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본 최대 습지로 꼽히는 '구시로 습지'는 몇천 년 전 해수면이 후퇴하며 토탄이 많이 섞인 습지와 무리 지은 호수가 남아 형성되었다. 잔잔한 구시로강이 이곳을 가로지르고 있다. 198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일본에서는 제28번째 국립공원이다. 1980년 일본이 람사르 협약에 가맹할 때에 최초로 등록한 습지이기도 하다. 일부가 농지화 되는 등 개발도 행해졌지만 1967년 습원 그 자체가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그 때문에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지역적인 경관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전해진다.

지난 4월 25일 구시로 습지를 다녀왔다. 구시로 전망대로 안내한다는 말에 한국과 같은 건물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전망대는 그야말로 자연의 일부와 같은 난간과 평평한 공터가 전부였다. 자연의 위대한 모습이 중요할 뿐, 전망대라는 시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공사 중인 대전보문산전망대의 휘황찬란한 건물 위주의 조감도와는 사뭇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대전도 보문산의 실체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수수한 구시로습지 전망대의모습
 수수한 구시로습지 전망대의모습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거대한 규모의 일본 구시로 습지, 전망대는 초라했지만

실제로 구시로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습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20여 년 환경운동을 하는 동안 우리나라의 많은 습지를 다녔다. 낙동강하구, 순천만, 천수만, 금강하구 등 수많은 습지에 가봤지만 규모로는 이 곳이 최대였다. 이렇게 넓은 습지를 나는 본 적이 없다.

내가 본 가장 큰 천수만 습지 전체 면적 1만5409ha(헥타르)와 비교해도, 구시로 습지는 1만8290ha로 더 넓다. 일본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습지라고 한다. 또한 구시로 습지는 자연 상태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고, 이렇게 큰 습지를 관람하기 위한 시설은 전망대가 전부다. 국내의 철새탐조대나 전망대와 비교하면 초라해 보이지만, 자연을 보전하는 면에서는 오히려 더 좋은 전망대라고 느낄 수 있다.
  
습지를 흐르는 구시로강과 배후습지의모습
 습지를 흐르는 구시로강과 배후습지의모습
ⓒ 구시로강

관련사진보기

   
구시로 습지의 모습(사진에 다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구시로 습지의 모습(사진에 다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자연을 최대한 보전하고 있는 구시로 습지는 두루미가 번식하는 지역이다. 드넓은 초지와 습지를 토대로 300여 쌍의 두루미가 번식한다. 전망대에서는 이따금 비행하는 두루미를 볼 수 있다고 했지만, 너무나 멀리 있어서 두루미를 가까이 볼 수는 없었다. 

번식하는 두루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경의로운 일이다. 지금은 번식 시기이고 멀리서나마 두루미가 번식하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앉아서 알을 품는 두루미를 만난 것만으로 구시로 습지는 나에게 모든 역할을 다했다. 구시로 습지에는 2000여 종의 동물들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습지에서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참수리를 만났다. 멸종위기종인 참수리가 남아있는 곳은 많지 않다고 한다. 두루미와는 다르게 참수리는 북상하여 번식하지만, 늦은 시기까지 볼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이다.

구시로 습지에 형성된 저수지에는 큰고니와 댕기흰죽지 등 오리류들이 물 위에 노닐고 있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곤충류와 식생들이 유지되어 있었고, 약 20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한다. 잘 보전된 습지 덕에 많은 관광객들은 이곳을 찾는다. 잘 보전된 생태 관광지가 된 것이다.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국내 습지보호

구시로 습지에서는 희귀두루미 관찰하기, 호소오카 전망대 조망하기, 구시로 노롯코호 열차 타고 습지여행하기, 구시로강 투어를 통한 야생동물 살펴보기 등의 관광상품을 운영 중이다. 모두 자연을 기반으로 한 여행이다. 습지를 보호하면서 적당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습지의 가치는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다. 이를 찾는 사람들 역시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 습지보호는 아직 갈길이 멀다. 보호지역을 지정한 면적도 적고, 핵심지역만 지정했기 때문에 습지의 배후에서 습지의 역할을 돕는 배후지역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습지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다.

또한 지역주민의 갈등, 지자체장의 의지 부족 등으로 잘 보전되어 있는 습지가 방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흰목물떼새, 미호종개, 흰수마자의 번식지인 합강습지 역시 보호지역 지정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여전히 지정되지 못했다.
  
합강습지의 흑두루미의모습
 합강습지의 흑두루미의모습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합강리에도 역시 배후 취식지에 매년 흑두루미 2개체가 찾아온다. 흑두루미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습지와 서식지에 대한 한일간 인식 차를 크게 느끼게 된다. 존재하는 습지를 일반적이고 특징 없는 인공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는 세종시의 모습 때문이다. 농경지로 유지되고 주변의 초지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토대로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인공적인 공원의 모습을 꿈꾸다보니 현재 장남평야는 그야말로 공사판이 되었다.
  
합강습지의 모습
 합강습지의 모습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구시로 습지와 대비되는 '비단강금빛프로젝트'

전체 면적의 20% 정도를 농경지로 사용하고 나머지를 다 인공적인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초지를 다 메우고 붉은색 흙만 남겨 놓았다. 지난해 겨울 장남평야를 찾은 흑두루미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이다.

거기에 세종시는 합강습지를 대규모 레저 공간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종시는 '비단강금빛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보트를 띄우고 뱃놀이를 하려고 하고 있으며, 2017년 개방된 세종보에 다시 물을 채우려 한다. '고인물은 썩는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마저 어기면서 무슨 비단강을 만들겠다는 것일까. 다시 물을 채우면 합강습지는 다시 호수가 되어 버린다.

구시로 습지의 경우, 사람의 접근까지 차단하며 자연을 보호하고 있다. 산책로도 만들지 않고 보전한 결과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다. 보잘 것 없는 전망대와 경외스러운 자연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시민들의 노력 덕이다. 여기를 개발하지 않고 보전을 택한 30년 전의 결정이 지금의 구시로 습지를 만들었다.

합강습지 역시 마찬가지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좋은 습지이다. 습지를 보전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서다. 마이즈루 유수지에서 만단 2개체의 두루미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세종시의 상황은 너무나 대비된다. 흑두루미의 안전과 서식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합강습지의 생물 역시 이용의 대상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비단강금빛프로젝트라는 이름뿐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세종보 담수 중단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장 사진
 세종보 담수 중단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장 사진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세종시에도 구시로처럼 보호할만한 동물들이 적지 않다. 생물을 보호하고 지켜낸다면 세계 제일의 환경도시가 될 가능성도 갖고 있다. 합강습지와 장남평야 만이라도 보호를 시작해야 한다. 환경도시를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이제 응해야 한다.

태그:#구시로습지, #합강습지, #보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날로 파괴되어지는 강산을 보며 눈물만 흘리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자연을 위한 활동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대전환경운동연합 회원이 되시면 함께 눈물을 흘리고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하기! https://online.mrm.or.kr/FZeRvcn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