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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말 2015년 새해 벽두까지 대한민국 사회의 화두는 단연코 갑질 논란이다. 경비원 분신 사건부터 백화점 모녀 사건, 대형마트 VIP, 여기에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까지 대한민국 사회는 갑질로 온종일 뒤숭숭하다.

여기에, 1월 10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땅콩회항 사건에서 사무장 및 승무원을 회유한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는 등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또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백화점 모녀가 인터뷰하는 모습이 방영이 되었는데, 그들은 백화점에 돈쓰러 온 자신들이 왜 그러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한다. 이는 대형마트 VIP 사건의 당사자도 자신이 그 마트에서 몇 억씩 쓰는 VIP라고 안하무인처럼 대하는 것과 동일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1월 10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이른바 백화점 VIP 모녀의 인터뷰가 실렸으며, 백화점 모녀는 인터뷰 도중 분을 참지 못하고 쓰러져 울부짖으며 "내가 내 돈을 쓰면서 이런 경우를 당해야 하냐"고 항변했다
▲ 그것이 알고싶다 중 백화점 모녀의 인터뷰 1월 10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이른바 백화점 VIP 모녀의 인터뷰가 실렸으며, 백화점 모녀는 인터뷰 도중 분을 참지 못하고 쓰러져 울부짖으며 "내가 내 돈을 쓰면서 이런 경우를 당해야 하냐"고 항변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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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갑질은 너무나 만연되어 있다. 비단, 서비스업 종사자들만 해당이 되겠는가? 땅콩회항 사건의 조사를 맡고 있는 국토교통부에는 나 또한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물론 땅콩회항 사건을 조사한 국토교통부의 부서와 내가 접한 담당 부서는 다르긴 해도 말이다.

국토교통부에서 발주한 연구용역을 하였으나, 아무 때나 당장 오라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 되었다. 부르면 다른 일정이 있더라도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달려가야 한다. 급하게 가더라도 자신들의 업무가 끝날 때까지 1층에서 1~2시간 대기하는 것은 일상이다.

처음 과업 내용과 다르게 업무 범위가 달라지고, 조사할 것이 크게 증가해도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결국 용역비도 더 받지 못하고 3개월을 더 연구해야 하였고, 원래 책정되었던 용역비 마저도 나중에 정산하면서 이러한 저러한 이유로 몇 백만 원이 더 삭감이 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철저하게 갑이었다.

내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상, 이른바 갑질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내가 내 돈을 주고 내 권리를 행사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발언하는 것이야말로 천박한 자본주의의 노예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가 지불하는 돈은 그가 사려고 하는 제품에 대한 값어치이지,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을 제공하는 이들의 감정까지 값으로 책정하여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글담출판)라는 책을 낸 린마틴은 노부부가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면서 깨달은 삶의 기쁨을 책에 고스란히 적었다. 책에는 멕시코 산미겔이라는 지역을 여행다니면서 적은 구절이 쓰여 있다.

'멕시코 정부는 1920년대에 산미겔을 멕시코의 명승지로 선정해 산미겔의 고유한 매력을 보존해 왔다. 산미겔에는 신호등이나 네온사인이나 체인점이 없다. 산미겔은 45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산미겔 대다수 주민의 예의바른 행동은 품위가 넘치던 시절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멕시코 정부는 19세기 중반에 행실이 바른 모든 멕시코인이 어린 시절에 배우는 올바른 행동 강령을 발표했다.

이를 테면, 물건을 사든 사지 않든 가게에 들어가면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지 않거나, 가게를 나가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대화를 할 때마다 항상 가족의 건강을 묻는 안부 인사를 먼저 해야 하며, 신사라면 여성에게 문을 열어 주고, 여성이 방에 들어가면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표해야 한다. 이 모든 게 느긋한 삶의 속도의 일환이다. 우리는 산미겔에 갈 때마다 미국에서와 다른 느린 흐름을 다시 익혀야 했지만, 이런 느긋함이 더 없이 고마웠다."

갑질에는 행사할 권리도 있는 반면, 갑으로서 존중받도록 만들어야 할 의무도 존재한다.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살 때에도 "내가 물건 사주니 고맙지?"가 아니라, "내게 물건을 팔아줘서 고마워"라는 마음을 지녀야 진정한 갑으로서의 존중이 가능하다.

서로의 관계에 있어서 '을'이 아닌 '상대방'으로서 대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하다. 몇 해 전, KT&G 및 한국인삼공사와 연구용역 계약을 할 때의 일이다. 난 계약서를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KT&G와 한국인삼공사의 계약서에는 갑과 을로 명시하지 않는다. '을'이 아닌 '상대방'으로 계약서가 명시되어 있다. 단순히 계약서 문구일 뿐이라도 그러한 존중의 자세가 참 고마웠다.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 사람들이 불편할 때가 있다. 외국에 나가서 내가 내 돈주고 여행을 왔으니, 공공장소나 식당, 기내에서 마음껏 떠들어도 된다고, 마음껏 내 멋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외부에서 사온 술을 스스럼없이 꺼낸다거나, 아이들이 떠들고 돌아다녀도 가만히 놔두고, 호텔 조식자리에서 냄새가 나는 컵라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끓여먹는 모습들. 주위 외국인들이 이상하게 바라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은, 내가 내 돈주고 여행왔는데 어떠냐는 식의 모습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모두가 조현아가 되고, 백화점 모녀가 되는 순간이다.

돈의 노예가 아닌, 함께 사는 사람과의 배려를 찾을 때, 이른바 갑질은 사라질 수 있다. 멕시코 산미겔의 느긋함과 배려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정란수(여행기획자, <개념여행> 저자)



태그:#갑질, #백화점모녀, #조현아, #땅콩회항, #린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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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를 위한 관광과 여가의 역할에 대해 관심이 많으며, 현재는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겸임교수, 대안관광컨설팅 프로젝트수 대표로 관광 컨설팅 및 강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행기획자로 여행을 다니며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집을 지으면서 주택, 타운하우스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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