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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 보길도의 동백나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보길도는 예로부터 자연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지금도 섬 어디를 가나 곳곳이 비경이요 카메라를 들이대면 풍경 모두가 작품이 된다. 그래서 보길도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보길 10경(甫吉十景)과 부용동 8경이 전해온다. 

전편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필자가 많은 여행을 통해 얻은 결론은 우리나라에서 보길도 만큼 크고 좋은 동백나무나 숲이 많은 곳은 없다는 것이다. 

부용동만 해도 수백년 된 동백나무 가로수가 수 백 미터에 걸쳐 백여그루가 자라고 있고, 마을의 중심에 있는 부용마을 주민들의 식수원이었던 남다리 샘 부근의 힐링 동백숲은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고 숲 자체가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또 부용동 입구의 동백공원은 적자봉(赤紫峰)에서 흐르는 부용천(芙蓉川)을 건너서 만나게 되는데 보길도 주민들의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3000여㎡에 천연잔디가 깔려 있어 지역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멋지게 하고 있다. 또한 주변으로는 수십년부터 수백년된 동백나무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등산을 좋아하는 관광객이나 지역주민들이 세연정에서 동천석실에 오를 때 거쳐 가는 이 공원은 최근에 한 독지가가 백동백(白冬柏) 수십그루를 기증하여 식재되어 있다.  

부용동 마을회관 주변에도 약 6000㎡의 면적에 수백년된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곳 동백나무 군락의 특징은 개화(開花)가 매우 빠른데 반드시 10월 초·중순이 되면 꽃이 핀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동백꽃이 가장 빨리 피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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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동 동백 노거수
 부용동 동백 노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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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의 동백꽃은 선명한 붉은 빛이나 검은색(黑色)을 띄는 꽃, 붉은 빛과 옅은 분홍색 무늬가 결합된 꽃, 하얀색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이렇듯 여러 가지 동백꽃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보기에 아주 귀한 하얀 동백꽃(白冬柏)이나 검은 동백꽃(黑冬柏)은 100여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정자(亭子)마을의 김양재 고택(金良才 古宅)에 가면 볼 수 있다.   

김양재 고택은 신축한지 100여년이 된 퓨전한옥으로 우리나라 고건축 연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한옥이다. 공간 구성과 건축양식에 있어서 우리고유의 건축양식을 따르면서도 우리나라와 중국(中國), 일본(日本)의 건축 양식을 교묘히 섞어 지은 멋들어진 퓨전한옥으로 집을 공부하는 건축학도는 반드시 한번 쯤 둘러봐야 할 도서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귀한 건축물이다. 이 고택의 정원(庭園)에는 하얀 동백이 후원(後園)에는 검은 동백이 자라고 있다. 

오늘날 보길도에서 자라고 있는 모든 하얀 동백나무는 이 동백나무를 모태로 해서 생성됐다고 보면 된다. 후원의 검은 동백은 자색동백(紫色冬柏)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언 듯 보면 꽃이 검은 빛을 띠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짙은 검붉은색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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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의 홍도(紅島)와 여수의 거문도(巨文島)에서는 하얀 동백꽃을 서상(瑞祥)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흰 동백꽃이 일반적으로 보기가 어려운 귀한 꽃이다 보니 매우 상서롭게 생각해서 서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보길도의 동백나무 중 빼 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나무가 예송마을에 있는 동백나무 거목(巨木)이다. 이 동백나무는 예송마을 끝이자, 적자봉 주능선의 일부분인 수리봉 아래 밭 가장자리에 있는데 앞으로는 해풍이 불어오는 제주바다가 펼쳐지고 뒤로는 수리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생장 여건이 매우 좋지 않았나 생각된다. 수고는 10여m로 동백나무로서는 큰 편이고 근원(根源)에서 다섯 갈래로 뻗어 나온 가지는 가지 하나하나가 어른 몸통만큼씩 커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어나오니 흉고둘레는 치수화(置數化)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근원의 둘레가 족히 2m가 넘으니 어른 둘이가 안아야 품안에 들어올 만큼 웅장하다.      

나주 왕곡면 금사정(旺谷面 錦社亭) 동백나무는 단 한그루지만 수령(樹齡) 500년에 혁명의 뜻을 이루려다 실패한 선비들의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어 국가문화유산(國家文化遺産)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보길도 예송리의 동백나무도 수령이나 크기에서 금사정의 동백나무와 어께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데 역사성이 부족하여 외면당한 채 버려져 있는지 모른다. 

근동에서는 강진 만덕산 백련사(康津 萬德山 白蓮寺) 동백나무 숲이 유명한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초당(草堂)에서 기거하며 백련사에 주석하던 혜장선사를 만나러 수시로 다녔는데 그 길이 오늘날 만덕산의 동백나무 숲길이다. 다산은 오고 갈 때 마다 이 숲을 걸었는데 다산은 동백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내가 강진에 있을 때 다산(茶山)에 많은 산다(山茶. 동백)를 심는 것을 보았다. 그 화품(花品)은 적으나 잎은 겨울에도 푸르고 붉은 꽃이 많이 달린다.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리에 바르면 윤기가 나고 아름답게 보이므로 부인들이 소중히 여긴다. 정말 훌륭한 꽃나무이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을 춘백이라 하는데 대둔산에 이 꽃이 많다. 동백을 전에는 취백(翠柏) 또는 총백(叢柏)이라 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큰 비극이었던 제주 4·3과  여수·순천 10·19사건의 앰블럼( emblem)으로 붉은 동백꽃을 사용하고 있다. 동백꽃이 4·3의 상징이 된 것은 제주출신 강요배 화백이 1990년대 초 제주 4·3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백꽃 지다'라는 전시명으로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부터라고 한다. 강 화백이 동백꽃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4·3으로 자신과 가족의 삶이 산산 조각난 김인생 할머니의 증언이 모태가 됐다"고 한다. 제주 출신 김인생 할머니는 6남매의 자식 가운데 자식 셋과 남편을 4·3 때 잃고, 둘은 병으로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질곡의 세월을 살았는데 김 할머니의 4·3에 대한 증언은 이렇다.

"붉게 핀 동백꽃을 바라보거나 멀리 한라산 꼭대기에 쌓인 흰 눈을 쳐다보노라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 모습 속에 숨겨진 '피의 역사'가 떠오르곤 한다. 흰 눈 위에 동백꽃보다 더 붉게 뿌려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이제는 잊어야 한다고, 아니 벌써 잊었다고 생각했던 무자년(1948년)의 4월은 내 인생과 우리 집안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유영인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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