에게는 각종 감세 및 지원 혜택을 했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언론재단에서 운영하는 기사 데이터베이스 '빅카인즈'로 검색해 보니 주요 언론사들은 이런 점이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널리 알려져 경쟁자가 많이 생기게 될 것을 걱정했는지 이와 관련한 보도를 전혀 하지 않았더군요. 이 또한 한국 언론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선언은 이런 유명한 문구로 시작합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이 문장을 빌려 지금 한국 언론계의 현실을 표현하자면, "하나의 유령이 한국의 언론계를 배회하고 있다. 타락이라는 유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태그:#이재명, #애완견언론, #언론인해외연수, #신학림구속영장, #한국언론의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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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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